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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소송금지가처분과 중재금지가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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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최근 국제중재사건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면서 중재와 소송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증가하고 있다. 중재판정부와 법원이 상호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부분 중 같은 분쟁 대상에 관하여 한 쪽 당사자는 중재절차를, 다른 한 쪽 당사자는 국내소송절차를 주장하여 두 가지 절차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에 중재판정부가 당사자에 대하여 특정 법원에서의 소송을 진행하지 말라는 소송금지가처분(Anti-Suit Injunction)을 할 수 있는지, 반대로 법원이 당사자에 대하여 특정 중재절차를 진행하지 말라는 중재금지가처분(Anti-Arbitration Injunction)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중재실무에서는 이러한 가처분이 자주 인용되고 국제적으로도 문제된 바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논의가 많지 않으므로 중재법 개정 이후 각 가처분의 허용 여부와 구체적 절차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소송금지가처분과 중재금지가처분', 저스티스 제178호(2020. 6), 281면 이하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2. 중재판정부에 의한 소송금지가처분

소송금지가처분이란 당사자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거나 진행 중인 소송을 중지하도록 하는 가처분을 말한다. 중재판정부의 소송금지가처분 발령 권한에 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한다. 긍정설은 소위 'Kompetenz-Kompetenz ' 원칙에 따라 중재판정부는 본안에 대한 관할권 뿐만 아니라 중재 합의 위반에 대한 제재 또는 분쟁의 악화 방지를 위한 조치 역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부정설은 중재판정부가 타국의 법원에 대한 관할권을 당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타국의 법원 역시 그 스스로의 관할권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러한 이론적인 대립에도 불구하고 영미법계 국가 법원이나 중재판정부는 다수의 사건에서 소송금지가처분을 인정해 왔고 이러한 유형의 가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대륙법계 국가들과 충돌을 일으켜 왔다. 특히 유럽사법재판소는 West Tankers 사건에서 영국 법원의 소송금지가처분은 브뤼셀협약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위 판시가 중재판정부에 의한 소송금지가처분에도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왔으나 2015년 Gazprom 사건에서 브뤼셀협약은 중재판정부에 의한 소송금지가처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재판정부에 의한 소송금지가처분 권한을 인정한 바 있다. 실제로 중재절차에서 가장 많이 원용되는 ICC, ICSID, LCIA, AAA 중재규칙 등에 따른 중재사건에서 소송금지가처분을 명한 다수의 사례가 존재하며 그중 특히 가장 많이 원용되는 UNCITRAL 모델 중재법과 중재규칙은 많은 논의 끝에 2006년 소송금지가처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우리 중재법은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으나 2016년 UNCITRAL 모델 중재법의 내용을 반영하여 중재판정부의 임시적 처분에 관한 규정을 대폭 신설하고 제18조에서 '중재 절차 자체에 대한 현존하거나 급박한 위험이나 영향을 방지하는 조치'도 임시적 처분의 유형으로 명시함으로써 소송금지가처분은 개정 중재법이 허용하는 임시적 처분의 한 유형에 해당되기에 이르렀다.

  

개정 중재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재법이 적용되거나 당사자들이 해당 중재절차와 관련하여 소송금지가처분을 허용하는 법률 내지 중재규칙을 적용하기로 합의한 경우 중재판정부는 소송금지가처분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중재판정부는 당사자가 전속적인 중재합의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하여 시간을 지연하거나 국내법원의 지원을 얻어 사안을 유리하게 이끌 목적으로 국내법원에 소를 재차 제기하는 등의 사정이 있을 때에만 이를 신중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중재판정부의 소송금지가처분은 'A에 대하여 ~~ 절차에 관한 중지/취하 신청을 할 것을 명한다'와 같이 중재절차의 당사자에게만 효력을 미치는 형태로 인정된다. 그 승인 및 집행을 위해서는 개정 중재법 18조의7에 따라 법원의 결정을 얻어야 하며 당사자가 소송금지가처분을 위반하는 경우 중재판정부는 당사자가 당해 소송에 응하게 됨으로써 지출하게 된 비용에 대해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 중재판정부는 소송금지가처분 위반행위에 대해 간접강제를 명할 수 있다고 볼 것이나(반대견해 있음), 해당 중재판정부가 아닌 법원이 승인 및 집행 결정을 하면서 간접강제까지 명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개정 중재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중재판정부가 우리나라 법원에 제기된 소와 관련하여 내린 소송금지가처분은 여전히 승인 및 집행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중재법 제2조 및 제39조에 의하면 우리 중재법은 중재지가 대한민국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고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규정은 중재지가 대한민국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으나 '중재판정'이 아니라 '결정'의 형식을 취하는 임시적 처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3. 법원에 의한 소송금지 내지 중재금지가처분

