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지방검찰청

헌정사상 첫 사법부 수장 소환 조사… 법조계 ‘참담’

양승태 前 대법원장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에 출석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으면서 법원은 물론 법조계 전체가 참담한 분위기에 빠졌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150047.jpg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검찰 출석에 앞서 자신이 대법관과 대법원장으로 12년 동안 근무했던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간단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모든 일이 자신의 부덕함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안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선입견을 갖고 이 사건을 보지 말아달라며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사법부 신뢰가 추락한 데 대한 통한의 감정을 나타내며 대다수의 법관들이 성실하고 공정하게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제 재임기간 중에 일어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 일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고 했다.

 

대법원 앞서 기자회견

"모든 책임 내가 지고가겠다"

 

이어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언제나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주시길 바란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저는 이를 믿는다. 그 분들의 잘못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제가 안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과 판사 동향 사찰 문건 작성 등 사법행정권 남용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만 40여개에 달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당시 임종헌(59·16기·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61·12기)·고영한(63·11기)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이와 관련된 문건을 보고 받거나 직접 지시를 내리는 등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한동훈(45·27기) 3차장검사로부터 조사 방식과 순서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서울중앙지검 15층에 마련된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개입과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혐의에 관해 조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정숙(51·23기) 변호사를 주축으로 방어에 나섰다.

 

"법·양심에 반하는 일 하지 않아"

… 기존입장 재확인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조사를 마주한 법관들은 침통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이라며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판사도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씁쓸할 뿐"이라며 "법원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나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검찰은 조사할 분량이 많아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검토하는 등 가급적 이달 안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7개월 간 이어져 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도 마무리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한 고법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조사를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수사가 막바지로 달려가는 것 같다"며 "수사 과정에서 법관 사회가 많이 갈라져 찢어지기 직전인데 하루빨리 사태가 수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것은 법조계에 대한 신뢰도 추락한다는 말"이라며 "사법부 수장을 지냈던 인사가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법조계로서는 비통하고 참담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실패와 좌절로만 보지 말고 사법부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미영·손현수·박수연 기자  mypark·boysoo·sypark@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