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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행정심판 제도의 의의와 도전

미국변호사

[ 2018.05.15. ]


사회 구성원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실정법에 의해 제도화 되어 있는 분쟁해결 수단 중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법원의 재판일 것이다. 재판은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상호 대등한 지위를 전제로 국민과 국민이 사익 내지 재산적 권리의무를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고가 되어 결코 대등하지 않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여 소를 제기하고1), 중립적 입장인 판사가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를 판정하는 행정소송이 있다.


[각주 1] 국가가 사경제주체로서가 아니라 우월적 지위에서 행한 처분에 대하여


그런데 국민과 국가기관 간 다툼이 있는 사건의 압도적인 다수가 법원의 재판이 아닌 '행정심판'의 단계에서 심리되고 종결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2). 사실 '행정심판'이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한 편이다. 행정심판은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 또는 부작위에 대한 불복에 대하여 행정기관이 심판하는 행정심판법상의 행정쟁송절차를 말한다.


[각주 2] 2017년 기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접수된 사건만 27,918건에 이르고(시·도 행정심판, 교육청 행정심판, 특별 행정심판 제외) 이중 15.8%가 인용되었다. 한편, 2016년 법원에 접수된 행정소송 사건은 위와 같이 분리된 행정심판 관할 사건을 모두 합하여도 총 19,541건에 불과하다[사법연감(2017) 참조].


甲이라는 사람이 서대문구에 위치한 자신의 토지에 단독주택을 짓기 위해 서대문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불허가처분을 받았다. 이 경우 甲은 서대문구청장을 피고로 건축 불허가처분이 위법·부당하다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서울특별시 행정심판위원회에 구청장을 상대로 불허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행정심판위원회의 조사 및 심리 끝에 甲이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청구를 받아들이는 '인용' 재결을 받으면 불허가처분은 즉시 취소된다. 해당 구청장은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에 기속(羈束)되므로 종전에 한 불허가처분의 위법·부당한 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처분을 다시 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甲은 인지대나 송달료 등 아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원의 심리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자신의 청구에 대한 결론을 받아 볼 수 있게 된다. 만일 서대문구청장이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내용에 따른 처분을 하지 않을 경우, 甲으로서는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위원회 명의로 건축허가 처분을 직접 해줄 것을 구할 수도 있고(직접처분), 서대문구청장이 건축허가 처분을 내릴 때까지 매일 일정액의 이행강제금을 구할 수도 있다(간접강제).


서대문구청장의 입장에서 행정심판위원회의 인용 재결에 불복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하다(국가기관 입장에서는 단심제). 반면 국민인 甲은 행정심판 청구가 '기각'되어 자신의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에는 다시 행정법원에 건축 불허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사건 해결의 절차만 보더라도 행정심판은 국민의 편에 다소 치우친다고 할 정도로 유리하게 설계된 것이 사실이다.


위 사례에서 甲은 건축 불허가처분을 취소해 줄 것을 구하는 취소심판 대신에 막바로 구청장에게 건축허가를 해 줄 것을 청구하는 의무이행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다. 행정소송에서는 의무이행소송이 오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데, 행정심판에서는 행정청의 어떠한 처분을 하여야 함에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부작위'나 신청에 대하여 한 '거부처분'에 대하여 의무이행심판을 제기할 수 있어 보다 직접적으로 권익구제를 꾀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재결(법원의 판결에 해당)로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지만, 행정소송과는 달리 양쪽의 입장을 조화롭게 반영하여 조정으로 사건을 종결 지을 수도 있다.


