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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성범죄 피해자 진술 신빙성 새 판단기준, 구체적 내용 형성이 과제"

법관들 ‘젠더관련 판결 분석’ 자료집 발간

미투와 디지털 성범죄 등 '젠더(Gender)'와 연관된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현직 법관들이 2017~2019년 선고된 젠더 관련 판결을 분석한 자료집을 발간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n번방 사건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대응을 문제 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자료집 발간 등이 법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사법연수원(원장 김문석)은 18~19일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젠더와 법, 그리고 법원'을 주제로 법관연수를 개최했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회장 신숙희)는 이번 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18일 '2017~2019 젠더판례 다시 읽기'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현직 법관들이 젠더 관련 판결례를 소개·분석한 자료집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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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지 감수성' 새로운 기준으로… "일반화에는 신중해야" = 김수정(36·사법연수원 39기) 수원지법 안산지원 판사와 신아름(35·41기) 수원지법 판사는 이날 발표된 자료집에서 '성인지 감수성 법리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대법원 2017두74702 판결 등을 분석했다. 성희롱을 징계사유로 한 징계처분의 적정 여부가 다퉈진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했다.

 

김 판사와 신 판사는 "이 판결은 성희롱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반영해 '피해자다움', '이상적 피해자상(像)'을 재검토한 판결"이라며 "성희롱·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심리함에 있어, 그 심리의 주안점을 피해 발생 이후 피해자의 대응 태도에 초점을 맞춰 그 적절성을 평가하는 데에서 당해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맥락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사건을 심리하는 법관으로 하여금 피해 당시 피해자가 있던 구체적인 자리에 서서 사실관계를 조망해 보면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옮겨올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사람은 이 같은 대법원의 법리를 '성인지 감수성 법리'라고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희롱·성추행사건 피해자진술의 신빙성 심리 때

사실관계를 조망해 보면서 진술의 증명력 평가해야

 

김 판사와 신 판사는 A씨가 B씨를 추행한 사실이 없었는데도 B씨가 무고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이 원심 유죄 판결을 파기한 2018도2614 판결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2017두74702 판결 등에서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관한 법리 중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시를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간, 강제추행 등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사실을 주장하는 피고인에 대한 무고 사건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자의 진술 신빙성이 문제가 되므로, 위 판시를 성폭력 무고 사건에서도 설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한 판시를 제외한 것은 그 실체적 의미가 확정됐거나 그 유래가 명확하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구체적인 사건의 쟁점 판단에서 독자적으로 실질적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지양하려는 의도처럼 읽히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또 "실제로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2017두74702 판결, 2018도7709 판결, 그리고 2019도2562 판결이 전부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법원의 판시를 '성인지 감수성 법리'라고 부름으로써 그 판시의 구체적 내용보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 자체의 유래, 실체, 적정성 등에 관해 사회 일반의관심과 논의가 집중될 우려도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법리를 '성인지 감수성 법리'라고 일반화하는 것에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간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경우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가중처벌 규정 마련 바람직

  

◇ "강간으로 인한 임신, 중상해 등과 같이 가중처벌 입법 필요" = 강경미(39·39기) 수원지법 판사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을 상해로 볼 것인지 여부'를 주제로 대법원 2018도17410 판결 등을 분석했다. 의붓아버지가 미성년자인 의붓 딸을 강간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도록 해 상해를 입게했다는 공소사실로 강간 등 치상죄로 기소된 사건이다. 

 

원심은 "임신이 필연적으로 임산부의 건강상태를 나쁘게 변경시키고 생활기능에 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는 점, 명문의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원하지 않는 임신 그 자체를 상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형법에서의 상해의 개념과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 등 관련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고,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입법으로 강간 범죄에 의해 여성 피해자가 임신을 하게 된 경우 이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강 판사는 "이 판결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최초의 판례이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확대 경향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러 아쉬움이 남는다"며 "강간으로 인한 상해를 경중에 따라 구별하고 피해자가 임신하게 된 경우 중상해와 같이 가중처벌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기결정권은 혼인, 임신, 출산에 대한 시각이 시대에 따라 변화함에 따라 여성의 인권적 측면에서 그 내용이 점차 확대돼왔다"며 "확대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서 여성의 재생산권에는 어떠한 차별, 강제, 폭력 없이 출산 여부와 횟수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가 강간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피해자는 강간으로 인해 전통적인 강간죄의 보호법익으로 이해된 성행위 여부, 상대방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당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임신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추가로 침해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호법익이 확대되면 처벌의 범위도 당연히 넓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강간죄가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의 침해만 처벌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임신 여부를 결정할 권리의 침해가 확인되었으므로 이를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강 판사는 또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결과는 강간으로 인한 어떠한 상해보다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강간에 의해 여성이 임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되고,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온전히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이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결과 발생은 드문 것이 아니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중한 피해라는 점에서 가해자에게 이에 합당한 처벌을 부과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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