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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법원·검찰 ‘영장 전쟁’

"지나친 영장청구… 발부요건 충족 여부 기준으로 판단
통계적 측면서 접근 정치적 이용·여론전 바람직 않아"

법원이 8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주거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재차 기각하면서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자료제출에 협조하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재판)의 독립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우려가 있다', '주거·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는 등의 이례적인 이유를 들며 전·현직 고위 법관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검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원이 영장 청구를 기각할 때마다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를 실시간으로 언론에 알리며 법원의 기각 결정이 부당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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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에는 갈등이 절정에 달했다. 대법원 내부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했다가 파기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유해용(52·19기)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면서다. 법원은 작심한 듯 3600여자에 이르는 기각사유를 밝혔다. 유 변호사가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마치 본안 재판을 한 듯 "범죄가 성립되지 않느다"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검찰은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라며 강력 반발했다. 현 상황을 두고 '영장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영장 기각률 90%대 육박…

제식구 감싸기" 강력 비판

 

◇ 반복되는 영장 갈등 = 법원과 검찰이 영장 문제로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인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론스타 사건' 수사 때다. 당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던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체포·구속영장은 12차례나 기각됐다. 외환은행 주가 조작 혐의로 체포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경우 4차례나 잇따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당시 검찰 간부는 "남의 장사에 거의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을 써가며 강력 비판했다. 유 대표 측과 관련된 고위 판사가 영향력을 발휘한 '전관예우'가 의심된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법원도 가만있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을 향해 "상법 공부를 좀 더 하셔야겠다"고 일침을 놨다. 당시 잇따른 영장 기각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영장전담판사, 대검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 등이 만났으나 '4인 비밀 회동' 논란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논란을 낳기도 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팀에는 윤석열(58·23기) 서울중앙지검장과 이번 수사의 팀장을 맡고 있는 한동훈(45·27기) 중앙지검 3차장 등 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 관계자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었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 핵심 관계자에 대한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이 기각되면서 갈등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치권은 검찰이 현재까지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가운데 발부된 것은 10%에 불과해 영장 기각률이 90%대에 육박한다며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법원이 법원행정처 관련 부서와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영장은 대부분 기각하면서도 외교부나 헌법재판소 등 다른 기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데에는 법원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명선(59·18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유난히 이 사건 만큼은 기각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압수수색은 초동수사단계에서 필요한 증거수집의 일환으로 하는 것이기에 수사에 대한 견제로서 작용해서는 안 되는데 특정사건에 대해 유난히 기각률이 높다는 것은 초동수사의 취지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다른 사건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기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압수수색 영장 단계에서는 범죄의 증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혐의가 있다는 점을 소명하는 것이면 족한데도 법원이 무리한 이유를 들어 기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6년 '론스타 사건' 수사팀

상당수 포진… 갈등 재연


◇ "기각률 단순 비교는 금물" 지적도 = 하지만 기각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기각률이나 발부율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영장전담판사들이 영장발부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청구사유가 부적절해 기각된 것을 무조건 통계적 측면에서만 접근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여론전을 펼치는데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도 "이번과 같은 초유의 사건을 통상적인 마약, 절도 등과 관련된 영장발부와 단순비교해 많다거나 적다를 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다만 겉보기에 공정해보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같이 근무한 연이 있던 등 인적 관계가 있었다면 스스로 판단을 자제하고 공정해보일 수 있는 분이 대신했다면 같은 결론이 났더라도 더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과 자체만으로 의심을 받는 상황이 돼 아쉽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영장전담판사가 논리적인 확신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지 법원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기각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자신의 이름과 직의 명예를 걸고 하는 것인데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발부하고 기각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장전담판사 출신인 다른 변호사도 "그동안 법원이 다른 사건에 있어 영장을 엄격한 잣대에서 발부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이러한 지적에 놓인 것일 수 있다"면서 "다만 검찰이 지나치게 영장을 청구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과연 광범위한 압수수색으로 법원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증거를 찾기 위한 압수수색이 아니라 혐의를 찾기 위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인신구속에 비해 압수수색은 기본권 침해가 덜한 것이므로 구속영장 등에 비해서는 쉽게 발부가 되어야 하는데 기존에는 그게 너무 쉬웠다"며 "(압수수색영장은) 과거에 거의 발부가 됐는데 그게 잘못된 것이어서 그런 기존의 관례와 현재를 비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영장 기각률은 다소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례적 사유로 기각"

"기각률 단순비교 무리" 반응도


◇ 법조계, 우려 커져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가속화하면서 영장 관련 업무 폭주와 영장전담 판사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자 서울중앙지법(원장 민중기)은 3명이던 영장전담 판사 수를 최근 5명까지 늘리며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법조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가뜩이나 추락하고 있는 사법부 신뢰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양측이 모두 냉정을 되찾고 법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업무를 수행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제에 이런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행 영장 시스템과 관련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변호사는 "본안재판도 마찬가지지만 영장재판에서도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면 안 된다"며 "자칫 이 같은 논쟁 등으로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는 상황이 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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