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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梁 전 대법원장 등 ‘PC 하드’ 조사… 증거능력 논란 일 듯

당사자 동의·입회 없이 진행… 적법절차 위반 소지
해당 PC 하드, '공용물' 해당 여부 싸고 견해도 달라
당사자 조사 동의, 검찰 제출 동의인지도 따져봐야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에 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들어와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 등이 사용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등을 조사하고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재판거래 의혹' 등 양승태 코트(court)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수사 협조를 위한 것이라지만, 해당 PC를 사용했던 당사자들의 동의나 입회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증거법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선 법관들은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침통해했다.

 

◇'공용물'의 범위부터 논란=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13층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입회 하에 수사에 필요한 법원행정처 PC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벌였다. 법원행정처는 수사 필요성과 관련 없는 파일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드디스크 내 파일을 일일이 선별해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가 검찰이 요구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PC(하드디스크) 등을 이처럼 임의제출 형태로 조사에 협조하기로 한 것은 이들 PC를 '공용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법원행정처가 검찰의 요구에 응하면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PC 자체가 공용물이라고 하더라도 PC 내에 저장된 문서나 정보 등이 모두 공용물에 해당하는 것인지,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이들 PC에 대한 관리자라는 이유로 이를 검찰 수사 협조를 위해 임의제출 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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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공무원의 PC는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전체가 공용물"이라며 "공적인 업무수행에 사용되는 것이므로, 임의제출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PC 내용물 중 상급자에게 보고되거나 결재된 문서는 공문서가 맞지만, 그밖에 개인적으로 작성한 문서까지 공용물로 볼 수는 없다"면서 "디지털 포렌식이나 이미징 절차에서 기술적·물리적으로 공문서만 정확히 발췌해 제출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관리자라는 이유로 임의제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참여권 보장' 문제도= 문제는 또 있다. 참여권 보장 문제다. 대법원은 2015년 전원합의체 결정(2011모1839)을 통해 디지털 전자정보의 압수수색 방법과 합법성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피압수자나 그 변호인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적인 복제 등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등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번 디지털 포렌식은 영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원 측의 협조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압수수색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적법절차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임의자료 제출 형태라고는 하지만 PC에 담긴 내용이 수사와 형사처벌이라는 기본권 제한 조치의 대상이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압수수색과 다름이 없다"며 "해당 PC를 사용한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의 입회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하드디스크 이미징이나 자료 추출 등은 증거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른 변호사는 "검찰에 대해 을의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기업이나 국세청 등 다른 기관들도 소속 임직원 비위 등과 관련한 자료 제출 요구를 받으면 문제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영장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번 일도 적법절차나 증거법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대로 압수수색 영장에 따라 처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디지털 포렌식은 적시된 피의사실과 관련이 있는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만 허용되는 영장 집행과 달리 영장으로도 확보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라며 "이처럼 무차별적이고 포괄적인 조사가 임의제출 내지 법원의 협조라는 명분 하에 진행된다는 것은 의혹 대상자 등의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고 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 입회 하에 하드디스크 자료 제출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해당 PC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입회 의사 등을 물어봤어야 한다"면서 "그런 절차 없이 바로 진행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디지털 포렌식에서 당사자가 입회하는 것은 디지털 증거의 조작을 막고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해당 PC의 관리자인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입회했다면 이 같은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욱이 현재 진행된 검찰의 수사는 법원의 협조를 받은 임의수사이고, 피의자가 특정돼 있지도 않기 때문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부를 수도 없는 일"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도 "기업에서도 근로자가 퇴사할 때 컴퓨터 등 업무상 사용한 물품을 반납한다"며 "이렇게 반납된 컴퓨터 등은 당연히 기업에 귀속되는 것처럼 공무로 사용한 물품에 대해서도 법원행정처가 관리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임의제출 형식으로 조사에 협조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법원 자체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사용한 PC에 대한 조사에 동의했다고 해도 이것이 법원행정처가 PC를 검찰에 제출한 것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증거법적 문제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임 전 차장 등 PC 사용자들로부터 해당 PC 조사에 대한 동의를 받긴 했지만 그 동의가 수사기관 제출에까지 동의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법원 자체 조사과정에서도 PC 사용자 동의 없이 강제로 PC를 열 경우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동의를 받았을텐데 그렇다면 검찰 제출 여부에 대해서도 이번에 다시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사법부 내부 조사단계에서의 동의와 검찰 수사에 대한 동의는 완전히 다르다"며 "만약 기소돼 재판이 진행될 경우 이 부분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파급효' 우려 목소리도= 이번 조사 협조가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이 상태로 가면 공공기관 등의 직원 비리는 압수수색 영장 필요 없이 그냥 기관장 허락만 있으면 임의로 제출받아 수사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며 "기관장 등 관리자가 교체되거나 정권이 바뀐 경우 이 같은 폐단은 극심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이 오랜시간에 걸쳐 엄격한 영장 발부 기준을 수립하고 압수수색 영장 집행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행위 등에 대해 제동을 걸어왔는데 이런 백도어 수사가 가능하게 된다면 이런 노력들이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면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등 형사소송법의 핵심 이념들이 형해화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법원행정처 PC 조사는 공용물 여부와 범위, 수사과정의 적법절차, 증거능력 인정 여부 등 모든 부분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만약 관련자들이 기소된다면 재판과정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논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변호사협회장 사찰 의혹 등 사법부 신뢰를 훼손하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에까지 수사팀이 들어와 조사를 벌인 현 상황이 암담할 뿐"이라며 "언제나 사법부가 모든 의혹을 떨치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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