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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일본주의’ 문제, 일반 형사사건서도 꾸준히 제기

변호사들의 경험·사례

미국변호사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재판에서만 문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변호사들 사이에서 부쩍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변호인들이 검찰이 기소를 하면서 제출한 공소장에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예단을 갖게 할 수 있는 과거 전력이나 평가, 증거서류를 끼워넣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러 형사사건을 담당했던 A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장 부본을 받고 황당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공소사실과 전혀 관계 없는 내용이 기재돼 있어 자신의 의뢰인인 피고인에 대해 판사가 예단을 갖게끔 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B변호사도 "검찰이 전반적으로 공소장에 기초사실을 길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사건의 배경이나 동기와 관련이 없는 별건의 사실이나 공소시효가 다 지나서 아무런 법적 판단을 못받는 부분도 슬쩍 기재해놓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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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변호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한 피고인의 공소장에 관련 범죄사실 외에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의 행실에 대한 추측성 내용을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밖에 법원이 예단을 갖게 할 서류나 기타 물건 등을 첨부·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는 미검증된 증거를 제출해 재판부에 예단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피고인의 행위를 기재하거나 피고인이 부인하는 증거서류를 인용해 공소장을 작성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된 기소는 위법한 기소로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된다.

 

형사소송규칙 제118조 2항은 공소장에는 △공소제기전에 변호인이 선임되거나 보조인의 신고가 있는 경우 그 변호인선임서 또는 보조인신고서 △공소제기전에 특별대리인의 선임이 있는 경우 그 특별대리인 선임결정등본 △공소제기당시 피고인이 구속되어 있거나, 체포 또는 구속된 후 석방된 경우 체포영장, 긴급체포서, 구속영장 기타 구속에 관한 서류 외에는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에 대한 예단 갖게 하는

과거의 전력·행실 등


최근 주요 사건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가 문제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 부장판사)는 다스 횡령 및 삼성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원 등을 선고하면서,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청와대 생산 문건을 빼돌린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공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문제가 된 대통령 기록물은 공소사실과 무관한데다, 별지로 이미 특정돼 기재할 필요가 없음에도 공소사실 기재 중 기록물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반 정도에 이르고 있다"며 "증거능력이 다퉈질 수 있는 증거의 내용이 그대로 인용돼 증거를 첨부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고 그 내용도 법원이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법부 관련 내용부터 나열돼 법관에게 여죄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재가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는 이 부분이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파기, 유출, 은닉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기재라고 주장하지만, 그 분량이나 내용, 형식에 비춰볼 때 허용되는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공소사실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 등

기재 자주 발견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하다보면 공소장에 공소사실 외적인 부분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범죄사실은 인정하지만 공소장 내 기초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이 부분만을 다퉈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가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재판에 공정을 기할 수 없는 공소장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정철(42·35기)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공소장이 2페이지 이상 되는데 범죄사실은 4줄인 경우도 있다"며 "대법원 판례는 공소기각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대개 재판부가 관련 부분 삭제를 지시하는 것 뿐이고, 설사 이렇게 삭제가 된다고 해도 이미 판사가 예단을 가질 내용을 모두 봤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범죄사실 외 사실관계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내용도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때도 문제가 됐지만 임 전 차장 사건을 계기로 공소장 일본주의와 관련된 부적절한 관행이나 문제점 등도 개선해야 한다"며 "검찰과 임 전 차장, 어느 쪽 의견이 맞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관련 형사사법제도에 문제는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 같은 문제는 증거능력을 판단하는 역할과 사건을 심리하는 역할을 하나의 법관(재판부)이 한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일 수 있다"며 "연차가 높은 단독판사를 '예심판사'로 둬 이들이 공판준비기일에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해,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만 현출돼 법관(재판부)이 이를 판단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예단을 갖게 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만약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이유로) 재판부가 공소기각을 한 뒤 검찰이 예단을 갖게 할 내용을 삭제하고 다시 공소제기를 한다면 그 때는 똑같은 재판부로 다시 배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소기각 원칙이지만 재판부는

'부분 삭제' 지시 뿐


하지만 검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공소장 일본주의 문제는 얼마나 까다롭게 공소장을 보느냐의 문제인데 이마저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라며 "폭행 사건에서 이 피고인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성장배경 같은 것을 공소장에 적기도 하는데 이것도 엄격히 판단했을 때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지만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심리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됐다고 해서 공소기각되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그것은 일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예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사건에서 공소장에 범죄사실과 관계없는 범죄 배경 등을 길게 쓴 적도 있긴 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 검사장은 "아무래도 배경 설명 없이는 공소사실 입증이 어렵기도 하고 재판부도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런 내용이 추가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공소장 일본주의의 한계를 일의적으로 정하는 데에는 이견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공판 스타일이 다르고 재판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대법원에서도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판례가 없었는데, 과도하다면 통제가 필요하겠지만 아직까지 외부에서나 검찰 내부에서 이 같은 문제와 관련해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던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 "배경 설명 없이

공소사실 입증 어려워" 주장도

 

노명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장일본주의는 판사에게 예단을 갖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형사소송규칙에 규정된 것인데, 법률 전문가인 판사에게 전과 기록, 자세한 범행 동기 등을 공소장에 적시해 제시한다고 해서 예단이 생긴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판사가 일반인이 아니라 법률 전문가인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가인 판사가 전과 기록이나 범행 동기를 자세히 듣는다고 해서 예단을 갖는다면 그건 전문가로 볼 수 없는 것일 수 있다"며 "공소장일본주의를 지나치게 위배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심 재판이라면 문제가 될 소지는 있다"며 "잔혹한 살인사건을 배심 재판으로 진행하는 경우 현장사진을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례가 미국에는 더러 있지만 이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 예단을 가질까봐 그런 것이고, 전문가인 판사가 재판을 하는 경우라면 크게 문제삼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수연·이정현 기자 sypark·jhlee@

종합법무관리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