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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대법관 된 노동법 전문 변호사… 노동사건에서 오히려 빛 못봐

企銀 통상임금 상고심사건에
변호사시절 근로자 대리 김선수 대법관 제척

대법원이 심리중인 통상임금 소송 가운데 중소기업은행 사건에 노동법 대가인 김선수(58·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이 배제됐다. 변호사 시절 이 사건 원고인 근로자들을 대리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경우에는 김상환(53·20기) 대법관 역시 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 출신이어서 심리에 참여하지 못한다. 한 사건에서 최대 2명의 대법관이 제척사유에 해당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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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인·전심 재판 관여 법관은 제척 사유" = 민사소송법 제41조는 △법관이 사건 당사자의 대리인이었거나 대리인이 된 때 △법관이 불복사건의 이전 심급의 재판에 관여하였을 때 등을 제척사유로 규정해 해당 사건의 심리에서 배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은 중소기업은행 정규직과 계약직 근로자 1만여명이 "미지급 연장근로수당 등 775억여원을 지급하라"며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2017다236718)이다. 앞서 2017년 5월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였던 서울고법 민사1부는 원고일부승소(사실상 원고패소) 판결했다(2016나2039352).

 

이 사건의 쟁점은 '특정시점에 재직하는 사람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을 임금 지급 자격 요건이 되는 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 보기 어렵고, 특정 시점이 도래하기 전 퇴직하면 임금을 지급받지못해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2012다89399). 이에 따라 항소심인 서울고법 민사1부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사실상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항소심 판결을 선고한 서울고법 민사1부의 재판장이 김상환 대법관이다.

 

몸 담았던 로펌도 ‘노동전문’…

퇴직 3년간 소속로펌 수임사건은 판단못해


중소기업은행 근로자들은 패소 판결에 불복해 2017년 6월 상고했고, 대법원이 현재 이 사건을 심리중이다. 근로자들은 상고하면서 대리인으로 법무법인 시민을 선임했는데, 당시 시민의 대표변호사였던 김선수 대법관도 대리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후 대법관 후보자로 천거됐고, 김 대법관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검증 절차에 동의한 뒤 지난해 6월 14일 대법원에 이 사건에 대한 지정철회서를 제출하고 대리인에서 사임했다. 이후 그는 국회 인준 절차를 거쳐 8월 대법관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김 대법관이 배속된 대법원 민사1부에 배당됐다. 주심은 권순일(60·14기) 대법관이지만, 김 대법관은 이 사건의 원고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상 제척사유에 해당돼 심리에서 배제됐다. 따라서 재판부는 김 대법관을 제외한 권순일, 이기택(60·14기), 박정화(54·20기) 대법관 등 3명이 심리를 해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은 민사소송법 등에 따라 배당 제외사유에 해당하므로 김 대법관은 이 사건 심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11일 새롭게 발표된 대법원 재판부 구성표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김상환 대법관은 대법원 민사2부에 배속됐기 때문에 소부에서든 전원합의체에서든 이 사건 상고심 심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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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랜드 사건 때 대법원장 등 빠진 채 전합 진행 = 과거에도 매우 드물긴 하지만 대법관들이 취임 전 변호사나 검사로 활동하면서 관여해 해당 사건의 상고심 재판에서 제척된 사례가 있다. 

 

2009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 삼성그룹 사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했는데, 당시 이용훈(77·고시 15회) 대법원장과 안대희(64·7기) 대법관 등 2명이 재판에서 배제되고 나머지 대법관 11명만 심리에 참여했다.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1년 7개월 간 에버랜드 측을 직접 변호했고, 안 대법관은 당시 검사로서 수사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과 같이 형사소송법 제17조도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의 대리인, 변호인, 보조인으로 된 때,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행한 때 직무집행에서 제척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은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이 제척된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대법원장이 제척사유에 해당하니 사건을 소부에서 진행하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많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보니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법에 따라 이 대법원장과 안 대법관이 심리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법조계,

동일 사건인 ‘통상임금소송’에 관여 여부 놓고도

찬반 엇갈려

 

◇ '노동법 대가' 운신의 폭 좁아지나… 소속 로펌 3년간 배당 금지 = 한편, 노동법 전문가인 김선수 대법관이 제척사유 규정 등으로 인해 정작 노동 관련 사건 심리에 제대로 관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대법관이 대표변호사로서 몸 담았던 법무법인 시민은 노동전문 로펌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대법원 내규에 따르면 변호사 출신 대법관은 로펌에서 퇴직한 날로부터 3년간 소속됐던 로펌이 수임한 사건은 판단할 수 없다. 현행 대법원 사건의 배당에 관한 내규 제7조 1항 3호는 '변호사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대법관이 재직하였거나 소속한 법무법인 등에서 수임한 사건은 대법관이 법무법인 등에서 퇴직하거나 탈퇴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해당 대법관이 속한 재판부에는 배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대법관이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고 대법관까지 됐지만 정작 노동 관련 사건들을 판단하는 데에는 장애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관은 자타공인 노동법 대가이고 전문가인 만큼 국민이나 노동계, 학계 등에서 합리적인 법리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며 "특히 그는 통상임금 사건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과거 관련 사건 수임 이력 때문에 잡음이 나올까 걱정이고, 그가 속해 있던 법무법인 시민 관련 사건 역시 판단하지 못하게 돼 대법관 6년 중 절반이나 되는 3년간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선수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 통상임금 사건을 대리했기 때문에 동일사건인 통상임금 소송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통상임금 소송은 '고정성', '일률성', '정기성'과 '신의성실의 원칙 인정 여부' 등 쟁점들이 사건마다 다르고, 설령 쟁점이 동일한 사건이라도 변호사 시절 직접 수행하지 않았다면 상고심 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사업장마다 쟁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일도양단으로 통상임금 사건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면 안된다"며 "30여년 경력을 가진 대법관들에 쟁점이 다른데도 사건배당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