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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늑장 재판에 고율 지연손해금”… 변호사들 불만 폭증

재판 지연·지체 늘면서 지연손해금 눈덩이처럼 불어

고율의 지연손해금에 대한 당사자와 변호사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사실상 '제로(0) 금리'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소송에서는 확정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최고 연 12%라는 높은 지연손해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이 지체·지연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지연손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원금보다 더 많은 지연손해금을 무는 경우도 생겨 법조계 일각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신속한 재판 진행과 함께 현실에 맞게 지연손해금 이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연손해금은 금전 채무 불이행 시 채무자가 배상해야 하는 손해금이다. 현재 지연손해금 이율은 당사자간 약정이 없는 경우 법정이자(민사 연 5%, 상사 연 6%)를 적용한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지연이자는 더 높다. 소장 등이 채무자에게 송달된 날부터는 연 12%의 이율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1심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가서 다투면서 몇 년을 허비하는 사이에 이자폭탄을 맞게 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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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대강 살리기 공사 입찰과정에서 담합행위로 적발된 SK건설과 삼성물산은 2014년 국가로부터 부당이득금청구소송을 당해 2016년 1심, 2018년 항소심을 거쳐 2020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SK건설은 9억4000여만원을 반환하며, 상사 법정이율 연 6%에 따른 2억6700여만원과 당시 소송촉진법상 이율 연 15%에 따른 1억9000여만원 등 원금의 절반에 달하는 4억5700여만원을 지연손해금으로 부담해야 했다. 삼성물산 역시 원금 6억7200여만원 외에 3억2600여만원을 지연손해금으로 추가로 국가에 지급해야 했다.

 

최고 연 12%

 소송사건 대법원까지 가면 ‘이자폭탄’


비슷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약 10m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과와 복숭아, 살구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을 운영하던 A씨는 2011년 고속도로와 인접한 나무의 생장과 결실이 다른 곳에 있는 나무에 비해 현격하게 부진하자 "영동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사용되는 제설제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며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2012년 소송을 냈다. 2014년 1심은 "도로공사는 A씨에게 2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도로공사는 6년여의 소송 끝에 배상금 2200만원 외에도 이보다 더 많은 2600만원의 지연손해금까지 물어야 했다.

 

재판이 지연되거나 지체되면 지연손해금 덩치는 더 커진다.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발간한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1심 민사 본안사건 처리율은 97.9%로 최근 5년 중 가장 낮았다. 특히 1심 민사 합의부 사건 처리율은 처음으로 90% 이하로 떨어졌다. 민사 항소심과 상고심 역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처리율을 보였지만 최근 5년간 비교해보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금전 채무와 관련한 소송 등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물어야 할 지연손해금 규모가 크진 것이다. 


2200만원 배상소송 6년에

지연손해금만 2600만원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지연손해금을 정하는 이유는 소송의 지연을 방지하고 신속한 분쟁해결을 촉진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재판 처리기간이 지체되면서 지연손해금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건에 따라 재판에 필요한 기간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당사자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법원이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8년 법무부는 구로 일대 분배농지 관련 국가배상소송에 대한 설명자료를 통해 대법원 단계에서 소송이 계속돼 발생한 지연이자가 약 1010억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는 당시 "구로농지 관련 사건 41건 중 24건이 국가 패소로 확정됐고, 약 8686억원의 국가배상금이 지급됐는데 그 중 원금은 4102억원, 지연손해금은 4584억원"이라며 "지연손해금이 원금보다 많은 이유는 △불법행위 성립일이 20년 전인 1999년 발생해 민사법정이율 연 5%가 누적됐고 △일부 사건의 경우 대법원 단계에서 소송이 장기간 계속돼 소송촉진법상 고율의 법정이율이 적용돼 대법원 계속 중 발생한 지연이자가 약 101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상고이유서에 '지연손해금이 부담되니 빠른 판단을 촉구한다'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며 "사건 당사자를 설득해 고율의 지연손해금까지 부담하면서 상고했는데, 정작 2~3년 뒤 달랑 한 장짜리 상고기각 판결문을 받아들면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의뢰인에게는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신속한 재판 진행 함께

지연손해금 이율도 조정돼야

 

한 부장판사는 "소송경제적 측면과 분쟁을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가치에 비춰보면 재판이 지체됨에 따라 지연손해금이 과도하게 많이 발생하는 재판은 결코 국민에게 좋은 재판이라고 볼 수 없다"며 "판사들도 지연손해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재판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에게 이를 설명하고 합의를 설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소송촉진법상 지연이자 이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많다. 이 법이 제정됐던 1981년 지연이자 이율은 무려 25%에 달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03년 20%로 정해진 뒤 12년 동안 변화가 없다가 2015년 15%로 낮춰졌다. 이후에도 고이율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해 12%로 다시 조정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연이자 이율이 꾸준히 낮아지긴 했지만 시중은행 금리가 연 0~1%대인 것을 감안하면, 지연이자의 징벌적 효과 등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현실 경제사정과 채무자들의 부담 등을 고려해 합리적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판사는 "지연이자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도 있다"며 "지연이자 이율을 지나치게 낮추면 이런 기능이 훼손돼 소송에서 이기고도 피해배상을 제대로 받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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