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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聽訟之本 在於誠意”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본연의 업무인 재판에 달려”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聽訟之本 在於誠意(청송지본 재어성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송사를 다룸에 있어 그 근본은 성의를 다함에 있다'는 뜻인데, 재판에 임하면서 항상 가슴 속에 새기던 말입니다."

유남석(62·사법연수원 13기) 헌법재판소장은 30여년간 법관 생활을 하며 항상 다짐해 온 글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재판에서는 정성을 다해 당사자의 진술을 경청하고 당사자의 처지와 이해관계의 실질을 제대로 파악하여야만 이를 토대로 정당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관 재직기간 중 9년 5개월여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근무하며 사건을 비교법적, 법제사적 시각 등 다양하고 심층적인 방면에서 연구했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실무계와 학계의 끊임없는 소통이 좋은 재판, 좋은 판결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실무계와 학계의 공동연구 및 협업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다. 지난해 9월 제7대 헌법재판소장으로 취임해 6기 재판부를 이끌고 있는 유 소장을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재동 헌재 집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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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출신인 유남석(62·사법연수원 13기) 헌법재판소장은 어린시절 자율성을 강조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아버지께서는 5형제 중 장남이었는데, 항상 넓은 포용력과 배려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셨습니다. 당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 없이 자율을 강조하셨죠. 그런 모습이 저의 생활태도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생 때는 그 시절 대부분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교적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걸어다니며 생각을 나누는 경험을 가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에는 독서토론클럽 활동도 열심히 했죠. 대학시절 탐독한 국내 여러 사회소설들을 통해 단일민족으로 남북 분단, 산업화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저와 다른 배경과 처지에서 희생을 겪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마주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살이를 생각해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법대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법학이라는 학문을 접했다. 그리고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법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리 때는 대학 시험을 본 후 법학과, 경영학과 등 구체적인 전공학과가 아니라 사회계열, 인문계열 이런 식으로 계열만 선택했었습니다. 입학 후 1년간 공부한 뒤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죠. 1학년 때는 교양과목을 위주로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법대라는 목표의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로를 정할 때가 되니 법학이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학통론을 수강하며 법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계기가 됐죠. 이후 헌법 기본권 강의를 들으며 막연하게나마 우리나라도 모든 사람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사회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법관재직 중 10년간 대법원·헌법연구관으로 근무

비교법적, 법제사적 시각에서 사건검토 역량 키워

실무계·학계 끊임없는 소통이 ‘좋은 재판’ 만들어

 

유 소장은 법관으로서 새로운 법리를 구성하거나, 어려운 사건에서 적합한 법리를 찾고 적용해 복잡한 사실관계를 풀어 사회적 약자를 권리구제한 사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대전고법에서 근무하던 시절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의 분양전환권을 넓게 인정해 서민의 안정된 주거생활을 보장한 판결(2004나3183)이 생각납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사업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 피고에 대해, 임대차계약상의 매각약정에 기해 무주택 임차인인 원고의 매각 청약에 승낙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했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석명을 통해 당사자의 청구취지 및 주장을 정리하고, 권리구제에 적합한 새로운 이론구성을 위해 민법의 계약 성립 부분을 연구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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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0여년의 법관 재직기간 중 9년 5개월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처음 헌법연구관으로 파견된 것은 1993년입니다. 그 전에 제주지법에서 근무하며 형사사건 위헌제청을 한 경험도 있고 헌법재판에 관심이 많아 지원을 했죠. 당시 헌법재판소 옛 청사가 을지로에 있었는데, 위층 재판관 회의실에서 재판관님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3년 7월 헌법재판소가 일반 법원의 재판 대상이 되지 않는 국가기관의 권력적 사실행위, 재무부장관의 국제그룹 해체를 위한 일련의 공권력행사를 심판대상으로 삼아 위헌으로 결정하는 것을 목도하고 헌법재판이야말로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공권력 남용을 억제해 기본권을 보호하는 원동력임을 실감했습니다. 2008년 헌재 수석부장연구관으로 재임했을 때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공동조사연구팀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 제기돼도 공동연구를 통해 광범위한 조사와 여러 관점의 견해들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는 효율적인 조사연구를 선행하면 이를 토대로 충실한 심리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또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도 근무하며 비교법적, 법제사적 시각에서 사건을 검토하며 시각을 키웠다. "1996년부터 4년 동안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비교법실무연구회 간사로 활동했습니다.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는 중요사건들 가운데 아직 판례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판례 변경 여부가 논의되는 법률문제에 관해 법학교수님들과 비교법적, 법제사적 시각에서 검토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했죠. 연구 및 토론 결과를 사건검토보고서에 반영하는 일에 참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논의한 쟁점 중에는 악의의 무단점유자의 부동산취득시효 문제, 위법하게 수집된 비진술증거의 증거능력 문제 등이 있습니다. 위법 수집 비진술증거의 증거능력 문제는 추후 제가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할 때 판례변경이 이루어졌습니다. 비교법적 시각에서 문제해결의 단서를 찾아보고 학계의 연구 성과를 구체적 사건의 해결과 판례 형성에 활용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실무와 학계의 협동 작업은 판례 형성과 법률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권장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7대 헌재소장으로 지난해 9월 취임한 그는 30년 역사를 가진 헌법재판소의 미래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헌재의 본분은 재판입니다. 재판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을 국민의 삶 속에 정의롭게 구현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사건의 심리와 심판, 조사와 연구, 행정 등 재판소의 모든 업무는 이러한 사명을 위해 설계되고 수행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재판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오랜 시간 답습해온 법리와 업무관행을 재점검 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30년의 기틀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法古創新의 정신으로 기존법리·업무관행 재점검

