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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9주년 특집

[창간 69주년 특집] 서울고법 ‘경력대등재판부’ 집중조명

고등부장판사 3명 배속… 3개의 별도 재판부 있는 셈

올 2월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3명으로만 구성된 '경력대등재판부'가 사법사상 처음으로 탄생했다. '평생법관제'와 '법관인사 이원화'가 안착하면서 생긴 변화다. 주인공들은 서울고법 민사12부의 천대엽(55·사법연수원 21기·사진 오른쪽), 김환수(52·21기·가운데), 이승한(50·22기·왼쪽) 부장판사다. 모두 판사 경력만 20년이 넘는 최고참급으로 3명의 법관 경력을 합치면 무려 71년에 달한다. 높은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세 사람이 재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뢰감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구현하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받고 있다. 본보는 창간 69주년을 맞아 최고참 대등재판부의 일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대등재판부의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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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50·22기) / 김환수(52·21기) / 천대엽(55·21기)

 

"아, 이게 그 대등재판부구나!"

 

지난달 20일 첫 재판이 열리기 전인 오전 9시께 미리 법정에 나온 변호사가 재판일정을 뒤적이다 신기한 듯 후배 변호사를 부른다. 그는 "이것보라"며 기일표를 넘기면서 "재판장을 3명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법 민사12부가 항소심 재판을 하는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407호 법정 기일표에는 서울고법 민사 12-1,2,3부가 각각 표시돼 있다.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날 첫 재판장은 12-2부의 김환수 부장판사였다. 재판부 가운데 자리한 김 부장판사는 능숙하게 재판을 시작했다. 10분가량 지났을까 선고기일을 잡은 뒤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우배석 판사 자리에 있는 이승한 부장판사가 재판을 진행했다. 기존에는 재판장은 법대 중앙에만 앉았다. 그러나 지난 4월 재판장의 좌석을 법대 중앙으로 지정한 '법정 좌석에 관한 규칙'이 개정되면서 재판장은 중앙이 아닌 좌우에 앉아서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경력대등재판부가 출범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사건별로 돌아가며

재판장도 되고 주심도 맡아

 

법관인사 이원화가 도입돼 시행되면서 처음에는 고법부장판사와 지법부장판사급인 고법판사 2명으로 구성되는 대등재판부가 출현했다. 그러다 올해는 고법부장판사로만 구성된 경력대등재판부가 서울고법 민사부와 행정부에 1개씩 출범했다.

 

본보는 이 가운데 법원행정처에서 일선 법원으로 복귀한 서울고법 민사12부 재판장 3명을 만나 그들이 꾸려가는 경력대등재판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본적으로 경력이 있는 법관들이다보니 사안별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진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두 부장님이 제일 무섭습니다. 합의 과정에서 각자 주심을 맡은 사건 등 본인이 브리핑해야 하는 사건들이 있으니, 저도 준비를 좀 더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재판장은 중앙 아닌

좌우에 앉아서도 재판 진행

 

3명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천 부장판사가 웃으며 말했다.

 

과거 고법 재판부는 재판장인 부장판사와 배석판사(고법판사 포함)가 따로 있어 재판장은 주로 절차적 진행과 합의과정을 주도하고 배석판사는 각각 주심을 맡아 판결문 작성 업무 등을 맡았다. 그러나 경력대등재판부는 고법부장판사만 3명이 배속돼 한 재판부 내에 3개의 별도 재판부가 있는 셈이어서 각자 재판장도 됐다가 주심도 되는 방식이다.

 

사법사상 처음 시도되는 제도라 올 2월 재판부 출범과 동시에 3명의 부장판사들은 재판 규칙을 정하는 '룰(Rule) 미팅'부터 했다. 

 

김 부장판사는 "원칙적으로 사건 내용은 재판장이 읽지만 재판 내용을 공유하되, 비(非)재판장도 사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법정에서도 '내 사건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자고 약속했다"며 "특히 재판장이 3명이기 때문에 일관성을 위해 증거 채부의 원칙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정했다"라고 전했다. 

 

반 년을 넘자 자연스레 변화도 생겼다. 이 과정에서 이 부장판사가 제안한 공유폴더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바른 시일 내 사건 파악위해

‘공유폴더’도 이용


천 부장판사는 "자기가 주심이 아닌 사건도 진행에 참여하고 관여하지만, 처음부터 비주심이 기록을 다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 실체를 어떻게하면 빨리 파악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며 "주심의 요약설명을 들으면 깊이 있게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데, 주심 부장판사가 공유폴더를 만들어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자기가 정리한 모든 메모를 다 올려놓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보는 방식을 제안했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비슷한 경력의 부장님들로부터 재판 진행방법, 사건을 파악하는 방법, 법리, 평소에 하지 않았던 방법이나 달리 생각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면서 "사실 배석판사 때 이후로는 누구로부터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 시점에 많은 경력을 가진 선배 부장님들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등재판부의 단독화 우려에 대한 생각도 물어봤다. 대등재판부는 많은 경험을 가진 고참 판사들이 재판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질 높은 사법서비스가 가능하지만, 각자 주심을 맡은 사건만 처리하고 주심이 아닌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아 합의부가 사실상 단독 재판부처럼 운영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부 구성원 사이에 뜻이 맞지 않은 경우 단독화 될 우려는 한층 더 커진다.

