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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장기화… 국제중재도 ‘화상’으로

국재중재 마비 상태… 새로운 언택트 방식 대안으로

미국변호사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여파에 따른 '중재 절벽' 사태를 해결할 대안으로 '화상중재(Virtual arbitration)'가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돼 국가간 이동이 막히면서 국제중재업무 마비 상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업계가 마련한 자구책인데, 전염병 창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새로운 언택트(Untact) 방식의 대안인 데다 획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까지 노릴 수 있어 주목된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KCAB INTERNATIONAL, 의장 신희택)는 9일 화상중재 도입을 위한 규칙 및 시스템 점검에 나서는 한편, 가상의 분쟁사건을 화상중재 방식으로 모의심리(Mock hearing)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전 세계 주요 국제중재기관 중 이 같은 테스트를 통해 본격적인 화상중재 도입에 착수한 것은 대한상사중재원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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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가 9일 개최한 모의 화상중재가 끝난 후 임수현(윗줄 맨 오른쪽) 사무총장이 온라인 접속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모의 화상중재는 중재인과 사건대리인 등이 한 자리에 모여 대면해 심리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각국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이용해 화상중재에 접속했다. 사건담당자(case manager)인 김영옥 KCAB 소속 변호사와 전재희 KCAB 대리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다자간 통신시스템 및 중재절차를 조율했다. KCAB는 모의중재에 앞서 국내외 중재 전문가·로펌 관계자·로스쿨 학생 등을 대상으로 사전 방청신청도 받았는데, 이날 미국·영국·홍콩·케냐 등 30여개국에서 동시 접속해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이날 화상중재를 주관한 KCAB는 코로나19 사태로 캔디류를 제때 납품 받지 못한 국내 수입기업이 국제매매계약 불이행 등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상대 측인 오스트리아 제조사는 불가항력을 이유로 맞서는 상황을 가정했다.

 

대한상사중재원,

사상 첫 모의심리 프로그램 시행


합의판정부는 치안바오(Chiann Bao·의장) 전 홍콩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 김준기 연세대 로스쿨 교수(외국변호사), 토마스 월시(Thomas Walsh) 클리포드 챈스 변호사 등 3명으로 구성됐다. 또 한상훈(41·38기)·구현양(34·43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가 신청인(Claimant)인 한국기업을, 김준우(47·34기)·이현정(외국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피신청인(Respondent)인 오스트리아 기업을 각각 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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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최된 모의 화상중재 컨트롤타워를 맡은 김영옥 KCAB 변호사와 전재희 대리가 상황실에서 중재심리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양측은 이날 화상중재에서 본격적인 심리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준거법 △판정범위 △증거수집 방식 △온라인 증인신문 진행여부 등 쟁점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가상의 한국기업 측은 계약서에 준거법으로 명시된 한국법 외에 UN국제물품협약(CISG)도 중재절차에 적용되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CISG는 불가항력 상황에 대한 구체적 조항을 두고 있어 판정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상대방인 오스트리아 기업 측은 CISG를 배제하기로 한 구두합의가 있었다고 맞섰다. 한국기업 측은 또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허용되는 'IBA룰'을 고수했고, 오스트리아 기업 측은 대륙법계 증거수집방식인 '프라하룰'을 주장했다. 그 외 화상증인신문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KCAB 규정인 '서울 프로토콜' 적용여부 등을 두고도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KCAB는 모의 화상중재가 끝난 후 온라인으로 방청하고 있는 접속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개선점을 논의하고, 앞으로 이번 모의 화상중재사건의 본안심리도 진행하기로 했다. 

 

각국 중재인들 사무실서 노트북 등

이용 중재 접속

 

임수현(45·31기) KCAB 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은 "과거에는 비디오 심리가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됐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화상심리와 전자서면제출 등 원격시스템 활용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엽(외국변호사) KCAB 국제중재센터 차장은 "IT 기술력, 선진 장비 및 시설, 전문인력 등 화상중재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심리가 무기한 연장될 수 밖에 없는 현 상황에 대처하는 한편, 코로나19가 잦아든 이후 국경의 장벽을 허문 국제중재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제 법조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국제분쟁 사건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대부분의 중재심리는 5~6월이나 하반기로 연기돼 '중재 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제중재업무가 마비된 상태다. 건강 등의 이유로 이동이 어려운 증인의 경우 중재 판정부의 판단과 양측의 합의에 따라 비디오장치를 통해 증언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여전히 국제중재의 특성과 관행에 따라 세계 각지에 있는 판정부와 사건 관계자·대리인 등이 비행기를 타고 중재지로 이동해 대면한 상태에서 중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상중재는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화상중재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으면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돼 국제중재 서비스 발전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영국·홍콩·케냐 등

30여 국가서 동시접속 관심

 

이날 모의 화상중재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화상중재가 국경을 넘는 크로스 보더 법률서비스 산업 발전을 가속화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상훈 광장 변호사는 "기존의 대면중재와 차이가 없는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판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 화상 회의 및 결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법조계도 원격 통신기기 사용법과 비대면 분쟁해결 방식에 익숙해져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김준우 태평양 변호사는 "히어링룸(심리실) 자체가 없는 중재는 처음"이라며 "위기는 기회이고, 변화를 선도하는 적극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철저한 사전준비와 교육 등을 통해 뉴노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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