그동안 성과에 안주 않고 새로운 30년의 기틀 마련

모든 절차에서 중립성·공정성 확보하도록 노력

 

그는 헌법재판의 성공은 결정의 설득력과 국민의 신뢰에 달려있고, 이를 위해선 재판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절차에서 구성원 모두가 외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대립·경쟁하면서 때로는 융화되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헌법 정신과 가치의 관점에서 아우르는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결정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헌법재판에 반영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논증을 바탕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설득해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재판,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의 길잡이 역할도 할 수 있는 재판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의 임기 문제, 재판관 공석 방지 방안 등 재판소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개헌이나 입법을 통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고, 향후 통일에 대비한 통일헌법에 대한 선제적인 연구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유 소장은 국민들이 바라는 헌재의 모습은 '국민주권을 통한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의 평등'을 지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헌재가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온라인을 통해 '헌법을 읽자'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설문조사에 참여한 시민의 68%가 주권재민의 기본정신을 담은 헌법 제1조, 평등권을 담은 제11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담은 제10조를 가장 좋아하는 조문으로 선택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헌재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법 앞의 평등을 지켜달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인터넷과 인공지능(AI)의 발달에 따른 산업과 사회의 변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소득의 양극화 및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와 같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온 헌법 원리와 원칙이 변화하는 사회현실과 시대정신을 충분히 수용해 미래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법조인의 길은 권리 보호와 정의 실현의 긴 여정

변호사·검사·판사, 어느 위치에 있든 늘 기억해야

사법신뢰는 어느 한 영역 아닌 법조인 모두의 과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聽訟之本 在於誠意(청송지본 재어성의)'라는 말을 소개하며 그는 재판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1996월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4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며 중요사건에 대한 법리 연구검토를 한 경험을 갖고 일선 법원에 부장판사로 다시 복귀했을 때에는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담당하더라도 이에 적합한 법리를 찾아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은 일반적인 법리를 많이 알거나 법리조사연구 능력이 뛰어난 것만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법관에게는 법률지식, 법의 역사와 판례에 대한 이해, 공정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 등이 필요한데, 법관으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이는 충분히 체득할 수 있습니다. 법관에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건 당사자나 그가 속한 집단이 처한 처지와 느낌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법관에게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이 없으면 그의 공평성은 우둔해지고 그의 정의는 맹목적이 될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는 후배와 동료 법조인들에게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노력하고, 그 해결책은 본연의 업무인 재판에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의 길은 권리 보호와 정의 실현의 여정입니다. 변호사, 검사, 판사, 연구관 등 어느 위치에 있든 항상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또 사법시스템 내에서 맡고 있는 서로의 역할과 기능을 존중하며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사법정의가 이뤄집니다. 사법신뢰는 법조 어느 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법조인들의 과제입니다. 나아가 재판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본연의 업무인 재판을 때맞추어, 적정하게, 그리고 올곧게 하면서 분쟁을 해결하면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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