중재절차의 진행과 관련된 법원의 가처분은 중재절차를 방해하는 타국 법원의 소송에 대한 소송금지가처분과 중재절차를 금지 내지 중지시키기 위하여 중재지 또는 당사자의 자국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중재금지가처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법원에 의한 소송금지 내지 중재금지가처분도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나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대부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유럽사법재판소는 법원에 의한 소송금지가처분은 브뤼셀 협약에 위반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우리 중재법 제10조는 '중재합의의 당사자는 중재절차의 개시 전 또는 진행 중에 법원에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이 규정만으로 법원이 소송 내지 중재금지가처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사견으로는 중재판정부의 임시적 처분권한에 관한 규정과 달리 법원의 임시적 처분에 관한 제10조의 규정은 1999년 이후 수차례에 걸친 중재법 개정 과정에서도 특별히 개정된 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이는 종래 우리의 민사집행법이 예정하고 있는 통상의 보전처분, 즉 본안의 소송목적에 대한 현상 보존이나 위험 방지를 위한 처분에 한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중재법 제9조 제1항과 제17조 제1 내지 8항은 중재합의에 관한 분쟁시 해결 절차를 규정하고 있고 제6조는 법원은 중재법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재법이 정하는 사항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중재법의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법원에 의한 소송금지 내지 중재금지가처분은 허용될 수 없다. 판례 역시 구 중재법 사안에서 "중재절차의 위법확인을 구하는 본안소송을 제기하거나 중재판정이 있은 후에 중재판정 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중재절차의 위법을 다투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곧바로 그 중재절차의 위법을 들어 법원에 중재절차정지의 가처분을 구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는데(대법원 1996. 6. 11.자 96마149 결정), 이후 중재절차위법확인의 소 역시 중재법 제6조에 의하여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부적법하다고 한 바 있다(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3다5634 판결).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2016년 중재법 개정 이후에 제기된 중재절차정지가처분 결정(대법원 2018. 2. 2.자 2017마6087결정)에서도 유지되어 대법원은 '중재법 제6조, 제9조, 제17조의 문언, 내용, 체계 등에 비추어 보면 중재절차정지가처분은 허용되지 않으며 중재법 제10조가 그러한 가처분신청을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한편 영국 등 외국 법원에서 우리 법원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소송금지가처분을 발령하더라도 외국판결의 승인 및 집행 대상이 되는 판결은 통상 '확정판결'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전처분은 의미하지 아니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그 승인 및 집행을 구할 방법이 없다.



4. 나가며

우리나라 실무가들의 역량이 축적되면서 국제 중재 분야에서 상당한 위상을 확립해가고 있으나 대륙법 체계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법제상 소송금지가처분이라는 제도 자체가 익숙하지 아니하므로 이와 관련된 신청이 제기될 경우 실무가들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송금지가처분이란 재판받을 권리와 밀접히 연관되는 문제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남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지만 2016년 중재법 개정으로 중재판정부가 이러한 가처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이상 앞서 살펴본 소송금지가처분의 배경과 요건, 승인 및 집행가능성, 중재금지가처분과의 차이점 등을 숙지함으로써 그러한 신청이 제기된 경우 중재의 확대와 가속화 추세에 걸맞는 적절한 인식과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인영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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