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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필수예방접종에 관한 프랑스 국사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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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인 국사원(le Conseil d’État)은 매년 주요 판결들을 판례집(le Recueil Lebon)에 수록하고, 그 중 일부를 국사원 웹사이트에 게시한다. 2019년에는 37개 판결을 주요판례로 게시하였다. 아래에서는 그 가운데 2019년 5월 6일에 선고된 필수예방접종에 관한 두 개의 판결(이하 ‘대상판결 ①’, ‘대상판결 ②’)을 소개한다. 


대상판결들의 사건은 모두 월권소송(le recours pour excès de pouvoir, 우리의 항고소송에 상응한다)으로 제기되었다. 대상판결 ①은 알루미늄염이 첨가되지 않은 백신공급 요청을 거부한 보건부장관 결정에 대한 자연건강연구소 등의 취소청구에 관한 것이고, 대상판결 ②는 필수예방접종 8종을 추가한 행정입법에 대한 프랑스백신자유연맹의 취소청구에 관한 것이다.

 

 

2. 사실관계

(1) 대상판결 ① (CE 6 mai 2019, M. T. et autres, n° 415694)

2017년 8월 4일, 자연건강연구소와 국민 1,250명(이하 ‘신청인들’)은 보건부장관에게 백신제조사로 하여금 필수예방접종에 사용되는 백신에는 알루미늄염이 첨가되지 않게 제조하고 첨가물이 없는 백신을 충분히 공급하도록 규제할 것을 요청하였다. 엔지니어, 경영자, 의사 등으로 구성된 신청인들이 예방접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필수예방접종 다수에 사용되는 백신에 첨가된 알루미늄염(항원에 대한 면역반응을 강화하기 위해 백신당 최대 0.85밀리그램이 첨가된다)이 접종 아동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요청의 이유였다. 보건부장관은 이와 같은 신청인들의 요청을 묵시적으로 거부하였다(행정절차법전 제L.231-4조에 따르면, 일정한 경우 행정청이 행정행위 요청에 대해 2개월 간 응답하지 않으면 그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본다).


2017년 11월 14일, 자연건강연구소와 국민 3,047명으로 구성된 원고는 국사원에 보건부장관의 해당 묵시적 거부결정의 취소를 청구하였다. 원고는 크레테이 지역 종합병원이 1998년부터 수행한 연구에서 백신 주입 부위의 면역세포에 알루미늄이 축적되어 대식세포성 근막염이 국부적으로 발현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알루미늄 나노입자의 뇌 등으로의 이동가능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해와 관절·근육 통증, 인지장애 등의 복합증상 간 연관성을 표명한 동물실험 가설을 원용하였다. 2010년 이스라엘 연구팀이 규정한 “첨가물로 유발된 염증성 자가면역질환”과, 알루미늄이 뇌의 면역세포에 주는 영향이 자폐성 장애 유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영국 연구팀의 가설도 원용하였다.


(2) 대상판결 ② (CE 6 mai 2019, Ligue nationale pour la liberté des vaccinations, n° 419242)

2018년 1월 25일, 보건부장관은 기존의 필수예방접종 3종(디프테리아, 파상풍, 소아마비)에 8종[백일해, 인플루엔자균 B(Hib), B형간염, 폐렴구균, 뇌수막염, 홍역, 유행성이하선염, 풍진]을 더하여 필수예방접종 11종을 규정한 「필수예방접종에 관한 2018년 1월 25일 제2018-42호 데크레」를 발하였다[데크레(décret)는 대통령 또는 수상이 발동하는 명령이다]. 해당 데크레는 친권자 또는 미성년자 후견인에게 필수예방접종의무 이행책임을 지우면서, 아동이 탁아소나 학교에 입학·재학하고 여름캠프 등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필수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하여야 함을 규정하였다. 이는 2018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에 대하여 2018년 6월 1일부터 적용되었으며, 의학적 사유로 예방접종이 금지된 영유아는 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019년 4월 9일, 프랑스백신자유연맹은 국사원에 동 데크레의 취소를 청구하였다. 원고는 예방접종 8종이 추가로 의무화되어 유럽인권협약 제8조 제1항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로부터 유래하는 신체 완전성 권리가 침해됨을 주장하였다.


