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지방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사막화 방지’위한 작은 정성… ‘지역축제’로 결실 맺어

법원 국제봉사단 ‘희망여행’ 몽골 봉사 동행 취재

 

154892.jpg
2019년 몽골 희망원정대와 보르노르 학교 교직원·학생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초원에 비가 내려 바람이 습했다. 도착 전 사흘간 내린 비로 고랑이 파이고 도로 일부가 물에 잠겼다. 연 평균 강수량이 300㎜에 불과한 몽골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비포장 도로에 흙이 질펀해져서 천천히 가야 합니다. 버스가 웅덩이에 빠지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통역을 맡은 현지인 절라(33)가 말했다. 수도 울란바토르(Ulanbataar)에서 북서쪽으로 130㎞가량 떨어진 인구 5400명의 소도시 보르노르(Bornuur)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법원 국제봉사단 '희망여행(공동대표 위광하 서울고법 고법판사·정준호 부산고법 사무국장)'이 5년간 꾸준히 찾은 곳이다.

 

단장인 권기철(51·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중심으로 법원 가족과 의료진으로 구성된 37명의 '희망원정대'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은 지난 달 28일 오후 1시경 목적지인 보르노르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가 코너를 돌아서자 봉사단을 알아본 교직원과 아이들이 뛰어나와 반갑게 일행을 맞았다. 전통공연으로 꾸려진 환영행사가 끝나자 학교 측은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허르헉(horqhog)'을 내왔다. 갓 잡은 양고기를 채소와 함께 큰 냄비에 담고 뜨겁게 달군 돌을 올려 1~2시간 익힌 뒤 먹는 음식이다.

 

따뜻한 환대 속에 희망원정대는 짜임새 있는 봉사를 진행하기 위해 밤늦도록 회의를 거듭했다. 

 

154892_3.jpg
이선희(43·32기) 광주지법 부장판사가 에코백 만들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왼쪽) 한글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박도하(25)씨.(오른쪽)

  

◇ 한글·리코더 수업 등 다채로운 봉사 = 29일 새벽,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앞두고 갑자기 전기가 끊겼다. 학교 관계자는 "며칠간 내린 비로 합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수돗물을 끌어오는 모터가 작동을 멈춰 학생들에게 대접할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데 차질을 빚었다. 노현주(56) 울산지법 참여관을 비롯한 간식팀은 생수로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전기 공급은 오전 11시 40분쯤에야 간신히 복구됐다.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법원 희망원정대는 침착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반응이 좋았던 한글 교육을 올해 더욱 확대하고, 에코백 만들기와 리코더 수업, 과학체험 수업을 추가했다. 최근 몽골 교육청이 실시한 제2외국어 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어가 일본어와 중국어를 누르고 영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판사와 직원의 자녀들로 꾸려진 한글학교팀은 학생들을 4개 학급으로 나눠 한글과 기초 단어를 가르쳤다. 높은 한국어 열기를 반영하듯 몽골 학생들은 단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수업에 집중했다. 학부모들까지 교실에 찾아와 강의를 들었다. 지난해 한글 수업을 들었다는 한 학부모는 1년 동안 궁금해하던 내용을 빼곡하게 적어와 질문을 쏟아냈다.


어린이들 대상

에코백 만들기·과학체험·한글공부도

 

한글교사로 참여한 위가현(21)씨는 "한글 단모음·단자음의 발음이 몽골어와 비슷해 단기간에 큰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심정으로, 자·모음의 결합법과 발음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에코백 만들기도 큰 인기였다. 학생들은 하얀 에코백 위에 촘촘하게 자수를 놓듯 멋진 그림을 그려 봉사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케이팝(K-POP)의 영향으로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유' 같은 한국 가수를 그린 학생도 많았다. 에코백 수업 부팀장을 맡은 이선희(43·32기)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학생들이 이렇게 열의를 보이며 수업에 임할 줄 몰랐다"면서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민병철(57) 의정부지법 사무관은 연일 구슬땀을 훔치며 팝콘을 튀겨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줬다. 정진영(44) 서울서부지법 실무관 등은 포토 프린터로 사진 인화 서비스를 했다. 이미라(50) 바이올리니스트, 박도하(25)씨 등 음악교육팀은 리코더 수업을 이끌며 아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희망여행 관계자는 "봉사가 항상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매년 활동 프로그램이 성장하고, 풍성하게 가다듬어졌다"고 말했다. 


154892_6.jpg

 

◇ 의료봉사·식수활동 호평 = 공산주의 국가 시스템이 남아있는 몽골에서 의사는 대부분 공무원이다. 의대 졸업 후 각 지역 보건소로 발령을 받는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데, 처우와 시설이 열악해 발전 속도가 더디다. 지방으로 갈수록 제대로 된 진료와 상담을 받기 힘들다. 이 때문에 희망원정대와 동행한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진은 주민들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다.

 

의료 봉사를 맡은 정지훈(50) 상지대 한의예과 교수(서울고법 조정위원)와 이상민(41) 늘푸른소아과 원장이 진료를 시작하자 주민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4년째 몽골을 찾은 정 교수는 기숙사 한 켠에 진료실을 마련해 정성스레 침을 놓았다. 육식을 즐기는 몽골인들은 하체에 비해 상체가 발달해 허리와 무릎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 30㎞나 떨어진 곳에서 찾아왔다는 돌람첸드(34)씨는 "목축을 하기 때문에 허리통증을 달고 사는데, 한국 침술의 효과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다"고 말했다. 