 

‘합의부 아닌 단독화’

우려 있지만 운영의 문제

 

김 부장판사는 "어떤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내고 재판장도 그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을 때 진정한 3인 합의가 되는 것"이라며 "재판장이 의견을 냈는데 주심이 말하기 어렵고, 주심이 의견을 냈는데 재판장이 절차적인 면에 신경쓰다보니까 결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만만찮아 주저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등재판부는 오히려 더 과감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결국에는 운영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닫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천 부장판사는 "예전에는 재판장이나 주심이 아니면 관여할 권한이 없다 생각해, 알려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려 했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대등을 이루면 모든 사안에 관여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선택과 집중에 따라 언제든지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그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 3인이 대등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독화 우려에 대한 불식은 결국 운영과 관련된 문제"라며 "예전부터 추구해온 구술변론주의, 집중심리주의가 활성화되면 법정에서 대리인들에 의해서 집약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독화에 대한 우려는 재판부의 운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변호사들이 같이 합심해서 노력해줘야 장기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장판사는 "모든 사건에 대해 모든 재판부의 판사가 똑같은 양으로, 똑같이 정밀하게 보는 게 합의의 의미라고 보지는 않는다"라며 "합의라는 것은 중요한 사항, 집중해야하는 사항, 쟁점이 되는 사항에 대해 3자간에 충분히 공유하고 토론하고 그 과정을 통해 결론이 도출된다면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지, 단순히 같은 양의 시간과 노력을 똑같이 들인다는 게 합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심이 사건을 파악하고 사안의 사실관계와 쟁점을 설명하고, 다른 법관들과 그에 대해 논의하고 재판과정에서 관여하는 게 실질적인 합의"라며 "똑같이 기록을 볼 수 없어서 단독화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확한 지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혼 도출하면 실질적 합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밥을 혼자 먹어야 합니다.(웃음)"

 

다른 2명의 부장판사가 약속이 생기면 갑자기 혼자 먹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업무 외적인 부분은 서로 독립해서 생활하기 때문에 생기는 고충 아닌 고충이다.

 

천 부장판사는 "예전 재판부 속성상으로는 (모든 것을) 재판장이 운영하기 때문에 재판부 모임이 있으면 빠질 수가 없는데, 우리는 '쓰리 톱(Three-Top)'이다보니 직원과 회식을 할 때도 모임을 주관한 부장판사 외에 다른 부장판사들은 개인적인 일을 보는 경우도 있다"라며 "내부 행사도 각자 맡아서 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등재판부의 모습을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이 부장판사가 말했다. "대등재판부가 시작된 계기가 지법에 단독(판사) 자리가 없다거나 배석(판사)이 부족하다는 문제, 고법도 고법부장 승진 발령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 등 법원 내부의 인사적 요인에 의해 촉발됐다는 지적은 사실상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법원 내부적인 이유인 인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로만 남는다면 결국 오래갈 수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사법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국민의 권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검토돼야 앞으로도 대등부가 유지되고 일반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재판’위한

합리적 모델 개발에 지속 노력

 

천 부장판사는 변호사들의 따끔한 지적과 조언을 구했다. "제도를 시작하게 된 동기나 경위가 어떻게 됐든 '좋은 재판'에 부합하는 제도여야만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살아남을 것입니다. 서울고법 경력대등재판부인 민사부와 행정부는 그러한 좋은 재판을 위한 다양한 운영 모델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합리적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법원 대등재판부만의 노력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을 대리하고 계시는 변호사님들의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등재판부가 기존 재판부와 비교할 때 어떤 점이 나은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변호사업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눠야 합니다."


김 부장판사는 대등재판부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고법은 마지막 사실심인데 대등한 경력의 판사들끼리 치열하게 쟁점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재판장이 일방주도적으로 운영하거나 주심 혼자 결론을 내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경력대등재판부는 법관 이원화에 따른 가장 이상적인 모델 내지는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세부 운영 형태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가 관건입니다. 만들어놓았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운영할지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여러 다양한 경력대등재판부 운영을 통해 미래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법과 지법 등 각급 법원이 이론과 실력은 물론 인품까지 잘 겸비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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