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대검찰청

(단독) '직권남용', 적폐청산 단골메뉴… 업무수행에 '위축감'

고소·고발된 공무원 급증… 원인과 대책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규정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보호법익으로 하지만 공무원의 특성상 정당한 재량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적용요건이 엄격해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잠든 범죄'였다. 그러나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관련 적폐사건 수사 등에서 단골메뉴로 적용되면서 관련 사건이 폭증 추세마저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의 비위는 엄단해야 하지만, 남용될 경우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물론 창의적인 행정업무의 고사까지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142772.jpg

◇"실제 적용 까다롭지만…"= 직권남용 고소·고발 건수가 폭증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죄는 적용요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형법 제123조는 직권남용죄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위의 주체가 공무원에 한정되는 신분범인데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란 직권남용죄의 성질상 일정한 행위를 명하고 필요하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직무를 행하는 공무원에 국한된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공무원이 남용한 직권은 그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 피해자가 의무 없는 일을 현실적으로 행하거나 권리행사가 현실적으로 방해됐을 때 기수(旣遂)가 되므로,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가 있었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권리행사의 방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직권남용죄의 기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2003도4599 등)이다.

 

특히 직권남용죄에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란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 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2010도13766)도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은 2008년 11명, 2009년 3명, 2010년 14명 등에 불과했다. 그러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24명으로 크게 증가한데 이어 지난해에도 29명에 달했다. 전체 고소·고발 건수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직권남용 혐의로 법정에 서는 공무원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는 셈이다.

적용범위 사실상 무한정 넓어

자의적 해석·적용 여지 많아

 

◇"창의행정 위축, 복지부동 불러올 수도"= 공무원의 직권남용 행위는 마땅히 엄단해야 할 일이지만, 관련 고소·고발이 남발되면 공무원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업무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복지부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기소돼 법정에 서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것과 별개로 관련 사건으로 고소·고발돼 수사기관에 입건되는 것만으로도 해당 공무원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처의 한 공무원은 "잘못한 일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예전에는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저 시기에 내가 저자리에 있었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다"며 "요즘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업무수행에 위축감이 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여론에 편승해 직권남용죄를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특히 과거에 있었던 정책적인 판단 부분에까지 현재 발생한 결과 등을 잣대로 직권남용 혐의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적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공무원법상 명령복종 의무에 따라 공무원은 상급자의 지시가 명백하게 범죄가 되는 경우가 아닌 한,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를 이유로 지시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시관계의 법리이기 때문에 하급자의 면책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최근 많은 사례에서 지시에 따른 아랫사람까지 모두 입건되는 일이 잦은데 이는 직권남용죄의 지나친 외연 확장 내지 과잉으로, 최종 기소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적정하게 걸러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직권남용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관련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지난 2월 1심에서 문체부 공무원 좌천성 인사조치 요구와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이 서지현(45·사법연수원 33기) 검사에 대한 인사불이익 조치와 관련해 청구한 안태근(52·20기)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구속영장도 지난달 기각됐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안 전 국장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에서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다"고 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예전 IMF 때 외환위기 실상을 대통령에게 축소 보고했다는 등의 이유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하는 등 대법원은 직권남용죄를 비교적 엄격하게 해석·적용하는 기조를 보여왔다"며 "수사기관이 국민적 비난 등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등의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 정치적 이용 우려 속

"엄격한 법리 검토해야" 지적

 

◇'정치적 이용' 우려… "엄격한 법리검토 선행돼야"= 직권남용죄의 확대 적용은 '공무원 길들이기' 등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성(77·사시8회) 전 헌법재판관은 2006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직권남용죄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낸 헌법소원(2004헌바46)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법정의견에 반대의견을 내면서 "공무원의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어 직권남용의 적용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넓어진다"며 "이런 모호성과 광범성은 수사기관이 어떤 행위가 이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를 일관성있게 판단하기 어렵게 해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결과로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데 이용될 위험성도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해 위헌"이라고 했다.

 

정승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에게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 권한 범위 밖의 일을 한 경우 직권을 '남용'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라며 "이 같은 인상만으로 고소나 고발이 이뤄질 경우 공무원들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운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우선 수사기관에서 공소를 제기할 때 직권남용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고 엄격한 법리 검토를 통해 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기본적으로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며 "이 같은 헌법정신을 반영하는 법률해석이 아니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직권남용죄를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결국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법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톡
  • 카카오톡
  •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