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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날 특집

[법의날 특집] 대한민국 법조1번지 ‘서초동 한바퀴’

건물마다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녹취·속기록’ 간판은 이색적
법원·검찰청 안내 데스트에 앉은 60~70대 모습도 낯설지 않아

하루 평균 유동인구 10만명. 판사와 검사, 변호사, 법무사 등 법조인들의 삶의 터전, '서초동(瑞草洞)'. 먼 옛날 서리풀(벼)이 무성해 '서리풀이', '상초리'라 불렸던 데서 유래한 현재의 지명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법조 1번지'로 통한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서울 서소문의 법원·검찰 청사가 1989년 서초동으로 차례로 이전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서초동 법조타운'은 1995년 대법원과 대검찰청까지 옮겨오면서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서초동 법조타운 시대가 열리면서 이곳에 터잡은 것은 비단 법조인뿐만 아니다. 본보는 제56회 법의 날을 맞아 법조인이 아닌 일반 생활인의 눈으로 서초동 이야기를 그려가는 평범한 서리풀 이웃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인터뷰 같은건 안 하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손을 내젓는 60대 사장님은 서초동에 자리잡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서울법원종합청사로 이어지는 교대역 11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녹취', '속기' 사무실 가운데 한 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녹취록은 시간당 30만원인데 다짜고짜 20만원에 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냥 타자치는 게 뭐가 어렵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이 일은 속기사 자격증 없이는 할 수 없고,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는 것인 만큼 저희도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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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길거리에 즐비한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법조1번지'답게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녹취, 속기록 사무소가 있다.

 

 음성인식시스템,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등으로 법조계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외국 법정에서는 이미 속기사를 AI로 대체하고 있는 곳도 있다.

 

“녹취록 언제까지 할지”

 속기사들은 벌써 ‘AI시대’ 걱정

 

"사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우리 역할이 아예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할 수 있는데까지는 계속 버텨보려고 합니다."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니 서울법원종합청사 동문 출입구가 나온다. 전국에서 가장 재판이 많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민원인들을 맞이하고 있던 중년의 자원 봉사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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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층에 있는 민원안내·지원센터에서 은퇴 후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노신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봉사자들은 하루 3시간가량을 이곳에서 보내며 법원에 찾아온 민원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퇴직 후에 소일거리를 찾던 중에 아내가 서초구청 소식지에서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기사를 보고 권해줬습니다. 벌써 10년째라 시간으로만 7000시간 가까이 된 것 같네요. 은퇴 후 집에만 있기는 싫고, 주기적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서초구청 소속으로 일하는 봉사자들은 법원 뿐만 아니라 검찰에도 있다. 평일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서 담당 구역을 맡는다. 은퇴한 60~70대가 가장 많고 대학원생부터 80대 이상의 고령자도 있다.

 

"주로 청사나 법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데, 장소나 일반적인 사항을 안내합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전문적인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상황이 잘못됐을 때 자원봉사자에게 와서 항의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하니까요."

 

그들이 보기엔 이곳에 온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좋은 일로 오는 사람들은 적으니 대체로 얼굴이 좋지 않죠. 재판 끝나고 나와 우는 사람부터, 억울해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래도 봉사자에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 봉사자라고 하면 대체로 별 말 없이 돌아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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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일식집이 있는 빌딩 뒷편 골목길을 누비다보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다운 분식집도 보인다.

 

 법원청사를 빠져나와 이웃한 검찰청사 앞 골목을 걷다보니 작은 분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만큼 북적거리는 이곳은 서초동 사람들이 간단한 끼니와 간식을 해결할 수 있는 숨은 맛집이다. 5분 거리에 있는 검찰 기자실에 2년째 일주일에 세 번씩 김밥을 배달하며 서초동 기자들의 아침도 책임지고 있다.

"잠깐 놀러왔다가 3일 만에 인수해서 시작한 게 8년째예요. 직장생활도 한번 해본 적이 없다가 장사로 자리 잡게 됐는데, 이 동네분들은 점잖은데다 단골 손님도 생기고 하니 그 재미에 계속 하고 있어요."

 

점심시간 검찰청사 골목 분식집에는

단골손님들로 긴 줄


8평 남짓의 알찬 공간을 지켜오면서 작은 식중독 사고 한번 나지 않았던 것은 사장님의 자부심이다. 50대 초반의 그는 대학시절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다.

 

"3년 전인가, 크게 시끄러웠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정부서울청사 침입사건 이후 매출이 많이 떨어졌어요. 이전에는 판·검사님 사무실까지 야참이나 저녁 식사를 배달하곤 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사무실까지 직접 올라가지를 못하니까, 아예 주문이 줄어서 이제는 배달도 하지않게 됐어요. 요새는 나홀로 소송도 많고 전자소송도 발달해 일거리가 줄어든 게 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예요. 손님들이 메뉴를 어떻게 시키는지만 봐도 경기가 어떤지 알 수 있거든요."

