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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건 이판결

[이사건 이판결] 보험가입 '고지의무 vs 설명의무'

"보험사 '설명의무' 위반 책임 더 커" 항소심 첫 판결
서울고법 "오토바이 사고 보험금 5억여원 지급하라"

보험사의 설명의무와 소비자의 고지의무가 충돌했을 때 보험사의 설명의무 책임을 더 무겁게 판단한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소비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더라도 보험사가 상품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28부(재판장 이강원 부장판사)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A씨의 아버지 B씨가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소송(2017나2035357)에서 최근 1심과 같이 "보험금 5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B씨는 2015년 아들 A씨를 피보험자로 메리츠화재가 판매하는 질병보험 등 2개 상품에 가입했다. 이들 보험상품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오토바이를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특별약관을 부가하고 보험인수가 이뤄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A씨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치킨 배달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B씨는 오토바이 상해 부보장 특별약관을 체크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6년 3월 A씨가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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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B씨는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메리츠화재는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한 B씨는 소송을 냈다.


계약자, 고지의무 존재 당연히 알고 있다고 못 봐

가입 여부 결정 시 보험사가 충부히 설명해줘야

 

재판부는 "고지의무의 존재와 그 효과에 관해 상법이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이 고지의무 대상이 되는지는 각 보험계약의 내용과 관계에서 개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사인 메리츠화재는 (피보험자의) 주기적인 오토바이 운전 사실은 보험계약 인수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으로 보험사에 고지돼야 하고 이를 고지하지 않을 경우 보험계약이 해지돼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과 (이를 고지하지 않은 채) 보험계약을 체결하더라도 A씨가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점 등을 상세히 설명해 보험계약자인 B씨가 이를 충분히 납득·이해하고 보험계약에 가입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지의무 위반이 있었더라도 당시 보험설계사가 A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오토바이 운전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 명시·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상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며 "보험계약에 따른 사망보험금 5억5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보험 가입 시 소비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기존 보험업계의 관행에 제동을 걸어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판결로 평가 받는다.

 

현행 실무상 보험사는 보험계약 체결 시 자체적으로 만든 문진표로 소비자에게 과거 진료 및 투약사실이나 건강상태, 가족병력 등을 묻고, 소비자는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고지의무'가 이행되고 있다. 즉 소비자의 '자발적 고지의무'에 근거해 보험계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보험사에 중요사항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전에 예측해 고지해야 할 의무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 전력 등이 있을 때 보험사는 이번 사건처럼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때문에 관련 분쟁도 급증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고지의무 위반과 관련해 소비자와 보험사간 갈등이 생겨 제기되는 민원이 2015년 1262건, 2016년 1424건에 달하는 실정이다. 

 

상법 제651조는 '보험계약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내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자가 계약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655조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라도 보험자가 제651조 등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였을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지급한 보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해 보험사에 폭넓은 면책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보험사의 설명의무와 보험계약자·피보험자의 고지의무가 정면 충돌한 사례다.

 

B씨는 재판과정에서 "오토바이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고, 당시 보험설계사도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관련 약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메리츠화재는 "보험자에게 고지의무 대상이나 위반 효과에 관해 설명할 의무가 없다"며 "보험설계사가 피보험자의 오토바이 운전 사실을 알고도 관련 약관을 설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상품이 날로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문가인 소비자에게만 과중한 고지의무를 전가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보험계약에서 비전문가인 소비자보다 전문가인 보험사의 설명의무를 더 무겁게 본 판결"이라며 "보험사는 통상 일반인들이 보험계약의 내용 및 효력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하며, 이에 따라 설명할 사항의 내용과 법률적 효과를 소비자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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