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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산업안전보건법 상 건설공사발주자의 책임

미국변호사

[ 2020.08.13. ]



1. 최근 잇단 화재 발생으로 인한 건설공사발주자의 책임 조명

지난 4월 이천시 소재 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수사당국은 냉동냉장창고 지하 2층에서 산소용접기로 냉동설비 및 배관 설치 작업을 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화재 원인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초 검찰은 시공사 및 건설사업관리형(Construction Management, CM) 공사감리자, 냉동설비 설치를 하도급 받은 하수급업체, 이를 다시 하도급 받은 재하수급업체의 각 관계자뿐만 아니라 발주처 관계자에 대하여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나머지 관계자들에 대하여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반면, 발주처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하였습니다. 검찰은 구속된 피의자 8명과 불구속 상태의 발주처 관계자를 기소하여 현재 공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로도 최근 용인 소재 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5명이 사망하는 등 대형사고가 잇따르면서 건설·작업 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예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위 이천 물류센터 화재와 같은 건설현장에서 공사를 총괄·조율하는 시공사와 공사의 전 단계를 관리·감독하는 건설사업관리자(이하 ‘CM사’)가 있는 경우 건설공사발주자가 부담하는 의무와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상 ‘건설공사발주자’의 의무 및 책임(형사책임) 범위를 조망하고, 위와 같은 경우 건설공사발주자의 책임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2.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분

가. 개정 전 법률에서 발주자의 지위

산업안전보건법(2020년 1월 15일까지 시행된 것, 이하 ‘구법’)에서는 도급 사업주의 책임을 정하면서 ‘건설공사발주자’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구법에 따르면 “사업주”란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를 말하고(제2조 제3호), ① 사업의 일부를 분리하여 도급을 주어하는 사업이나 ② 사업이 전문분야의 공사로 이루어져 시행되는 경우 각 전문분야에 대한 공사의 전부를 도급 주어하는 사업의 사업주는 자신이 사용하는 근로자와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부담하였습니다(제29조 제1항).


대법원은 구법 하에서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주에 관하여, ① 사업의 일부를 도급한 발주자 또는 ② 사업의 전부를 도급 받아 그 중 일부를 하도급에 의하여 행하는 수급인 등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 사업주에게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0. 6. 24. 선고 2010도2615 판결, 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8621 판결). 건설공사(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 조율할 능력 또는 의무가 있는 사업주라면, 해당 공사를 최초로 발주한 발주자이건 발주자로부터 공사를 수급하여 하도급 한 원수급인이건 그의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나. 개정된 법률 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분

산업안전보건법이 2019년 1월 15일에 개정되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면서 “도급인”과 구분된 “건설공사발주자”가 별도로 규정되었습니다. 개정법에 따르면, “도급인”은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말하되, 건설공사발주자는 제외됩니다(제2조 제7호). 여기서의 “건설공사발주자”란 ‘건설공사(「건설산업 기본법」에 따른 건설공사 외에도 각 관계 법률에 따른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방시설공사, 문화재수리공사 포함, 이하 동일)를 도급하는 자로서 도급 받은 건설공사를 다시 도급하는 자를 제외하고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제2조 제10호). 즉, 발주자-원수급인-하수급인-재하수급인으로 이루어지는 건설업의 중층적 도급 구조에서 해당 공사의 진행을 시공사(원수급인) 등에게 일임하였을 뿐, 직접 건설공사를 총괄·관리하지 않는 경우 “도급인”과 구분되는 “건설공사발주자”로서의 지위와 책임을 정하고 있습니다.


다.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각 주요 의무 및 책임

1) 도급인

개정법에서도 건설공사발주자를 제외한 도급인은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합니다(제63조). 이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제167조 제1항), 사망의 결과에 이르지 않더라도 안전 및 보건조치 미이행 자체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제169조 제1호). 그 밖에도 도급인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지정(제62조), 안전보건협의체의 구성 및 운영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제64조), 수급인에 대한 안전 및 보건 정보 제공(제65조) 등의 의무를 부담합니다.


