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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2000~3000억 규모… ‘법률번역 시장’ 선점 경쟁

계약·소송·중재 등 법률분야에 국경선 허물어져

'법률번역(Legal translation service)'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뜨겁다. 그동안 법률 등 전문영역 번역 시장을 통·번역 대학원을 나온 전문 번역사들이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국내외 변호사들이 법률번역 전문업체를 설립해 경쟁에 뛰어들며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경제 시대로 진입하면서 계약은 물론 소송, 중재 등 모든 법률분야에서 국경선이 허물어져 법률번역 시장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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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로펌 출신 외국변호사들이 주도 = 법률번역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는 현재 10여곳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대형로펌 출신의 외국변호사(미국)가 이끄는 '톰발리(Tombali)'나 '베링리걸(Bering legal)'이 두각을 보인다.

 

2015년 설립된 톰발리는 미국 콜럼비아 로스쿨(J.D.)을 나와 법무법인 세종과 네이버 법무실을 거친 정연욱 대표가 이끌고 있다. 서울대 법대 87학번인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에서 다년간 근무한 이력도 갖고 있다. 

  

국내외 변호사들이 설립한

‘번역 업체’가 시장 주도

 

베링리걸을 설립한 문성현 대표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노스웨스턴대 로스쿨(J.D.)을 졸업하고 국내 대형로펌에서 일하다 번역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이비포스(Ivy Force)라는 번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시장성을 확인한 그는 변호사와 로펌의 패럴리걸(Paralegal)들을 모아 베링리걸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율촌에서 근무하던 류정모(30·6회) 변호사 등도 베링리걸에 합류해 세를 키우고 있다.

 

대부분의 법률번역 전문업체는 위워크(wework) 같은 공유 오피스에 본사를 두고 국내는 물론 외국에 있는 전문가들까지 업무에 투입한다. 사무실 임대와 상근직원 채용 등에 따른 고정비 지출을 줄이는 대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을 마련해 저렴한 요율을 유지한다. 법률번역 업체가 받는 번역료는 통상 대형로펌의 20~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또 외국문서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한국 문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번역이 60% 정도를 차지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외국어 수요는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다.

 

◇ 年 3000억 시장 추산 = 로펌과 번역업체 관계자 등은 국내 법률번역 시장 매출 규모를 연간 2000억~3000억원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는 로펌이 외국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나 패럴리걸 등 내부인력을 투입해 처리하는 번역 관련 매출까지 포함된다.

 

한 법률번역 업체 관계자는 "국내 6대 대형로펌 연매출의 10%가량이 법률번역을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로펌에서 외주를 주는 번역 규모도 상당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들도 법무팀을 통해 계약서나 약관을 번역업체에 맡기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비쿼터스’ 근무 환경 마련

 저렴한 번역료 유지

 

인적자원이 풍부한 로펌들이 법률번역 전문업체를 찾는 배경에는 '효율성'과 '보안' 문제가 있다. 시간당 비용청구(Time-Charge) 방식으로 수임료를 받는 대형로펌의 경우, 타임시트(Time sheet)를 '번역'으로 채워넣으면 고객들이 불만을 가질 때가 많다고 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어떤 외국계 금융기업의 약관조항이 까다롭게 구성돼 있어서 밤을 새워 번역한 다음, 타임시트에 해당 내용을 기재한 적이 있다"면서 "어느날 고객이 찾아와 '수임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고작 번역이나 하라고 일을 맡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해 결국 외주를 줬다"고 했다.

 

문성현 베링리걸 대표는 "대형로펌이 자체인력을 통해 모든 번역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며 "클라이언트가 비용에 민감한 경우 외주를 맡기게 되는데, 최근 법률번역 전문업체들에 변호사들이 참여해 작업의 질(質)과 기밀유지가 모두 보장된다는 점이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외국변호사 처우 불만도 원인으로 = 한편 국내로펌에서 일하는 외국변호사 업무가 번역에 집중된 점도 전문 법률번역 업체 등장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문 등 고유업무보다 계약서나 판결문을 번역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다보니 차라리 로펌 밖에서 제3의 길을 찾는 외국변호사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효율성·보안 등

고려 대형로펌도 전문업체에 맡겨

 

한 외국변호사는 "로펌과 기업에서 외국변호사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이 통역과 법률문서 번역에 집중돼 있다"며 "이렇게 소모적인 역할만 하다가는 법률전문가로서의 커리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어문계열 학부를 나온 한 변호사도 "학부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중국 관련 사건의 통·번역 업무에 투입된다"며 "가끔 내가 변호사인지 번역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다른 어문계열 출신들과 함께 번역전문회사를 세우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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