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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내가 읽은 책]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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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눈에 먼지가 쌓이면(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질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사랑이라는 포장지에, 돈에 대한 집착은 편안한 삶이란 포장지에, 명예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대의명분이란 포장지에 싸서”(백성호) 움켜쥐고 싶어진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의문이 들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카페 갤러리’(나눔문화)에 간다. 지난 20년 간 전세계 분쟁 지역과 빈곤 지역, 지도에도 없는 높고 깊은 마을들을 걸으며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진실을 기록해온 박노해 시인의 사진과 글이 항상 있다. 지금은 티베트, 인디아, 페루, 파키스탄 등 11개 나라의 다양한 ‘하루’가 전시중이다(‘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시인이 찾아간 티베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버마, 인디아의 ‘가난도 불운도 어쩌지 못하는 충만한 1日1生’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인레 호수 물 위에 일군 위대한 농장 쭌묘(버마). 세속을 품지 못하면 신성도 깃들지 못하는 법이라며 지상의 더러움마저 다 품고 맑히며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인디아). 희박한 공기의 고원길을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임을 되새기면서 인간이 취하는 가장 낮은 자세로 걷는 오체투지 순례(티베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라오스의 산간 마을 주민들은 나무와 폐품을 조립해 자력으로 마을 수력발전소를 창조해낸다(個電). 시인은 ‘전기는 태양과 바람과 강물을 타고 흘러야 한다. 방사능과 석유와 약자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눈부신 세상은 인간의 어둠에 다름 아니다’라고 썼다. 파키스탄의 소녀가 아침에 맨 먼저 하는 일은 어린 버끄리(양)들을 꼬옥 안아주는 것이다. 가장 큰 고통은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느낌임을 아는 듯이.

‘다른 길’에는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자로서 초원의 들꽃처럼 남김없이 피고 지기를 소망하는 사람,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의식하지도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한 뼘의 경작지를 늘려가고자 가파른 땅을 일구어가는 개척자,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아름다움을 꽃피워 인간의 위엄을 보이는 사람,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임을(에른스트 슈마허) 증명해내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새벽에 새 길을 떠나는 박노해 시인.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테레사 수녀).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지금 이러한지 내게 묻는다.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북부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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