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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분쟁 해결위해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해야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 최근 논문서 주장

현직 고위법관이 1심 민사재판의 증거조사 및 사실심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을 시작하기 전 증거조사를 먼저 할 수 있도록 하는 '증거개시절차'로도 불린다. 법원은 소송절차가 시작되기 전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상대방에게 문서제출명령 등을 내리게 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해 자료 제출을 사실상 강제한다. 예컨대 자동차 급발진 관련 소송에서 소비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기업 측이 급발진 원인과 관련된 문서제출명령을 거부하면 곧바로 패소할 수도 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원·피고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본안 재판 전 독립된 증거조사 절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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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두(54·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서울대 법학평론에 게재한 '새로운 법조인 양성 체제하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의 도입 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우리나라에서는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지방법원 합의사건의 판결에 대한 항소율은 1997년 30.8%였는데 2007년 40.6%로 무려 10%p 증가했고 2017년에도 40.5%로 증가한 채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 시작하기 전 증거조사 먼저

 ‘증거개시 절차’로

 

이어 "점점 더 많은 사건들이 항소되고 있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1심에서의 증거조사가 충분하고 철저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민사소송에서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자진해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이 거의 없다. 법원에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해 결정을 받아도 상대방이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또 "1심에서 패소한 당사자는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심에서 추가 입증을 위해 증인신청, 사실조회신청 등 많은 증거신청을 하고 있다"며 "항소심 법원은 1심에서 신청할 수 있었던 증거신청을 항소심에서 하는 것이라고 해 증거신청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같이 부실한 증거조사를 거쳐 선고되는 항소심 판결은 부족한 증거수집으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며 "그 결과 재판에서 패소한 당사자는 재판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원·피고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 공개

 쟁점 명확히

 

김 부장판사는 1심에서 증거조사를 철저히 하도록 재판제도를 개선다면 '제1심에서의 불충분한 증거조사 → 제1심 판결의 부실화 → 항소율 증가 → 제2심에서의 추가 증거조사 증가 → 추가로 밝혀지는 사실관계 증가 → 제1심 파기율 증가 → 제1심 판결에 대한 항소율 증가 → 제2심 법원의 부담 증가 → 제2심 법원의 심리기간 장기화 → 분쟁의 종국적 해결 지연' 이라는 기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는 1978년 832명, 1988년 1666명, 1998년 3521명, 2008년에 8895명, 2018년에 2만553명이 되어 10년마다 2배 이상 증가해 왔다"며 "디스커버리 절차의 운영에는 많은 수의 변호사가 필요한데 로스쿨 도입 이후 이제는 우리나라도 인적 인프라가 갖춰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변론준비절차의 일종으로 디스커버리 절차를 도입해 변론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증거조사를 철저히 시행하면 사실관계가 조기에 확정될 것"이라며 "그 결과 쌍방 당사자들은 법정변론에 앞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받게 되며 그 결과 소송에서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1심서 철저한 증거조사 시행 안 돼

항소율 점차 증가

 

그는 나아가 "미국에서는 상당수의 소송이 변론기일 전 단계에서 특히 디스커버리 절차가 진행되는 중이나 끝난 직후에 화해교섭 또는 조정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디스커버리 절차를 도입하면 화해 또는 조정으로 조기에 종료되는 사건의 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디스커버리 절차를 도입해 진행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관여가 필수적인 만큼 변호사 선임률이 높은 민사합의사건부터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디스커버리 절차의 수단으로는 증언녹취서 제도의 도입,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되는 문서 범위의 확대, 문서제출의무 불이행 시 받게 되는 제재의 강화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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