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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계기 의료자원 배분기준 논의 ‘시동’

인적·물적 자원 제한된 상황… 뚜렷한 기준 있어야

미국변호사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염병 확산과 같이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적·물적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나눌지 여부에 관한 뚜렷한 기준이 있어야 효과적인 현장 대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다. 특히 이 문제는 불가침적 기본권인 '생명권'과 직결되는 만큼 보다 본질적인 영역인 생명 윤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법조계와 의학계를 중심으로 의료자원 배분을 둘러싼 법철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권위있는 의학 전문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최근 한정된 의료자원을 생존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의 사람에게 먼저 제공하는 이탈리아의 상황을 소개했다.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던 이탈리아의 한 80세 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호흡부전을 겪게 됐는데, 고령이라는 이유로 인공호흡 장치 사용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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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생존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의 사람에게 의료자원을 우선 제공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접근 방식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켰는데, 대부분의 법조인과 학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해외서 고령 이유로

우선순위에 밀려 사망 사례

 

미국의 공익 변호사단체(National public interest law firm)인 토마스 모어 소사이티(Thomas More Society)의 피터 브레인(Peter Breen) 부대표는 "노인이나 장애인이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개념은 너무나 끔찍하다"며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장애 또는 연령을 기준으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연방 인권법(federal civil rights law)에도 반한다"고 공리주의적 접근 방식을 비판했다. 

 

영국의 한 생명윤리학자는 "노인과 젊은이의 가치에 대한 논쟁은 우리에게 매우 불편하게 다가온다"며 "20세의 젊은이가 정말로 50세 중년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 반대로 50세 중년이 20세 젊은이에게는 없는 경험과 기술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유용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연령 기준 의료자원 배분은

 공리주의 접근” 비판

 

미국 연방 보건복지부(HHS) 인권국장인 로저 세베리노(Roger Severino) 변호사도 지난 3월 공식 논평을 내고 "코로나19 사태 중에 의료자원이 장애·인종·나이 등의 조건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사례가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라며 "미국의 인권법은 '무자비한 공리주의'로부터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의료자원 분배기준에 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명윤리 분야를 연구하는 법조인과 학자 등을 중심으로 공공선에 바탕을 둔 기본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내서도

“공공선 바탕 기본적 합의 필요”

목소리

 

이영애(72·사법연수원 3기) 법무법인 산지 고문변호사는 "위기 상황 속에서의 의료자원 배분 원칙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원리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고령자나 장애인,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노숙자 등 약자를 먼저 치료 대상에서 배제하는 조치는 생명윤리에 반할 뿐만 아니라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어떤 사람도 편견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가치관은 위기에 처했을 때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대한의료법학회장을 지낸 김천수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고, 응급의료법은 응급환자를 우선해 진료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더 위급한 환자를 우선해 진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의료법적 관점에서 진료의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넘칠 경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자체는 허용된다"면서도 "그 우선순위의 기준에 질환의 정도나 진료의 시급성이 아닌 진료효과의 높고 낮음이라는 가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을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논의를 수렴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준혁 연세대 치의학센터 자문위원은 지난 달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응급 상황에서 의료자원 분배 침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 설정' 논문에서 "의료자원 배분 문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은 △평등주의 △공리주의 △약자우선주의 △공동체주의 △운(luck) 평등주의로 구분된다"며 "개별 의료기관에서 의료자원 분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수행하기 위한 논의 기구의 수립이 강력하게 요청된다"고 밝혔다.

 

 

홍지혜 객원기자(변호사·jhhong@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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