“대상판결들의 사건은 모두 월권소송으로 제기되었다. 사건 ①은 알루미늄염이 첨가되지 않은 백신공급 요청을 거부한 보건부장관 결정에 대해 자연건강연구소 등이 취소청구한 것이고, 사건 ②는 필수예방접종 8종을 추가한 행정입법에 대해 프랑스백신자유연맹이 취소청구한 것이다.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었으나, 이를 소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위 청구들은 예방접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예방접종을 강제하는 것이 적법한지, 강제할 수 있더라도 어떤 범위의 접종을 어떤 기준으로 강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둘째, 우리 법원에서 대상판결들과 동일한 사안이 문제될 경우, 자연건강연구소 등의 원고적격이 인정되거나 해당 데크레가 소송의 대상이 되기는 원칙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프랑스의 월권소송이 행정의 적법성 통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데에 비하여, 우리의 항고소송은 개인의 권리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3. 국사원의 판단

(1) 대상판결 ①에서의 판단

국사원은 아래의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피고행정청의 묵시적 거부결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첫째, 국립의학아카데미, 세계보건기구 등이 수행한 연구들에서 알루미늄염 첨가제와 자폐증 등 간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원고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았다. 둘째, 추가된 예방접종 8종은 그 효험을 인정받았음을 언급하고, 예방접종률이 감소할 경우 이들 감염병이 재유행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셋째, 첨가물 사용이 면역반응을 자극하는 데에 필수적이고 알루미늄염은 1926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언급하면서, 이를 30년간 사용되지 않은 인산칼슘으로 당장 대체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국사원은 이에 더하여, 보건부장관은 법령에 의해 부여된 권한 내에서 재량을 가지고 백신에 알루미늄염이 아닌 다른 첨가물을 포함할 것인지 여부 등을 결정하므로, 알루미늄염이 첨가되지 않은 백신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해당 묵시적 거부결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2) 대상판결 ②에서의 판단

국사원은 필수예방접종 8종을 추가한 규정 등이 유럽인권협약 제8조 및 제9조, 오비에도(Oviedo) 협약 등에 합치한다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아래에서는 그 중에서도 원고가 원용한 유럽인권협약 제8조에의 합치성에 관하여 국사원이 판단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필수예방접종이 유럽인권협약 제8조 제1항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로부터 유래하는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제한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리에 대한 제한은 동 협약 제8조 제2항이 규정하는 예외적 상황, 즉 공중보건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에서 가해졌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예방접종을 한 개인에게 백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 및 권리의 제한보다, 의학적 사유로 예방접종이 금지된 개인을 포함한 개인과 공동체 전체에 주는 예방접종의 유익이 충분히 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유익이 큼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사원은 필수예방접종의 대상이 되는 질병들의 강한 전염력과 그 영향을 상세히 언급하였다.


둘째, 필수예방접종 11종의 효험 수준이 높음을 언급하였다. 일례로 백일해에 대한 효험 수준은 85~90%, 홍역·풍진·뇌수막염에 대한 그것은 100%에 가깝다는 점 등을 언급하고, 예방접종이 가져다주는 유익에 비해 그로 인한 부작용은 제한적이라고 보았다.


셋째, 필수예방접종과 권고대상 예방접종이 예방접종일정표에 병기됨으로써 권고대상 예방접종은 덜 중요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심어졌으나, 권고대상이었던 예방접종도 공중보건을 위해 필수예방접종과 동일한 수준에서 요구됨을 강조하면서 예방접종 8종을 추가한 해당 데크레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4. 함의

대상판결들에서 원고의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다. 이러한 결과만을 놓고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를 소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위 청구들은 그 인용 여부를 떠나 예방접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예방접종을 강제하는 것이 적법한지, 강제할 수 있더라도 어떤 범위의 접종을 어떤 기준으로 강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사한 문제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1차적으로는 보건당국과 예방접종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필수로 규정하는 예방접종의 수는 16가지이며,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영유아 예방접종률도 높은 편이다(2018년 기준, 생후 12개월 96.8%). 그러나 법적으로 이를 쟁점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에서도 그 부분적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상판결들을 소개하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한 행정소송법제의 차이와도 연결된다.


둘째, 대상판결 ①과 ②는 월권소송에서 단체가 원고적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대상판결 ②는 행정입법의 위법성도 다툴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행정소송법적 의미가 있다. 프랑스에서 단체는 해당 단체가 목적으로 하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월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행정의 개별행위뿐 아니라 법규제정행위도 월권소송의 대상이 된다.


우리 법원에서 대상판결들과 동일한 사안이 문제될 경우, 자연건강연구소 등의 원고적격이 인정되거나 해당 데크레가 소송의 대상이 되기는 원칙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행정소송법」은 “처분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에게 취소소송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그 대상으로 “행정청의 처분등이나 부작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판례는 “행정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 의하여 개별적·직접적·구체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이 있는 경우에 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행정입법의 처분성은 예외적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프랑스의 월권소송이 행정의 적법성 통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데에 비하여, 우리의 항고소송은 개인의 권리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박우경 연구위원(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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