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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프라이드 런던(PRIDE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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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역 부근에는 필자가 애정하는 한국 음식점이 있다. 피카딜리서커스역은 관광명소가 밀집해 있어 항상 복잡하기에 한번 가기 위해서는 큰 맘을 먹어야 하고, 필자 역시 한식이 그리워 참기 힘들 즈음 방문하여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곤 한다. 

 

7월의 첫째 주 토요일도 평소와 같이 피카딜리서커스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지하철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평소 주말보다 더 많은 탑승객들로 혼잡하고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알지 못한 채 상황이 호전되길 바라며 피카딜리서커스역에서 하차했다. 

 

이런. 이미 엄청난 인파가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길게 줄 서 있고, 피카딜리서커스역부터 트라팔가광장, 레스터스퀘어 인근까지 모든 차량 진입은 통제되었으며 모든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위는 온통 무지개 빛이었다. 무지개 깃발을 내건 상점들, 어린이 동반한 가족, 젊은이, 어르신까지 무지개 깃발, 페이스 페인팅, 의상 등으로 무장한 채 상기된 얼굴로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PRIDE IN LONDON' 무지개 빛 사이로 보이는 문구. 엄청난 인파로 당황한 필자는 황급히 검색했다. "The UK's biggest, most diverse Pride. A home for every part of London's LGBT+ community."

 

'LGBT(Q)+'란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 트랜스젠더(trans)와 퀴어(queer) 그리고 그밖에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든 성정체성(+)의 첫 글자를 합친 단어로(이하 '성소수자'라고만 함), 프라이드 런던(PRIDE IN LONDON)은 이른바 '성소수자'의 인권 축제다. 



매년 여름 영국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인권 축제 '프라이드 런던' 

프라이드 런던은 런던 시장의 주최 하에 개최되는 축제로, 'LGBTQ 프라이드의 달(Pride Month)'인 6월부터 진행되는 각종 관련 행사들을 시작으로, 7월의 퍼레이드가 그 정점을 이룬다. 

 

매해 6월은 'LGBTQ 프라이드의 달'로, 전 세계 성소수자 인권 보호 운동의 결정적 계기가 된 스톤월 폭동(혹은 항쟁, Stonewall riots)이 1969년 6월 28일에 발생한 것을 기념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으로 간주하고 단속하였으며, 영국에서도 1967년까지는 성소수자를 범죄자 취급하였다. 이에 이들을 단속하려는 뉴욕시 경찰들이 성소수자 아지트 '스톤월 인(Stonewall Inn)'을 급습해 200여명의 성소수자를 거리로 몰고 일부는 폭력 행위까지 일삼았다. 이에 성소수자 및 일부 시민들이 1969년 6월 28일 충돌하였고 시위는 장기화되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성소수자 인권 보호 운동이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영국에서도 1972년 7월 1일 스톤월 폭동을 기념하는 프라이드 축제가 공식적으로 개최되었다. 

 

참고로 '프라이드'는 스톤월 폭동 1주념을 기념하는 첫 번째 퍼레이드를 기획한 양성애자이자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인 브렌다 하워드(Brenda Howard)의 별명 'Mother of Pride'에 기원하며, 해당 축제를 대표하는 '무지개 깃발'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이자 미국 시의원 사상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인 하비 버나드 밀크(Harvey Bernard Milk)가 1978년 디자이너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에 의뢰하여 완성한 것이다.


영국에서 1861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한 법률이 유지

현재 프라이드 런던은 다수의 참가자 및 기업들의 참여 하에 진행되는 영국의 큰 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지만, 영국도 성소수자에 대해 처음부터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영국은 '1533년 버거리법(Buggery Act 1533)'을 제정해, 동성간 성행위를 죄로 분류하고 최고 사형을 선고했는데, 동성애자를 사형할 수 있다는 위법은 1861년까지도 유지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의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독하고, '보편적 기계' 개념을 창안하여 인공지능(AI)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유명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이, 1952년 영국에서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한 후 1954년 41세의 나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며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소수자의 인권 옹호의 물결이 일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의 성소수자 인권 관련 법률의 변천사

1988년 5월 24일 '1988년 지방정부법(Local government act 1988)'에 제28조(Section 28)가 신설되었는데, 해당 조항은 지방정부당국 및 학교의 동성애 조장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 조항에 대해 많은 이들의 반대가 있었고, 결국 2000년 6월 21일 스코틀랜드, 2003년 11월 18일 그 외 영국 지역에서 각 '2000년 공공생활에서의 윤리 기준 등에 관한 법(Ethical Standards in Public Life etc. Act 2000)' 및 '2003년 지방정부법(Local Government Act 2003)'에 기해 폐지되었다.

 

영국 정부는 1999년 군인의 성 정체성을 조사하는 것이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의 제8조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 받을 권리(private and family life) 및 제13조 실효적 구제를 받을 권리(effective remedy)를 침해한다는 유럽인권재판소 판결(Smith And Grady v United Kingdom and Lustig-Prean and Beckett v UK)에 기해 동성애자의 입대를 금지하는 영국 군대(British Army)의 정책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였고, 2000년부터 동성애자의 입대가 허용되었으며, 2016년에는 '군 법률안(Armed Forces Bill)' 이 개정되며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해당 조항들이 삭제되었다. 

 

2002년에는 '2002년 입양 및 어린이 법률(Adoption and Children Act 2002)'상 입양 조건 중 '결혼한 부부'일 것이라는 조건이 삭제되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동성애자들도 아이를 입양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2008년에는 '1986년 공공질서에 관한 법(Public Order Act 1986)'이 일부 개정되고, '형사 사법 및 이민에 관한 법률(Criminal Justice and Immigration Act 2008)'이 신설되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법으로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 구금하거나 벌금을 선고하거나 둘을 병행하여 처벌한다. 

 

2005년에는 동성간 혼인관계를 인정하는 '2004년 시민 동반자법(Civil Partnership Act 2004)'이 발효되어, 결혼한 동성애자들에게 '시민 동반자(civil partnerships)'라는 법률혼과 유사한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마침내 2013년 7월에는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의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동성 결혼은 이후 2014년 2월 스코틀랜드에서도 합법화되었지만, 여전히 북아일랜드에서는 이를 합법화하지 않고 있으며, 동성 결혼 제도는 현재에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올해 프라이드 런던 퍼레이드에만 약 1500만 명이 참가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스톤웰 폭동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프라이드 런던의 정점인 7월 6일 퍼레이드에는 약 1500만 명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프라이드 런던은 시민뿐만 아니라 기업의 후원을 받는데, 그 명단을 일부 나열해 보면, 세계적인 유통기업 테스코(Tesco), 바클레이즈은행(Barclays), 시티은행(citi), 델타항공(Delta), 페이스북(facebook), 위워크(wework), 피앤지(P&G), 프루덴셜(Prudential)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 축제를 지지한다. 또한 영국의 변호사협회(The Law Society of England and Wales), 영국법정변호사회(the Bar Council), 영국공인법률집행기관(Chartered Institute of Legal Executives) 소속 변호사들도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All are equal under the law)'라는 현수막을 들고 퍼레이드에 동참하였다. 

 

물론 영국의 성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축제로 풀어가고 해결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여러 생각에 빠지려고 하는 찰나, 필자가 애정하는 비빔밥과 떡볶이가 나왔다. 이렇게 이번 주말도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정다희 해외통신원 (변호사·런던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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