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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한일 청구권협정 논란의 본질과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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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3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배상청구권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2013다61381 판결)이 선고되자 일본정부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발표하였다. "①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한 청구권협정 제2조에 명백히 반하며, 1965년의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일한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것이다. ②일본으로서는 한국정부가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에 앞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4월 27일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기업인 니시마쓰건설에 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판결에서,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상 중국과 일본 간 배상관계 등에 관하여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실체적으로 소멸되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당 청구권에 따라 소송을 청구하는 권능은 상실되었다"라고 판시하였다. 소권의 결여를 이유로 개인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결론이 현재 일본정부의 입장과 같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정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일본정부는 불만이 있더라도 한국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세계 모든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 일본정부가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2019년 8월 28일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대법원판결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구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현재 일본에서는 '국제법위반',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 '한국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아베정권의 주장에 언론이 동조하고 있고, 많은 국민이 우리 대법원 판결을 납득하지 못하고 아베정권의 보복조치(수출규제, 화이트국가 제외)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역대 한국정부 또는 대통령이 개인청구권에 대해 '해결되었다'고 했는데 역대 한국정부나 대통령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라는 점이라 한다. 이처럼 강제징용 개인배상청구권에 관한 대법원판결을 둘러싼 현재의 한일간 분쟁에서 특징적인 사항은 분쟁이 정부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민심'에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양국 최고법원의 판결도 다르고, '민심'도 다른 상황인 것이다. 이는 양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국이다. 그러나 난국의 해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문명국임을 자처하고 있는 한일 양국이 법의 지배 원칙에 따라 해결하면 될 일이다.

 

우선, '팩트'부터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사법부의 판결에 개입해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하는데, 일본정부가 우리 대법원판결 이후 '한국정부가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할 것'을 요구한 일은 있지만, 딱 부러지게 우리 정부에 사법부의 판결을 바꾸라고 요구한 일은 없다. 올해 9월 5일 개최된 서울지방변호사협회 주최 한일 공동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한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도 "아베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 '적절한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체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한국정부가 나서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선언을 하라는 것인가? 한국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못하게 하라는 것인가? 이것 말고는 아베정부가 말하는 '적절한 조치'를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것은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국가에 대해 도저히 할 수 없는, 실로 무례한 요구"라고 하여, 자신의 추측을 밝혔을 뿐이다. 이처럼 일본정부가 우리 정부에 사법부의 판결에 개입하여 달라고 요구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정확한 '팩트'라 보기 어렵다. 일본정부가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한국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에 기한 강제집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전 대위지급으로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일본 역시 삼권분립을 전제로 한 헌법을 갖고 있는데, 그 입장이 분명하지도 않은 마당에 상대국의 입장을 단정적으로 규정짓고 이를 근거로 비판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은, 우리 국민의 대일감정을 불필요하게 악화시킴으로써 합리적 사태해결을 어렵게 할 소지가 있다.

 

다음, 한일 양국 정부간 분쟁의 관할법정이 어디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일본정부에게 우리 대법원판결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만약 일본정부가 우리 정부에게 앞서 본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니시마쓰건설 판결)을 존중해 달라고 한다면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정부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청구권협정에 개인배상청구권이 포함되고 해결되었는가'하는 청구권협정의 해석 자체에 관한 한 일본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단내용에 구속될 국제법상의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청구권협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청구권협정에 의하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양국 정부간 분쟁이 있는 경우 그 분쟁은 특별히 구성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되어 있을 뿐 어느 일방의 사법부가 해석하는 데에 따르기로 하고 있지 않다. 청구권협정 제3조에 의하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하고,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양측 중재인 각 1인과 중립중재인 1인 등 3인의 중재인으로 구성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청구권협정의 해석 자체를 둘러싼 양국 정부간의 분쟁에 관한 한 우리 법원은 관할법정이 아닌 것이다.

 

지금 한일 양국간 청구권협정의 해석 및 실시와 관련하여 어려운 과제가 제기된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청구권협정 제3조는 바로 이를 위해 존재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그러한 중재위원회를 통한 해결을 거부하는 것은 협정의 명문규정에 위반하는 결과가 된다. 일본정부는 올해 1월 9일 우리 정부에 외교적 협의를 요구하였으나, 우리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5월 20일 양측 직접지명을 통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였고, 우리 정부가 답변시한까지 응하지 않자 6월 19일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일본정부가 지적하는 우리 정부의 '국제법위반'이, 개인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재위원회의 중재에 의한 해결을 거부하는 점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규정 제38조 1항은 '문명국이 인정한 법의 원칙'을 국제법의 법원(法源)으로 인정한다. 저명한 국제법학자 오스카 샤흐터(Oscar Schachter) 교수는 문명국이 인정한 법의 원칙중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을 '문명국이 인정한 법의 원칙'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청구권협정에 협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양국간 분쟁이 있을 경우 이를 중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되어 있다면 그렇게 따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이는 강제동원 개인피해 배상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정부의 해석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강제징용 대법원판결로 초래된 상황에 대한 보복조치로 일본정부가 경제제재를 취한 것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정치문제를 이유로 경제적 보복조치를 하는 것은 'WTO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청구권협정에 정해진 분쟁해결조항에 따르지 않으면서 일본의 WTO협정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우리 정부의 '국제법적 감수성'이 아쉬운 상황이다. 중재위원회가 열리면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면 될 일이지 이를 회피할 일이 아니다.

 

 

김창준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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