 

다른 건물에서는 이상민 원장의 진료가 한창이다. 지붕수리공 바트후(41)씨는 일하다 독성물질이 오른팔을 덮치는 사고를 당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찾아왔다. 자리에 앉아 붕대를 풀자 괴사(壞死)해 허옇게 변한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원장은 소독과 치료를 마치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줬다. 봉사단원으로 참여한 김범수(43·32기) 변호사는 진료실에서 의약품을 전달하고 대기 환자를 받는 보조원 역할을 했다. 환자들이 예상보다 많아 중간에 약봉지가 떨어져 팝콘 봉지에 약을 담아주기도 했다. 

 

154892_2.jpg
29일 이상민 늘푸른소아과 원장이 독극물에 노출된 환자의 팔을 치료하고 있다. 

 

이 원장은 "보르노르 지역에도 나름의 의료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이를 교란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일회성 치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스스로 본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문제는 凡지구적 과제”

 5년째 나무심기 행사


극심한 기후변화를 겪고있는 몽골은 전국토의 76.9%에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봄철 동북아시아를 휩쓰는 황사(黃沙)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통역을 지원하기 위해 보르노르를 찾은 한국인 활동가 배윤주씨는 "캐시미어(cassimere) 산업의 활성화로 현지인들이 염소를 많이 키우게 됐는데, 염소는 식물뿌리까지 캐먹는 습성이 있다보니 토지 황폐화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154892_1.jpg
지난 30일 몽골 보르노르 학교에서 권기철(51·사법연수원 28기·왼쪽) 부산지법 부장판사와 류준구(39·36기·오른쪽) 부천지원 판사 등 봉사단원들이 식목행사에 쓰일 나무를 옮기고 있다.


희망여행 측도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범 지구적인 과제임을 인식하고 매년 이곳에서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빗줄기가 약해진 30일 오후 김병인(55) 서울북부지법 서기관이 식수(植樹) 팀장을 맡아 1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식목행사에는 모든 단원들이 참여했다. 유기돈(50) 서울회생법원 회생위원은 5m가량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떠와 나무를 적시고, 척박한 토양을 다졌다. 그동안 학교 측이 꾸준히 묘목을 돌봐준 덕분에 학교 앞에는 희망여행이 5년간 심은 나무들이 작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식수를 마친 김 서기관은 "작은 시작이지만 몽골의 사막화를 막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사법한류(韓流)의 '언더' 역할도 톡톡히 = "희망여행과의 정기적인 교류가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봉사단 방문이 하나의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까요?" 

 

앵흐토야(52) 교장은 희망여행의 봉사활동이 마을의 '구심점'이 돼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8년 전 보르노르 학교에 부임한 이래 묵묵하게 한 자리를 지키며 풀뿌리 교육에 헌신해 온 그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희망여행의 방문에 맞춰 진행되는 '보르노르 배구대회'는 지난해 5개 부락이 참가했지만 올해는 9개 부락으로 규모가 커졌다. 

 

154892_5.jpg

 

류준구(39·사법연수원 36기) 부천지원 판사가 이끈 '버스킹 공연'은 지역 문화회관을 빌려 진행할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또 희망여행이 후원하는 '보르노르 주민 장기자랑 대회'는 지역민들의 숨겨진 끼와 재능을 발산하는 무대가 됐다. 장기자랑 대회 당일 손순희(54) 부천지원 행정관의 아들인 정인서(14)군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며 송판을 격파할 때는 동네 아이들이 뜨거운 환호성을 질렀다.


문화회관서 ‘버스킹’ 공연

 태권도 시범에 환호성도

 

154892_4.jpg

선교나 영업과 달리 특별한 목적 없이 진행되는 희망여행의 순수한 봉사활동은 마을 주민들의 호감을 얻어 한국과 한국 법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 봉사단원은 학교를 떠나기 전날 몽골 아이가 수줍게 내민 종이에 '안녕히 가세요', '선물' 같은 한글 단어가 삐뚤빼뚤 적힌 것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법대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는 3학년 학생은 "몽골에서 판사가 돼 나중에 한국 법원을 꼭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법 제도를 알리는 사법한류(韓流)의 '언더(Under)'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희망여행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호문혁(71) 서울대 명예교수는 "법원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활동하는 이런 해외 봉사는 법원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희망원정대의 몽골 방문이 봉사활동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나흘간의 봉사를 마친 다음에는 별빛이 쏟아지는 엘승타사르해 사막과 중앙아시아 최고 휴양지로 손꼽히는 테를지 국립공원 등을 방문해 낙타·말타기와 전통 활쏘기 등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 가족단위로 방문한 단원들을 위한 배려다. 

 

어느 학생의 소망은

“몽골판사가 되어 꼭 한국방문”

 

이번 방문의 주무를 맡은 김영각(46) 청주지법 참여관은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으로 희망여행 활동이 정착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며 "몽골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글 학교, 화장실 지어주기 사업 등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몽골 보르노르 = 왕성민 기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