 

“손님들이 어떤 메뉴 시키는지만 봐도

경기 어떤지 알아”

 

할 수 있는 한 맛있는 음식을 계속 대접하고 싶다는 사장님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어봤다. 

 

"손님들이 싹싹 먹고 더 달라고 할 때 가장 행복해요. 변호사 사무실이 잘 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죠. 반면 단골손님들이 '이제 이사가요'하면서 떠날 때가 제일 서운해요. 그래도 아무쪼록 변호사님들 일감이 많아져서 거리가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끼니를 해결하고 법원·검찰 삼거리 큰 길을 따라 내려오니 구둣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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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길가에 있는 작은 구두박스. 부부는 이곳에서 23년째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서초동 사람들의 구두를 깨끗하게 닦고 수선해준다.

 

 "저쪽으로 쭉 직진하시다가 지하철역이 보이면 우측으로 가시면 나와요."

 

익숙한 듯 행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아주머니도 이 거리의 터줏대감이다. 부부가 1996년부터 자리를 잡고 시작한 구둣방은 초등학생이던 딸이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삶의 터전이다. 서초역과 교대역 사이에 위치한 탓일까, 하루에도 길을 묻는 행인들이 수십명이나 된다.

 

"여기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사장님(남편)이 기술이 있어서 저는 찍새(닦을 구두를 모아서 가져오는 사람)부터 시작했죠.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잘나가는 변호사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제가 더 좋아요.(하하) 다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어요."

 

큰길가 구둣방 사장님 부업은

길 묻는 행인들의 ‘길잡이’

 

일은 어떤지 물었다. "재판갈 때 깨끗한 구두를 신고 가려고 오시는 분들도 많으니 다른 곳보다는 수월한 편이에요. 비 오는날, 눈 오는 날에는 손님이 적은데, 그런 때에는 주변 변호사 사무실 등으로 직접 올라가서 일거리를 받아오기도 합니다. 재판결과에 따라 손님들이 성토하기도 하는데, 예전에 가정법원이 있을 때에는 아기들도 함께 데리고 오는 걸 보면 마음이 안좋기도 했어요."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기도 했다. "예전에는 구둣방에서 상품권을 팔기도 했는데, 상품권 박스를 통째로 도둑 맞아서 1300만원어치를 잃어버린 적도 있어요. 보름을 찾아 헤맸는데도 못찾았어요. 이후로 상품권은 안 팔아요."
이제는 손주를 기다릴 나이가 됐다는 사장님도 그저 법조계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두닦이라고 무시를 받은 적도 있고, 덕분에 재판 잘됐다고 인사를 받기도 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요. 바라는 게 있다면 젊은 변호사님들이나 법무사님들이 요새 너무 힘든데,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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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둣방을 나와 법원삼거리를 따라 다시 올라가 법원 산책로를 걸었다. 잘 조경된 나무와 꽃이 삭막한 서초동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 했다. 마침 이곳을 관리하는 60대 조경사를 만났다. 

 

법원삼거리 따라 올라가면 산책로

삭막한 거리의 쉼터로

 

"법원 근처의 잔디나 꽃, 나무를 관리합니다. 원래는 일반 회사에서 인사 업무를 하다가 은퇴 후에 자격증을 따서 조경일을 하게 됐는데, 이곳에서 일한 지는 4년가량 됐어요. 좋은 사람을 좋은 곳에 배치하고 5~6년 쯤 지나면 자기 몫을 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지요. 꽃이나 나무도 잘 키우면 자기 몫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키웠고, 지금은 꽃과 나무를 키우는 셈이죠."


달라진 업무만큼 환경도 생소했을 것 같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에는 사람들이 다 자기 일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볼 정신도 없이 바쁘게 걸어가더군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법원 앞 잔디밭에 예쁘게 심어놓은 장미나 여러 꽃들을 사람들이 보질 않으니까요."

 

60대 조경사

“예전에는 사람 키웠고 지금은 나무 키워”


그는 법원 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당부할 게 있다며 꼭 전해달라고 했다. "법원은 조경이 상당히 잘 돼있는 편입니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이나 서울고법 앞에 있는 소나무 전지는 인근 관청 중 단연 돋보입니다. 마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나무처럼 잘 관리돼 있습니다. 법원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시간이 되시면 법원과 인근 무지개공원까지 둘러보시면서 잘 가꾸어진 정원과 자연을 보시고 잠시라도 여유를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