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 법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법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국회법 개정안

“신속한 법안처리 유도” “위헌적 법률 늘어날 것”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 공약 중 하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방안을 들고 나왔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이 본회의에 올라가기 전 단계에서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통해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이유로 법안 통과를 막는 등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이 폐지될 경우 위헌적인 법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10대 정책과제와 177개 세부 실천과제가 담긴 '제21대 총선 정책 공약집'을 공식 발간했다. 공약집에는 정책과제 중 하나로 '정치개혁'을 제시하면서 그 일환으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신 상임위에서 법안을 의결하기 전에 국회사무처 법제실이나 국회의장이 지정한 기구에서 체계·자구심사 결과를 보고받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속한 법안처리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160448.jpg

 

국회법상 법안은 소관 상임위의 심사·의결을 거친 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다. 이 제도는 제2대 국회 때인 1951년 3월 국회법 개정으로 도입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당시 제안자였던 검사 출신의 고(故) 엄상섭 의원은 "모든 법률안은 국가 전체의 법률체계에 통일·조화돼야 하며, 전법과 후법과의 관계, 일반법과 특별법과의 관계, 법률용어 및 조문체제의 통일 등을 고려한 연후에 확정돼야 한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법안 내용 중 본질적인 부분이 수정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법안을 장기 계류시키는 등 법안심사의 신속성이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와 충돌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정치적 이해관계 따라

의도적으로 법안 심사 미뤄

 

대표적인 사례가 제19대 국회 때인 2013년 5월 국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안이다. 당시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는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사위는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과징금 부과기준을 '사업장 매출의 5%'로 낮췄다. '화학물질 관리의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을 결여할 정도로 너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두고 환노위는 '법사위의 월권행위'라며 맹렬하게 비판했다.

 

현재 국회 운영위에는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모두 3건이나 계류돼 있다. 3건 모두 민주당의 집권 이후 발의된 것으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하는 대신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가 개별적으로 체계·자구심사를 담당하도록 하거나(우원식 의원안) △별도 기구인 국회법제지원처를 신설하거나(홍익표 의원안) △국회사무처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내용(박주민 의원안)을 담고 있다.

 

160448_5.jpg

 

앞서 지난달 4일 민주당 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범위를 △법률안이 헌법에 위배되는 경우 △다른 법률과 상충되는 경우 △법률안 조항 간의 모순이 있는 경우 등으로 명확히 하는 한편, 체계·자구 심사 내용에 이의가 있으면 소관 상임위가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당초 의결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제한하는 내용이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부분 당시 집권 상황이나 국회 지형과 결부돼 발의됐다. 특히 여당이 폐지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임위서 법안의결 전

별도 기구서 자구 등 심사

 

첫 법안은 제16대 국회 때인 2003년 나왔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주영(69·사법연수원 10기) 의원은 법사위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등을 소관기관으로 하는 사법위와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심사를 담당하는 법제특위로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으로 국회의장을,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17대 국회에서는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자는 법안이 4건으로 늘었는데, 그 중 3건이 여당 의원(김동철·안영근·전병헌)에 의해 발의됐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18대 국회 때는 3건이 발의됐는데 모두 여당 의원(이철우·권영진·주성영)에 의해 발의됐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이 여당으로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19대 국회에서도 3건 나왔는데, 3건 중 2건이 여당 의원(강기윤·김성태)에 의해 발의됐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제한하자는 취지의 법안도 지금까지 대부분 여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체계·자구심사’ 핵심은

위헌적 법률 걸러내는 것

 

국회에서 근무했던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본질적으로 법안 내용의 일부를 건드릴 수 밖에 없는데, 그나마 지금은 법사위에서 이를 통해 위헌 소지를 줄이고 있지만 상임위 자체적으로 체계·자구심사를 맡을 경우 위헌적인 법률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소관 부처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보니 다른 부처와의 의견 조율이 부족해 상임위 통과 이후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다른 부처의 반대를 맞닥뜨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이 폐지될 경우 법 개정이 상임위 관련 부처나 이익단체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내놨다. 미국이나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법안 심사 과정에서 상원이 조정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사위가 제3자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조정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것이다.

 

민주당 보좌진 출신의 한 변호사도 "상임위 소관 부처의 조직이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해당 상임위가 견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부처 간에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사가 중단되는 법안은 정말 위험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헌법에 분명히 규정돼 있는데도 '다시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가 상임위 단계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각 상임위의 자체적인 역량만으로는 이 같은 법안의 위헌성을 잡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능 폐지 땐

이익단체 위주로

법 개정 가능성 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세무사법 개정안 심사 과정이야말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이 필요한 동시에 보완해야 할 부분을 여실히 보여준 증거"라고 했다. 그는 최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일부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일단 세무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21대 국회에서 개정하면 된다'고 한 부분에 대해 "국민의 대표이자 법률가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구체적인 소송이 제기됐을 때에만 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구체적 규범통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잘못된 입법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는 구제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고려와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19대 국회 때 국회개혁자문위원을 지낸 황정근(59·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소백 변호사는 "법사위가 권한을 넘어서는 엉뚱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지적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중요한 기능을 해왔다"며 "70년 가까이 해온 기능을 없애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특히 "체계·자구심사 기능의 핵심은 위헌적인 법률을 걸러내는 것이므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은 유지하되 위헌심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정부입법 절차에 부패영향평가나 규제심사 과정을 두고 있는 것처럼 국회 입법 과정에 이른바 '헌법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예컨대 현재 국회 윤리특위에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둔 것처럼 헌법 전문가들로 법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자문하는 '헌법자문위원회(가칭)'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능

 신중히 접근을”

 

한국입법학회장을 지낸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대체로 법안 내용의 법체계 충돌이나 위헌 여부가 문제되는데, 상임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실적으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은 입법과정과 정치상황이 맞물려 있다보니 법안 통과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입법부가 공격받고 국민 신뢰를 잃는 단초가 되고 있다"며 "만약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분리해 새로운 위원회나 기구가 담당하도록 할 경우 입법 절차가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전문적·기술적인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또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정치 상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라며 "제도를 만들 때는 집권 여부나 정치 상황에 관계없이 초당적으로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우리 당'에만 유리한 제도를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운영위는 국회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여부는 체계·자구 심사의 필요성, 법률안의 심사지연 정도 등을 감안해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다만 "법률안의 위헌 여부나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위원회 간 이견 등을 조정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단원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신중한 입법을 위해 2대 국회부터 법사위에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부여한 역사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