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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검사의 형사법 이야기

[미국검사의 형사법 이야기] (2) 검사의 배심원 무효판결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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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심재판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시민이 범죄 여부를 판단하고 유무죄 평결을 내리기 때문에 검사는 사실 여부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하지만 숨겨진 이슈를 식별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면 배심원 무효판결이 될 위험이 있다. 배심원 무효판결은 배심원단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법의 적용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많은 형사사건들이 플리바겐(plea bargain)을 통해서 처리된다.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검사가 형량을 낮추거나 조정하는 협상제도이다. 이 플리바겐 때문에 기소되는 형사사건들 중 5% 미만의 사건들만이 배심재판을 통해 피고인의 유무죄가 결정된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증거에 큰 문제가 없을 때에는 피고인은 배심재판을 고사하는데, 그 이유는 배심재판을 한 후 유죄 평결이 나면 더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피고인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증거에 큰 문제가 없을 때에도 배심재판을 선택할까?

 

배심재판은 12명의 일반시민이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해야 한다. 12명 중 한 명이라도 검사가 설득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다. 피고인은 이 점을 노린다. 한 명이라도 설득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를 무시하고 법의 적용을 거부하게 되면 피고인은 ‘이겼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배심원들이 결정한 유무죄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피고인은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을 받기 위해 또는 12명의 만장일치 유죄평결을 방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건의 숨겨진 이슈들을

식별하고 정면 돌파

 

다음 사건은 사실관계도 명확하고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피고인은 사전형량조정제도 대신에 형량이 더 높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재판을 선택한 사례 중 하나이다.

 

2016년 10월, 어느 일요일 이른 새벽,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405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일이다. 브랜든 라미레즈와 그의 여자친구 소피아 허난데즈는 그 전날부터 밤새 놀고 난 후 소피아가 사는 그녀의 대학 기숙사로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브랜든은 운전석에, 소피아는 조수석에 있었다. 소피아는 새벽까지 마신 술 때문에 취한 상태였다. 그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였다. 브랜든이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 소피아와 말다툼을 하다 소피아가 홧김에 주차 브레이크를 조작하고 핸들을 돌려 차가 옆 차선으로 넘어갔다. 다행히도 일요일 새벽이라 길에는 다른 차가 많이 없어 사고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 위험하게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경사 자발라가 차를 세웠다. 소피아는 취한 상태로 차를 조작했기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음주운전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는 0.08 %이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운전석에 있지 않더라도 차를 조작하고 조종하면 운전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배심원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은

모두 풀어줘야

 

이 사건에서 배심재판 중 피고인의 변호인은 최종변론에서 "검사가 법률적으로 법적 요건을 입증하지 못했고 사실관계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형적인 주장을 했다. 이에 더하여 그 뿐만 아니라 배심원 무효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소위 ‘숨겨진 이슈’들을 주장했다.

 

만약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면 소피아의 유죄 판결은 쉽게 나왔겠지만 배심원단은 다르다. 상식적으로 ‘과연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앞날이 창창한 대학생 피고인을 범죄자로 만들어야 하는 중압감.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 명확한 피해자가 없는 상황. 피고인의 변호인은 배심원의 동정에 호소하면서 이러한 숨겨진 이슈들을 주장하는 것이다. 12명 중 한 명만 증거를 무시하고 법의 적용을 거부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검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심재판 중 검사는 증거를 제출해 피고인의 행위가 형법에서 규정한 범죄에 해당하는 요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배심원에게 입증한다. 이론적으로 검사는 이 법률적인 입증을 하면 그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능한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건의 숨겨진 이슈들을 식별하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배심원 무효판결을 막기 위해 배심원단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모두 풀어주고 법을 따르는 것이 배심원단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진경 검사 (LA 카운티 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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