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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피해자 사진 실은 ‘레깅스 판결문’… 열람제한 요구 논란

법원 젠더법연구회서 요구… 판사들 간 갈등으로

최근 이른바 '레깅스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법원 내부에서는 이 판결을 둘러싼 판사들 간 갈등이 이어지며 '재판 독립'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판결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 부장판사)가 지난 달 24일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결문에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관련 사진을 첨부해 논란이 됐다. 한편에서는 재판부가 무죄 판단에 이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핵심 증거인 사진을 판결문에 제시한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것이라거나 인격권 침해를 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최근 법원 내 연구모임인 젠더법연구회가 해당 재판부에 이 판결문에 대한 열람제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판사들 간의 '재판권 침해' 논란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판결을 한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최근 젠더법연구회 운영진 측으로부터 판결문이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검색 또는 열람이 되지 않도록 담당 부서에 열람제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제한 조치를 거부했고, 재판장인 오 부장판사는 대법원에 고충을 제기했다. 오 부장판사는 젠더법연구회가 연구단체임을 감안하더라도, 특정 판결에 대해 재판부에 직접 이 같은 요청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와 관련된 공식적인 제도 마련의 필요성과 특정 판결문에 대한 연구회 내부 비판의 한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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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로 구성된 연구회를 포함해 판사들이 다른 동료 판사가 내린 판결에 대해 비열람 조치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의 실력 행사로 압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이유는 '재판의 독립'을 위해서인데, 이때 재판의 독립이란 법원 외부는 물론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판결에 대한 비평은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등 학술적 행사에서 이전 판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 등을 통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판사가 SNS나 법원 내부 통신망에 개인적으로 글을 올려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사실상 금기시 되고 있다. 법관윤리강령 제4조 5항도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공개 비판한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올렸던 A부장판사는 그해 12월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동료판사에 대한 테러”

“재판의 독립 침해”

강도 높게 비판

 

이번 젠더법연구회의 요구를 두고도 법원 내부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이것은 동료 판사에 대한 '테러'에 가깝다"며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일로 묵과할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구속영장 발부 여부나 재판 결과에 따라 법원 외부에서 제기되는 무분별한 재판부 공격도 심각한 상황인데 이젠 동료 판사 눈치까지 봐야 하느냐"며 "무서워서 재판 하겠느냐는 자조 섞인 한숨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원 내 연구회라면 응당 학술대회 등 해당 판결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나 연구를 통해 비판할 점을 비판하고 개선책 등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사실상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판사는 각각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젠더법연구회의 요구는 자칫 재판에 대한 독립성 훼손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회라면 학술대회나 토론회 통해

학문적 접근이 바람직”

 

다른 판사는 "재판진행 뿐만 아니라 판결문 작성에도 사건관계인 등의 인격권은 보장돼야 하겠지만, 이에 대한 판단 역시 해당 재판부나 재판부의 판결 등을 다시 검토하는 상소심 재판부가 판단한 일"이라며 "외부에서 다른 판사나 사법행정권자 등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공식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법원 내에서) 제도화를 한다고 해도 판결문을 어떻게 쓸 것인지, 비공개 조치를 포함해 판결문 등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해당 재판부나 담당 판사가 전권을 갖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재판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강제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사법행정권 남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피해사진을 꼭 판결문에 넣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로 인해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나 인격권 침해 등의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해서는 법원 내부에서도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만큼, 그러한 젠더의식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인 젠더법연구회가 나선 것 아니겠느냐"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보충의견 정도로 의견을 낸 것일텐데 그 정도의 의견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차 피해나 인격적 침해 등

문제없는지 논의 필요” 반론도

 

다른 판사도 "그 판결이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내려진 판결의 사후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한 조치일 것"이라며 "사진을 찍힌 분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 조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보다 바람직한 재판을 위해, 특히 성범죄 사건인 만큼 그 정도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젠더법연구회 소속 일부판사들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에 판결문 열람제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를 한 이후 판결문이나 재판 절차와 관련된 인격권,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자율적으로 '재판다시돌아보기팀(팀장 유성희 판사)'을 만들었다. 

 

젠더법연구회 관계자는 "연구회에서 팀을 만든 것이 아니라, 관련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진 회원들이 내부에서 자유롭게 팀을 구성한 것"이라며 "연구회 내 '젠더판결다시보기팀(젠더판다팀)'이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이 성폭력 문제 등 테마를 잡아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대법원 판결 등을 참고해 학술적으로 논문을 쓰는 팀이라면, 재판다시돌아보기팀은 학술적 분석에서 더 나아가 보다 폭 넓은 논의들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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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데법연구회는] 

 

현재 회원 802명… 2000년 출범 ‘여성법커뮤니티’가 모태

 

젠더법연구회는 2007년 12월 31일 여성, 아동 및 소수자가 겪는 법적 문제에 관한 연구 등을 목표로 설립됐다. 2000년 출범한 '여성법커뮤니티'를 모태로 한다. 2000년에는 전국에 여성법관이 119명에 불과했다. 당시 여성법관들은 여성이나 소수자 관련 이슈를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러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남성법관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오픈된 참여의 장에서 공식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2007년 대법원 산하 전문분야 연구회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립 당시 젠더법연구회 회원은 모두 176명이었다. 초대 회장은 조경란(59·사법연수원 14기) 특허법원장이다. 이후 민유숙(54·18기) 대법관, 노정희(56·19기) 대법관이 회장을 맡았으며, 내년 1월부터는 신숙희(50·25기) 서울고법 고법판사가 새 회장으로 취임해 연구회를 이끈다. 현재 회원 수는 802명에 달한다.

 

회장 외에도 간사, 총무, 부총무가 회장을 도와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거나 실무적 활동을 공지하는 등 연구회 운영을 분담하고 있다. 구체적인 활동은 각 팀별로 이뤄지는데, 연구회 산하에는 △양성평등팀 △교육팀 △해외사법팀 △젠더판다팀 △심포지엄팀 △인터뷰단 등이 있다. 회원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새로운 팀을 만들 수 있어 최근 '재판다시돌아보기팀'도 만들어졌다.


연구회는 호주제 폐지, 성매매 관련 판례 검토, 성폭력 사건 재판 처리 절차 등 법적인 측면에서 여성 관련 문제를 다뤄왔다. 2010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법관회의'를 직접 준비하고, 성폭력 재판 실무 편람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했다. 2년마다 심포지엄을 열어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분기별로 사법연수원에서 법관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수연·남가언 기자  sypark·ganiii@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