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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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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재판관 7대2의 결정으로 형법상 자기낙태죄 조항(제269조 제1항)과 업무상승낙낙태죄 조항(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2017헌바127, 이하 '대상결정'). 다만, 위헌의견 7인 중 4인이 ‘헌법불합치 및 계속적용’을 주장하여 결국 주문(主文)은 '헌법불합치 및 2020년 12월 31일까지 계속적용'이 선택되었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7년 전에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었고(2012. 8. 23. 2010헌바402, 이하 '종전결정'), 당시에는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이 4대4로 나누어졌었다. 대상결정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관점에서 상세한 분석과 검토가 이루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그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본권의 충돌'에 대한 이해의 변화(?)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종종 '기본권의 충돌'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을 언급하는 것은 기본권충돌이 문제되는 상황과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기본권충돌은 충돌하는 기본권의 조정을 위한 입법단계에서 혹은 입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일반법원의 재판이나 재판소원) 충돌하는 두 기본권을 조정하는 원리이고, 일단 입법이 이루어진 후 그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대립하는 기본권이 이미 공익(입법목적)으로 전환되어 과잉금지원칙(또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의 적용만이 문제될 뿐 기본권충돌 논의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한수웅, 헌법학, 법문사(제5판), 516-517면).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을 언급하면서도 사안을 과잉금지원칙에 의해 심사하였고, 기본권충돌의 해결방안으로 제시되는 ‘실제적 조화의 원리’도 결국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2013. 6. 27. 2012헌바37, 판례집 25-1, 506, 512), 법률의 위헌심사에서 기본권충돌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결정의 다수의견(헌법불합치의견)은 '심사기준' 항목에서 '이 사안은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확정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다. 자기낙태죄 조항의 존재와 역할을 간과한 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직접적인 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앞에서 본 학설의 비판을 수용하는 듯한 설시를 하였다. 다만, 법률의 위헌심사에서도 기본권충돌 논의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견해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바(과잉금지원칙은 자유권 행사가 공익침해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간접적으로 대립당사자의 자유를 훼손하는 경우 적용되는 것이어서, 자유권 행사가 직접적으로 대립당사자의 자유를 훼손하는 기본권충돌의 경우에는 문제되는 충돌 상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에서도 기본권충돌은 의미가 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김하열, '자유권 제한입법에 대한 위헌심사', 동아법학 제56호, 1-35면), 기본권충돌 논의가 부적절한 이유에 대해 다수의견이 보다 분명하고 상세하게 설시할 필요는 있었다. 이 부분은 기본권충돌에 관한 종래 헌법재판소 입장과 명백히 구별되는 것으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2. '자기결정권'인가, '자기운명결정권'인가?

헌법재판소는 간통죄(2011헌가31등), 성매매(2013헌가2), 혼인빙자간음죄(2008헌바58등), 연명치료중단(2008헌마385) 등의 사건에서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사용한 바 있고, 낙태죄에 대한 종전결정에서도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대상결정에서는 청구인이 '자기운명결정권'을 주장했음에도 위헌의견과 합헌의견 모두 '자기결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결정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은 완전히 호환가능한 개념인가? 두 표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인가?

자기결정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은 의미도 다르고 보호영역도 달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은 자기운명결정권보다 훨씬 넓다. 자기결정권에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두 포함될 수 있어서, 그 자유박탈의 의미가 매우 추상적이다. 반면, 자기운명결정권의 경우 그 제한의 의미는 무겁고 심각하게 느껴진다. 헌법재판소가 성적자기결정권이 문제된 사건들을 자기운명결정권으로 표현하고 낙태가 문제된 사건에서 자기결정권으로 표현한 것은 어딘지 기이하다.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 그의 부모가 되는 것, 그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 아니면 그 모든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결정만큼 운명적인 결정이 또 있겠는가? 자기운명결정권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경우가 아닐까?


3. 위헌의견에 대하여

다수의견(헌법불합치의견)은 낙태죄 조항이 입법목적 정당성과 수단적합성은 인정되지만 침해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을 위반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였는데, 그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출산 여부를 결정할 권리도 포함된다. (2)인간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보호를 달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3)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임신 22주)가 보호의 정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4)태아의 착상시부터 독자적 생존가능시기까지는('결정가능기간')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갈등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에게 낙태를 허용하여야 한다. (5)낙태죄 조항이 모든 낙태에 대해 예외없이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태아는 생존을 위해 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독자적 생존가능시기를 기준으로 태아의 생명권 제한에 규범적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가능한 입론으로 보인다. 다만, 낙태죄 조항이 위헌인 이유 또는 그 범위가 불명확하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대해 예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일정한 규율영역으로 확정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입법자에게 명확한 입법지침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단순위헌의견은 위에서 본 다수의견 논거들에 동의하면서, 더 나아가 임신 전체 기간을 3분기(trimester)로 나누어 제1분기(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동안에는 아무런 제한없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기간에 자유로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임신기간을 3분기로 나누는 것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사유로 안전한 낙태를 드는 것은 '1분기에는 왜 태아의 생명침해가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임신여성에게 안전하기 때문이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부당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4. 합헌의견에 대하여

합헌의견은 태아는 그 시기를 불문하고 생명보호 필요성에 있어 출생한 사람과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므로 위헌의견에서 말하는 결정가능기간이나 3분기에 의한 구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임신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본다. 다만, 합헌의견은 대상결정의 사안을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충돌'이라고 하였으나, '낙태의 자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명시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본권의 충돌 상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 주문의 문제점

대상결정이 자기낙태죄가 위헌으로 판단되면 논리적으로 위헌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형법 제270조 제1항을 굳이 '의사' 부분으로만 심판대상을 한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입법개선이 필요한 헌법불합치 주문을 내면서 형법 제270조 제1항 전부가 아닌 '의사' 부분만 헌법불합치를 선언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대상결정은 형벌조항에 대해 계속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는데, 위헌으로 판단된 형벌조항의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은 법치주의원리에 위반되고, 형벌조항은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이 상실되도록 한 헌법재판소법의 명문규정에도 반한다(제47조 제3항). 위헌인 형벌조항을 계속적용하는 도중에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경우 그 개선입법이 당연히 소급하는지, 소급한다면 그 시기는 어디까지인지도 문제되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개선입법이 헌법재판소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 그 개선입법의 위헌 여부가 다시 문제될 수 있고 개선입법이 재차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그 소급효의 범위 또한 다시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법적공백의 방지를 명분으로 헌법불합치 주문을 선택하지만 헌법불합치결정과 개선입법 사이에, 혹은 그 이후까지 법적 규율의 불확정으로 인해 법적안정성이 위협받는다.

무엇보다도 대상결정의 헌법불합치의견은 스스로 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을 부인하고 그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하였음에도, 단순위헌결정으로는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긴다고 한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는 헌법불합치결정이 위헌결정의 효력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른바 법률의 흠결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예외적인 주문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검토 없이 헌법불합치 주문을 남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상결정에서는 위헌의 영역을 특정하여(예컨대, 독자적 생존가능시기) 한정위헌을 선고하거나, 위헌 영역을 특정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단순위헌을 선고했어야 할 것이다.


전상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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