2) 건설공사발주자

반면, 개정법에 따르면 건설공사발주자는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직접적으로 부담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의 계획 단계에서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여야 하고, 설계 및 시공단계에서 그 기본안전보건대장에 따라 각각 설계안전보건대장 및 공사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게 한 뒤 이를 확인하는 등의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부담합니다(제67조). 또한 건설공사발주자는 2개 이상의 건설공사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경우 안전보건조정자 배치(제68조), 공사기간 단축 및 정당한 사유 없는 공법 변경의 금지(제69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도급인의 요청 시 공기 연장(제70조), 산업재해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설계변경(제71조), 도급계약 체결 시 도급금액에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제72조) 등의 의무를 부담합니다.


이러한 건설공사발주자의 의무 가운데 위반 시 그 자체로 형사책임이 따르는 사항은 ‘공사기간 단축 및 공법 변경 금지’입니다. 건설공사발주자가 설계도서 등에 따라 산정된 공사기간을 단축하거나 공사비를 줄이기 위하여 위험성 있는 공법 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변경된 공법을 사용하는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제171조 제1호). 그 밖에 위에서 열거된 사항은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제175조).



3. 업무상과실치사상죄와의 관계

형법에 따르면, 업무상의 과실, 즉 업무와 관련하여 다하여야 할 구체적·직접적인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제268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안전 및 보건조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의무는 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서의 ‘업무상 주의의무’에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형벌은 경미한 수준이더라도, 해당 조치를 이행하지 않거나 태만히 함으로써 근로자의 사망 또는 부상을 초래한 경우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의율될 수 있습니다. 실무상으로도 법정형이 더 중한 업무상과 실치사상죄로만 기소하면서 그 업무상과실의 내용을 산업안전보건법 상 조치의무 위반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4. 시공사 또는 CM사에게 건설공사를 일임한 건설공사발주자의 경우

개정법의 규정상 건설공사를 총괄, 관리하지 않고 시공사 등의 도급인이나 CM사에게 일임한 ‘건설공사발주자’가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 ‘도급인’으로서의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음은 명확해 보입니다. 이처럼 건설공사의 관리·감독 또는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하지 않은 경우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는지에 관하여, 대법원은 주택수리공사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도급인이 주택수리공사 전문업자에게 주택수리를 의뢰하면서 구체적인 작업지시 및 감독 업무를 주택수리업자에게 일임한 경우, 도급인에게 공사상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2. 4. 12. 선고 2000도3295 판결).


특히, 안전관리를 포함하여 공사의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CM사가 선임된 상황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발주처 관계자는 기소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됩니다(대법원 2018. 12. 28. 선고 2018도13316 판결, 부산지방법원 2019. 1. 11. 선고 2018노3104 판결). 드물게 발주처가 기소된 사안에서도 발주처 관계자에 대하여는 무죄가 선고된 바 있습니다. 예컨대, ① 2014년 5월경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서 용접 작업 중 발생한 화재로 8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당한 사건에서, 법원은 발주처 회사와 소속 직원들에 대하여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거나 위 사건 결과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대법원 2016. 7. 22. 선고 2016도3749 판결). ② 2013년 7월경 서울 노량진 배수지 내 상수도관 공사장에서 부설작업 중 한강물이 유입되어 7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발주처 소속 공사관리관이 주 1회 현장을 방문하였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업무상 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어 확정되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4. 7. 4. 선고 2014노433 판결). 


반면, 2008년 1월경 이천시 소재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사건에서는 원청 회사 및 그 관계회사들이 발주, 시공, 설계, 감리를 모두 도맡아서 수행함에 따라 위 회사들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거나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대표자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한 바 있어 위 사안들과 대비됩니다(수원지방법원 2008. 12. 17. 선고 2008노3449 판결).


이처럼 직접 건설공사를 총괄, 관리하지 않고 시공사나 CM사에게 일임한 건설공사발주자의 경우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직접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며,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서의 업무상과실이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다수 발견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건설공사발주자가 공기단축이나 정당하지 않은 공법 변경을 요구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금지한 사항을 위반하는 경우 그러한 사실 자체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가 될 뿐 아니라,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업무상과실을 구성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권창영 변호사 (icarus@jipyong.com) 

김동현 변호사 (kimdh@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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