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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가 쓴 책] ‘한국의 시장경제 다시 생각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실천적 의미가 무엇인지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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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는 1840년부터 약 5년 7개월간 제주도 대정에서 유배를 살았다. 입맛이 까다롭던 그에게 먹거리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양의 아내에게 그가 한글로 보낸 편지에는 된장, 고추장, 곶감, 육포, 멸치와 말린 민어 등 각종 먹거리를 보내달라는 하소연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제주 전역에 저자 거리가 없음은 물론, 5일장이나 10일장이 서지 않아서 도무지 먹거리를 구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조선조는 상인을 신분제도의 맨 밑에 깔고 각종 상거래를 억압하였다. 심지어 장시, 즉 시장이 열리는 것조차 금압하였다. 1810년경 강진에서 유배를 살던 다산 정약용도 시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거래하는 것을 패속으로 보고 이를 금하여야 한다고 형 정약전에게 쓰고 있다. 조선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상거래가 없었고, 상거래가 없으니 금화나 은화와 같은 제대로 된 결제수단도 필요하지 않았다. 근대적 기업이나 사업자조직도 전무하였고, 나라 전체가 물로 씻은 듯이 핍절하였다.


나라 경제가 심상치 않다. 이 정부 들어 불과 2년 사이에 성장률이 2% 미만으로 곤두박질치고,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추구는 사실상 사라졌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상승이나 주당 근로시간의 급작스러운 단축으로 제조업의 경영여건은 붕락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 활동과 영리추구에 대한 부정적 정서의 확산이다. 근본주의화한 조선 성리학이 시장과 상거래를 사갈시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대중 정서는 반기업, 반시장적 성향이 농후하다. 성장 대신에 분배를 주장하고, 자유경쟁 대신에 공정성을 빌미로 한 각종 간섭을 요구한다. 늘어나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은 거래비용을 증폭시키고, 개인과 기업의 창의를 억누르게 된다. 개방된 시장경제가 가져오는 후생에 너무나 익숙해서, 조선조나 북한과 같은 반시장적 지배구조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낡고 진부한 느낌을 주는 시장과 시장경제를 새롭게 조명해야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시장은 인간 사이의 교류와 소통을 담당하는 영원한 플랫폼이요,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통해 재화와 가치를 배분하는 시장경제는 근대 시민사회의 경제질서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와 더불어 근대 시민사회를 뒷받침하는 양대 축이요, 법치주의와 결부된 성숙한 시장경제는 국가 경쟁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책은 이념과 공동체, 구한말 우리의 오래된 미래일까, 시장과 입법, 시장경제의 미래 등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 시장과 입법의 내용이 가장 풍부해서 각종 규제가 산업을 망가뜨린 사례를 두루 살핀다. 베네수엘라나 인도의 종교근본주의 입법 스토리를 곁들여 시장경제의 이념적 배경을 설파하는 제1부나 성리학이 가난을 지배도구로 삼아 시장과 상거래를 금압했던 조선 후기의 참담했던 실상을 논증한 제2부도 매우 흥미롭다. 책 전체에 걸쳐 대중 영합적 규제와 간섭을 염려하는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 제4부에서는 우리에게 적합한 경제질서가 무엇인지,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실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점검하면서, 오늘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화두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특유의 해석론을 펼쳐보았다.


정호열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