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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국회 상임위원장 독점… ‘힘의 정치’ 우려

야당 불참 속 본회의 개최… 17개 위원장 선출 강행

제21대 국회 임기 시작 후 한 달 간 이어져온 원 구성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원 구성에 나서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와 상설특위인 예산결산특위 등 위원회 18곳 가운데 정보위를 제외한 17곳의 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32년간 지속된 여야 배분의 원 구성 관례가 깨지고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체제'가 등장하면서 법조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관행에 불과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협치(協治) 대신 '힘의 정치'를 택한 거대 여당의 독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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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운영위원회 등 상임위 10곳과 예산결산특위의 위원장을 선출하기 위한 안건을 일괄상정해 통과시키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고, 정의당은 본회의에 참석했지만 상임위원장 선출 표결에는 불참했다.

 

◇ 상임위원장 독점은 35년만 = 국회는 지난 29일 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 10곳과 예결특위 등 11곳의 위원장을 선출했다. 민주당은 앞서 이미 통합당의 불참 속에 법사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 선출을 강행했었다. 이로써 정보위원장만 채워지면 18곳의 위원장 자리를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게 된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상임위원장 등 선출 투표에 앞서 "코로나19와 경제 난국, 남·북 경색 등 국가 비상시기에 국민과 기업들의 절박한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원 구성을 마치기로 했다"며 "국민과 역사의 두려운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35년 만의 독주체제

 분권과 협치 시대정신 외면

 

거대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점 체제는 1985년 구성된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이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 아래 1988년 4월 치러진 13대 총선을 통해 국회 지형이 여소야대로 바뀐 이후부터는 여야가 의석 수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 맡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특히 이번 원 구성 협상에서 여야 갈등의 핵심이었던 법사위원장 자리는 17대 국회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당시 152석)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을 때 야당인 한나라당에 양보한 이후 야당 내지 원내 제2당 몫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통해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이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법사위원장을 힘으로 가져가면서 통합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통해 법안 처리의 최종 길목을 지키며 사실상의 '상원' 역할을 해온 만큼, 민주당은 개혁입법 처리 동력을 얻기 위해 법사위원장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를 위해 법사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맞섰지만 결국 여당에 법사위원장을 내주게 되자 나머지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포기했다.

 

◇ "여당의 폭거·폭정" vs "바꿀 수 있는 관행" =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상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헌법학계 원로인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국회 관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법규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며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것은 이 같은 '국회관행법'을 어긴 것이자 여당의 폭거 내지 폭정으로, 우리 헌정사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허 교수는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해준 구도 속에서 국회가 운영되는 것이 헌법정신이자, 그 구도에 맞게 상임위원장도 나눠갖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며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대의민주정치 기본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어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느 시점에는 국민들이 폭발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만든 여당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지금이라도 법사위원장을 내놓고 국민이 만들어준 국회 세력 구도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도 

사실상 마비 가능성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자체를 위헌이나 위법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다수가 힘으로 밀어붙여 지난 수십년 간 이어져온 국회의 관행을 깨버린 것은 분권과 협치라는 시대의 화두와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합의에 의한 정치보다는 다수에 의한 힘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당이 원하는 방향을 정해놓은 채 야당에 '같이 하자, 협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합의도, 타협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54·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제민 대표변호사는 "행정부 견제라는 측면에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다'는 정치적 관행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취지 자체도 옳았다"며 "입법과정에서 '법사위의 발목잡기' 등 문제가 있었다면 관행을 유지한 채 개선해나가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일당독주 체제는 상당히 아쉽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공법학회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정치과정에서 관행이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면 바꿀 수 있다"며 "입법과정에서 법사위의 발목잡기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효율적인 입법을 위해 관행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갖는다'는 관행은 규범으로 확정되지 않은 사실상 관행에 불과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가져가는 관행 역시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제도적으로 협치를 강요해 국회의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야당이 다시 법사위원장을 맡아 이중·삼중으로 게이트키퍼 역할을 맡겠다는 것은 '선거 결과를 무력화하겠다'는 말과 같다"며 "결과적으로 유권자인 국민들이 국회의 활동을 보고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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