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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날 특집

[법의날 특집] 역대 사법연수원 자치회장은

19기부터 활동, 마지막 49기까지 어떤 역할 했나

1971년 개원한 사법연수원이 지난달 2일 마지막 연수생 입소식을 가졌다. 사법연수원은 지난 48년간 법조인 교육·양성의 요람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법조인들의 단합과 끈끈한 연대의식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특히 든든한 동기애는 법조인으로서의 삶에 큰 용기와 자양분이 됐다. 그런 '정(情)'을 나눌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치회장들이다. 주로 동기 연수생 가운데 최고령자가 맡았는데, 동기들과 교수들의 가교역할은 물론 맏형, 맏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동기생들의 리더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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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자치회는 19기부터 본격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자치회장은 사법연수원 19기부터 49기까지 총 31명으로, 통상 연수원생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맡았다. 최고령자가 사양하면 차순위 고령자가 회장을 맡고, 부회장은 회장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최고령 57세, 평균나이 45.2세…

여성회장은 모두 3명

 

실제로 19~49기 자치회장 31명은 연수원 입소 당시 평균 연령이 45.2세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2012년 입소한 오세범(63·사법연수원 43기)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로, 입소 당시 57세였다. 최연소 자치회장은 김창종(65·21기) 변호사로 당시 37세였다. 자치회장 가운데 여성은 모두 3명으로 34기인 박춘희(64) 서울 송파구청장, 37기인 김다숙(58) 변호사, 40기인 이경숙(58) 해밀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동기들 중 가장 형님이 자치회장을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동기들을 통솔하면서도 교수님들께 연수생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했던 결정"이라며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회장을 맡았다기보다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무게감이 있는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치회장은 기수를 대표하며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 연수원 교수들에게 동기들의 고민거리를 전달하거나 동기간 오해가 있을 때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교수들 역시 전달사항이 있으면 자치회장을 통해 공지했다. 

 

동기들 간 갈등의 중재자…

교수와 연수생의 가교역할


다만 연수원생 1000명 시대를 맞았던 34기를 기점으로 자치회장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됐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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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장판사는 "(자치회장은) 동기들한테 술도 많이 사주고 동기간 갈등이 벌어졌을 때 중재자 역할도 하면서 맏형 역할을 했다"며 "교수님들과 연배가 엇비슷하다보니 동기들이 말하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형(자치회장)한테 얘기하고, 형은 연수원에 그 고민을 전달해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다른 판사는 "과거 연수원생이 300~500명이던 시절에는 자치회장과 자주 모임을 갖곤 했다는데 34기 이후에는 연수원생들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자치회장과 밥 한번 먹지 못하고 수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사람이 많아져 끈끈함은 조금 덜 했지만 1000명 시절에도 여전히 자치회장은 리더로서 궂은 일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자치회장들은 대부분 나이 때문에 수료 직후 판·검사 등 공직에 진출하기 보다 변호사로 개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 법조인대관을 통해 조사한 결과 31명의 자치회장은 모두 수료 후 변호사로 개업했다. 당시 공직진출에 공식적인 연령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수와 나이 등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공직문화가 이들에겐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부장판사는 "자치회장들은 수료 당시 나이가 부장판사나 법원장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직에 진출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나이와 기수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했는데 적게는 10살, 많게는 20살까지 차이나는 동기들과 평판사, 평검사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벌써 20여년전 일이긴 하지만 연수원에서 얻은 추억들이 아련하다"며 "자치회가 준비한 체육대회에 우승하려고 조원들끼리 연습하고 응원 동작을 맞추며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큰 형님, 큰 언니 역할을 했던 자치회장들의 헌신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손현수·이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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