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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선임 의사 표시하면 수사기관 즉시 조사 중단해야"

국가인권위, 경찰청에 변호인 조력권 보장 권고
"증거물 임의제출 동의 여부 수사기관이 입증" 주문도

미국변호사

피의자가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명백하게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수사기관이 조사를 강행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는 인권위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보이스피싱 사건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은 A씨가 "변호사를 선임한 후 진술하겠다고 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조사를 강행했다"며 경찰관 B씨를 상대로 낸 진정을 받아들였다고 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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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피의자가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한 경우 즉시 조사를 중단하고 변호인 조력권의 보장을 위해 상당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범죄수사규칙에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소속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5월 보이스피싱 혐의로 지명수배 도중 검거돼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검거 당일 A씨는 피의자 신문 과정 초기에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B씨에게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했다. 

 

"피의자 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다"는 B씨의 설명에 A씨는 변호인 선임을 위해 모친 등 가족에게 연락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B씨는 A씨가 모친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B씨는 A씨가 변호사를 선임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은 채 바로 피의사실 조사를 시작했다.

 

B씨는 "A씨가 변호인 선임 후 조사를 받겠다며 진술을 거부해 A씨 모친에게 연락해 준 뒤 A씨 모친이 도착할 때까지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다"며 "이는 검사의 수사지휘 및 체포시한 임박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B씨가 A씨의 헌법상 변호인 조력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B씨가 A씨의 변호인 선임 요청에 A씨 모친과 연락·면담할 수 있도록 조치해줬지만, 피의자 신문을 중단하지 않은 채 A씨 모친이 도착할 때까지 약 1시간 10여분 동안 변호인 참여 없이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변호인 선임을 위해 수사기관이 보장해야 할 편의제공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에 대한 조언이나 상담은 물론 수사기관의 위법한 신문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가 피의자에게 충분히 보장돼야 하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아직까지 피의자에 대한 형사공공변호인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경우에는 피의자의 사선 변호인 선임 요청에 대한 절차적 권리를 더욱 두텁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B씨가 봉인된 소지품을 열람·복사했다"는 A씨의 진정도 받아들였다.

 

인권위 조사 결과, B씨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A씨의 봉인된 개인 소지품을 열어 자료를 열람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일부 서류를 확인한 뒤 복사해 조서에 첨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증거물 임의제출 과정에서 A씨의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조서에 기재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소지품 봉인 해제 과정에서 범죄 혐의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발견해 A씨의 동의를 구한 뒤 해당 자료를 복사해 피의자 신문 조서에 첨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임의제출 명목의 강제적인 압수를 행할 우려가 있으므로, 증거물 등의 제출에 임의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증거물 등을 임의제출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동의서 등 관련 자료가 없으므로 A씨가 해당 소지품을 임의로 제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행위는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인권위는 "현재 범죄수사규칙은 임의제출임을 입증할 자료의 작성과 관련해 폭넓은 재량사항과 한정적인 의무사항만을 규정하고 있다"며 "임의제출에 대한 피조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범죄수사규칙에 관련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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