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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국제 형사정의 실현, 정창호 ICC 재판관

국제기구 진출 관심 있으면 먼저 ‘방문과정’ 기회 활용을

2003년 로마규정에 따라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는 집단살해와 반(反)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국제 상설 재판소다. 지난 2015년 3월 취임한 정창호(52·사법연수원 22기·사진) ICC 재판관은 재판관 선출 당시 밝혔던 포부처럼 우리나라에서의 판사 경험 뿐만 아니라 유엔(UN)재판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독립적·효율적이고 투명한 재판을 통해 ICC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재판 업무 외에도 우리나라와 미국, 독일 등 전세계를 돌며 특강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임기 9년 중 절반이 훌쩍 지나갔다. ICC를 알리는 것도 재판관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바쁜 업무 중에도 법원과 로스쿨 특강을 위해 일시 귀국한 정 재판관을 지난달 27일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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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호(52·사법연수원 22기·사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재판관은 지난 2014년 12월 미국 뉴욕 국제연합(UN) 본부에서 열린 재판관 선출 1차 투표에서 유효표 104표 중 3분의 2가 넘는 73표를 얻어 재판관에 뽑혔다. 당시 1차 투표에서 3분의 2를 넘겨 당선된 사람은 정 재판관이 유일했다. 그는 ICC 역사상 최연소 재판관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ICC 재판관으로 선출된 것은 송상현(78·고시 16회) 전 ICC 소장 이후 두번째다.

 

하지만 정 재판관은 "행동에 제약도 많고 조심할 점도 많다"며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ICC가 내린 판결이나 결정에 대해 전세계가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ICC 역사상 최연소

 송상현 소장 이후 2번째 재판관

 

ICC 재판관은 모두 18명이다. 이들은 원활한 사건 배당을 위해 전심(6명)과 1심(7명), 상소심(5명) 재판부에 배치된다. 그는 전심을 선택했다. 전심재판부 재판관은 전심사건 뿐만 아니라 1심이나 상소심에서 진행 중인 다른 사건까지 동시에 맡을 수 있다.

 

정 재판관은 취임 직후 ICC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인 콩고민주공화국 사건의 1심을 맡아 지난 7월에 판결을 선고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법정에서 보냈고, 증인신문을 마친 뒤에는 다른 전심이나 상소심 사건도 처리하다보니 4년 반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했다.

 

취임 직후 ‘공고사건’ 1심 맡아

지난 7월에 판결 선고

 

현재 ICC는 20여개국을 대상으로 사건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재판 진행 중인 사건은 3~4건에 불과하다. 사건 한건 한건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ICC에서 1심 재판을 맡으면 월~금요일까지 매일 5시간씩 법정에서 변론을 진행합니다.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려면 보통 4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증인신문을 마친 뒤에는 판결문 작성을 위해 추가로 1년이 더 필요합니다. 가끔 우리나라에서처럼 '한 달에 몇 건을 처리하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ICC에서 2~3개국에 대한 1심 재판을 하다보면 9년 임기가 훌쩍 지나갑니다."

 

ICC가 1심에서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사건은 최대 3건 뿐이다. 통상 사건마다 재판관 3명으로 1심 재판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1심 재판관들만으로는 2개 재판부만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전심재판관 중 사건 전심에 관여하지 않은 재판관이 1심 재판부에 참여하게 된다. 특히 정 재판관은 1심과 전심, 상소심 사건을 동시에 맡는 흔치 않은 경험까지 했다. 그는 "현재 1심 사건 중 2건은 끝났고 1건만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 2건의 전심이 확정돼 1심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전심·상소심 처리하다

임기 9년의 절반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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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의 수사·재판 진행이 너무 느리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국가적 규모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에 대한 ICC 재판은 해당 국가의 운명과 역사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형사소송에서의 절차적 정의, 특히 공정한 재판이 더욱 중시된다.

 

정 재판관은 "2015년부터는 재판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절차 실무를 통일시키기 위한 '재판관 토론회'를 통해서다. 토론회에서 합의가 이뤄진 통합실무는 IC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형사재판을 포함한 모든 재판절차의 통합실무를 담은 '법원실무제요'를 판사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ICC는 최근에야 이런 노력을 시작했다"며 "우리나라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첫해부터 적극적으로 토론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ICC는 모든 판결·결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작업에도 나섰다. 이 역시 정 재판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ICC에서는 모든 형사소송절차가 전자법정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재판관들의 판결·결정을 담은 DB는 없다.

 

"재판관 취임 당시 책은 거의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제 방에는 책이 별로 없어요. 대신 '법고을'이 담긴 메모리 스틱 하나만 들고 갔습니다. 법고을에는 판결문과 저작권 동의를 받은 논문까지 모두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2016년에 ICC 관계자들에게 법고을을 보여주면서 '우리도 이런 DB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DB 구축 작업은 예산이 빠듯했을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시간도 더 걸렸지만, 현재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ICC는 10월부터 테스트를 시작해 조만간 DB를 공개할 예정이다. 특히 DB는 판결에서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도록 주제어를 입력해 검색하면 원하는 단락을 바로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전문화된 시스템을 자랑한다.