한편, 행정심판위원회는 행정심판이 청구되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적용되는 법리 등을 검토한 후 위원회를 개최하여 재결을 하게 되는데, 그 심리·재결에 있어 법원의 판결과 대비되는 중요한 특징은 처분이 위법한지 뿐 아니라 부당한지도 살펴본다는 점이다. 행정청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때 우리는 국가가 한 구체적 행정작용이 위법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지만 부당하니 취소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에서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익실현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 경우를 부당하다고 본다. 판례에서는 '합목적성을 결하는 경우'로 표시하고 있다(대법원 2007. 3. 22. 선고 2005추62 전원합의체 판결). 행정부 내부의 준사법절차인 행정심판에서는 3권 분립의 원리가 엄격히 적용되는 법원과 달리 행정청의 처분의 합목적성까지 심사할 수 있는 것이다.


행정심판제도는 헌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8차 개정(1980. 10. 27. 공포·시행) 시 제107조 제3항을 신설하여 "재판의 전심절차로서 행정심판을 할 수 있다. 행정심판의 절차는 법률로 정하되, 사법절차가 준용되어야 한다."고 하여 준사법절차로서의 행정심판을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행정불복제도에 대한 일반법으로서 1951. 9. 3. 제정되었지만 국민의 권리구제에 미비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비판을 받던 소원법이 폐지되고 1985. 10. 1. 행정심판법이 제정되었다.


행정심판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는 현재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외에 각 시·도 행정심판위원회, 각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 등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각부 장관 등 국가행정기관의 장 및 그 소속 행정청, 광역자치단체장 등의 처분에 관하여 행정심판을 담당하고 있고, 광역자치단체에 설치된 각각의 시·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시·도 소속의 행정청, 관할 구역 내 시·군 자치구의 장 등 처분에 관하여 행정심판을 수행한다. 그리고 조세나 특허, 공무원인사 등 한정된 행정 영역을 전담하는 특별행정심판위원회로서 조세심판원, 특허심판원, 소청심사위원회 등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행정심판제도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국민 대 국가기관 간 분쟁의 압도적인 수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사익을 두고 첨예하게 다투는, 대등한 지위와 역량을 전제로 하여 개인과 개인의 다툼을 해결하는 데에 적합한 법원의 재판이, 미약한 한 국민이 거대한 절벽과도 같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잘못된 국가기관의 처분을 바로 잡아줄 것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분쟁해결수단인 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국가기관의 잘못되거나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분쟁에 있어서는 주된 해결수단이 법원의 재판이 아닌 행정심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다수의 국민이 국가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는 선택지로 행정심판을 선택하고 있으므로 보다 우수한 제도의 면모를 갖추도록 국가 조직설계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날이 갈수록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 행정심판으로 청구되고 있다. 2017년 양양군수가 설악산 케이블카의 설치를 위한 과정에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 거부처분을 다투면서 행정심판을 제기하여 이를 인용한 사건이나, 올해 들어 삼성디스플레이(주)가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에 대한 집행정지를 행정심판으로 신청하여 이를 인용한 사건 등이 그 사례다. 인용 재결에 관한 한 행정청의 불복이 허용되지 않고 사실상 단심으로 운용되는 행정심판 재결의 특성까지 고려할 때, 무엇보다 심판기관인 행정심판위원회가 어떠한 외부의 간섭이나 영향력에 굴하지 않는 공정하고 독립된 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재결에 대한 신뢰와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행정에 대한 국민의 욕구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대한 보호할 의무가 있고, 잘못된 행정이 이루어졌을 경우 묵인이나 은폐 없이 가능한 신속히 시정하여야 함은 막연한 국가의 책무가 아니라 국민의 헌법상 권리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행정심판은 적어도 국민이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을 대하여 다투는 사건의 경우에는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분쟁해결수단으로 기능하여야 한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의 국민도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접근하고, 신속하게 결과를 받을 수 있으며, 행정청 스스로도 법원의 재판 전에 행정부 내의 심판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행정의 위법 여부와 부당성에 관한 자기반성과 시정의 기회를 가지는 것은 시대의 요청이라고 할 것이다. 최근의 헌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행정심판의 기능과 역할이 헌법상에 명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출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상민 변호사 (smlee@yul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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