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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할리우드 독점전쟁'

세계영화사에 지각변동… '파라마운트 판결'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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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과 학생들이라면 대개는 알고 있는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해서 정작 법학을 공부한 이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로스쿨에 들어와 알게 됐을 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1940년대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수직결합구조가 반경쟁적이며 불공정하게 작동한다는 이유에서 스튜디오와 극장의 분리를 명함으로써 미국영화 아니 세계영화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미 연방대법원의 이 역사적인 판결은 법이라곤 잘 알지 못하는 영화인들의 뇌리에는 뿌리 깊이 박혀있으나, 우리 법조인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제야 우리 영화인들이 이미 수직결합이 공고화된 한국영화산업의 불공정성을 논할 때마다 파라마운트 판결을 즐겨 언급하면서도 정작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법적 의미에 대해서는 뚜렷이 알지 못했던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그 논의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더 발전해 나가지 못한 이유 또한 말이다. 그들에게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해 안내해줄 만한 마땅한 가이드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책을 낼 생각은 아니었다.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화학도를 거쳐 법조인이 된 나 자신이 직접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찾아 공유해보자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그 부족한 결과물이 영화 학술지에 게재됐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웠다. 비단 영화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현장 영화인들과 일반 독자들까지 좀 더 쉽게 흥미를 느낄 읽을거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불공정행위를 금한 파라마운트 판결에 주목해야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길 바랐다. 이를 위해 미국 영화사뿐 아니라 한국 영화사와 영화산업 환경, 공정위의 영화업계 제재, 경쟁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또한 책을 통해 파라마운트 판결을 둘러싼 오해에 관한 변호를 좀 더 풍성히 하였다. 특히 영화는 산업의 산물인 동시에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파라마운트 판결이 미국 영화의 질적 성장을 견인한 면면도 들여다보았다.

이 책은 고전 할리우드 시대인 1940년대 파라마운트 소송에서 출발하여 수직결합 분리를 명한 연방대법원 판결과 그 동의판결 집행에 관한 1980년대 미 법무부의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짧지 않은 노정을 그린다. 그 길에서 우리는 파라마운트 판결이 영화사에 어떠한 족적을 남겼는지 마주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 영화계를 그 길에 비춰보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파라마운트 판결이 그야말로 사문화된 것으로 치부되는 탓이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애초 목적대로 이 책으로 인하여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한 국내의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졌다면 더 바랄 것은 없겠다.

얼마 전 영화주간지를 통해 미 법무부 독점금지국이 파라마운트 동의판결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때마침 영화계 선배가 이제 ‘파라마운트 판결 그 후’를 써야 할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힘들어서 부디 다른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랐던 그 일이, 여전히 영화에 늘 빚지고 있는 내가 다시 힘을 내어 풀어야 할 숙제는 아닌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찍고 싶다.


장서희 변호사(영화진흥위원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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