석사과정 국제법 전공이

해외진출의 가장 큰 바탕

 

정 재판관이 이번에 잠시 귀국한 목적 중 하나는 우리 법원에 ICC의 전자법정시스템을 소개해주기 위해서다. ICC 법정에서는 종이가 필요없다. 증인신문이나 변론과정에서 문서로 증거제출이 이뤄지는 것은 우리나라 법정과 같지만, 증거자료 자체를 제출하는 게 아니라 목록만 제공하면 재판관들을 비롯한 모든 당사자들이 증거 DB에 들어가 해당 자료를 찾아보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변호인들도 검찰 측의 증거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증거법 체계는 현재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증거자료를 한꺼번에 냈는데,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검찰에 불리한 증거도 모두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판사의 예단을 막기 위해 순차적으로 필요한 기록만 내도록 하다보니 검찰에 유리한 증거만 골라서 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ICC의 경우 모든 기록을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히 피고인에게 유리해 형의 감면 사유가 되는 내용도 필수적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예전 방식과 비슷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주요로펌·사내법무팀

이미 엄청난 국제송무 진행

 

1심 재판 대상인 공소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전심'은 ICC 재판절차의 특징이다. ICC에서 수사와 공소장 작성은 독립된 소추부가 담당한다. 소추부는 수사와 공소유지를 모두 맡는다. 그러나 공소장이 제출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바로 1심 재판부로 보내지지 않는다. 전심재판부가 관할권 여부와 1심 재판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등을 모두 검토해 공소사실을 확정하게 된다.

 

그런데 재판관마다 영미법계·대륙법계 등 출신 배경이 다르다보니 전심재판부마다 절차가 다르거나 재판관이 가급적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려 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도 정 재판관이 나서서 해결했다. 2015년 재판관 토론회에서 정 재판관이 제안한 '전심절차 실무 통합 방안'이 채택됐고, 그는 우간다 사건 전심절차에서 처음으로 통합된 실무 방안을 적용했다. 로마규정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실무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국제적인 수준의 법률서비스 제공이

바로 ‘세계화’

 

정 재판관은 우리나라 법조계 소식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요즘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 "ICC의 경우 체포영장 집행 단계부터 피의사실이 구체적으로 공개된다"며 ICC 실무 관행을 소개했다.

 

"ICC에서도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수사과정에서 비밀을 유지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의 투명성 확보도 중요한 만큼, 특정 국가에 대한 내사나 공식적인 수사 개시 등은 소추부가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이때까진 아직 구체적인 피의자나 피의사실은 특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피의사실 공표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특정 피의자와 그 피의사실은 체포영장에 처음으로 기재되는데, 체포영장의 신청과 발부, 집행은 비밀리에 이뤄집니다. 체포영장 집행이 이뤄진 뒤에야 영장집행 관련 보도자료와 함께 체포영장 내용이 공개됩니다. 목격자나 피해자 진술의 경우에는 수사과정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습니다. ICC에서는 일단 피의자가 체포돼 우리나라의 구속과 같은 상황에 이르면 그때부터 모든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발부 단계부터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 합니다. 체포·구속영장 발부 단계 정도에 이르면 증거도 상당히 확보된 상황이기 때문이죠."


ICC 법정에서는

‘증거자료’ 문서 대신 목록만 제출

 

정 재판관이 해외로 진출한 지도 벌써 9년째다.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사법협력관, 광주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11년 8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재판관이 됐다. 정 재판관의 해외 진출은 비엔나대표부에 파견돼 그곳에 본부를 두고 있는 UN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석사과정으로 국제법을 전공한 것이 가장 큰 바탕이었습니다. 여행이나 판사 시절 해외연수 외에 본격적인 외국 체류 경험은 없었지만, 국제법 관련 뉴스나 생활영어에 계속 관심을 기울였죠. 마침 외교부가 국제법 문제에 관심있는 판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여기에 지원해 영어 테스트 등 선발 과정을 거쳐 외교부에 파견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제 이름이 알려져 유엔재판관으로 선발됐고, ICC 선거에서도 재판관으로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재판관·당사자는 증거DB 들어가

해당자료 찾아봐

 

정 재판관은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세계화는 이미 많이 이뤄졌다"면서도 "외국에서 일하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만이 세계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주요 로펌이나 사내법무팀이 엄청난 양의 국제적 문제에 대해 송무나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발전 자체가 세계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규모에 맞는 국제적인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국내에서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계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제기구 진출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경력자 방문과정 등의 기회를 활용해 6개월가량 경험하는 방안을 추천했다. 국제기구에 채용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막상 채용되더라도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변호인도 증거자료 복사 위해

시간·비용 낭비 없어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유지되는 경제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갖고 계속해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간다면 이에 수반되는 법률수요도 당연히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조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경제주체의 국제경쟁력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정 재판관은 '우리나라 대표'라는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임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다. 주어진 사건을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한편,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학생들이나 젊은 법조인들에게 특강을 하면서 재판소를 알리는 역할도 이어갈 계획이다. "재판 업무 외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이나 독일 등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ICC를 알리는 것도 재판관의 업무이기 때문이죠. 벌써 10군데 넘는 곳에서 특강을 했는데,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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