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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이사람] 영화 감독된 전후석 미국변호사

쿠바 한인2세 이야기 다룬 영화 ‘헤로니모’ 제작

"점잖은 법조인들께서 보시면 한 가지 일에 집중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 걸로 비칠수도 있습니다. 평생 변론만 하신 분들께는 부끄럽지만 젊은 놈의 치기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쿠바 한인 2세의 이야기를 다룬 '헤로니모(한국명 임은조)'다.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전후석 외국변호사(미국)는 지난달 28일 본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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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니모는 '애니깽'으로 알려진 멕시코 이주노동자이자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의 장남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독립자금을 만들어 보내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헤로니모는 훗날 체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투신해 쿠바 산업부 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헤로니모는

멕시코서 독립운동한

임천택 선생 장남

 

전 변호사와 헤로니모의 인연은 운명처럼 시작됐다. 휴가로 떠난 쿠바 여행에서 헤로니모의 후손인 한인 4세 패트리샤 임과 우연히 만난 뒤 헤로니모의 궤적을 따라가게 됐고, 일하던 코트라(KOTRA) 뉴욕무역관 변호사를 그만두며 영화 제작에 몰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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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변호사 일을 그만두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중한 경험을 하고 나서 영상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1년가량이면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어느덧 3년째입니다."

 

그는 대학시절 영화학을 전공하며 LA폭동, 한인입양아, 독도 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레 법이 연계됐다. 이 과정에서 백부(伯父)인 전성철 미국변호사의 영향도 받았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로펌 리드 앤 프리스트(Reid & Priest)에서 당시 외국인으로는 최초이자 최단기간에 파트너 변호사가 된 큰아버지가 쓴 책을 읽으며 자랐고, 그의 동생도 현재 뉴욕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금조달이었습니다. 그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제가 세계한인변호사회(IAKL) 소속이어서 매년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때마다 헤로니모를 발표했더니 50명이 넘게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이면에는 '우리는 이런거 못하니까 실컷 해봐라'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휴가 떠난 쿠바에서 한인 4세 만나

그의 궤적 추적

 

미국에서 태어나 세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그에게 '정체성'은 인생의 화두였다. 대학 시절 연변과학기술대에 교환학생으로 가기도 했다. 로스쿨 재학 시절에는 우리나라와 브라질 로펌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간 헤로니모의 족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삶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저의 소명은 '디아스포라(Diaspora, 특정 민족이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사실 디아스포라가 집약적으로 표출된 게 IAK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세계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과 한인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어디서 왔건 서로 아끼면서 네트워크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영화학 전공

 사회적 관심이 변호사 길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는 어떠한 지표를 들이대도 공부를 잘하거나 잘나가는 변호사는 아니었습니다. 변호사를 관두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변호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이유로 변호사를 하고 싶은가를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만 미국은 변호사가 많기 때문에, 많은 변호사 중 일원이 돼서 페이퍼 워크(paper-work)를 하는 것보다는 디아스포라 관련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제 열정을 따를 뿐이고, 또 사람들에겐 각자만의 길이 있고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미국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이소은씨가 부르는 '고향의 봄'으로 끝이 난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심가 120석 규모의 한 상영관에서는 영화가 끝나자 전(全)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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