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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 ‘초법적 처형’… ICC 탈퇴하면 단죄 피할까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마약사범 수천명을 재판도 없이 죽이는 이른바 '초법적 처형'을 해 자국 변호사에 의해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고발당한 두테르테(64) 필리핀 대통령이 최근 국제형사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ICC 탈퇴를 선언하고 "ICC가 더이상 필리핀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국제사회에서 "ICC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세계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4월 후데 사비오 필리핀 변호사는 두테르테 대통령과 비탈리아노 아기레 법무부 장관, 로널드 델라로사 경찰청장 등 마약과의 전쟁 작업에 관련이 있는 필리핀 고위 공직자 11명을 ICC에 고발했다. 두테르테가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장 재직 때부터 암살단을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마약 용의자 유혈 소탕으로 4000여명을 초법적으로 처형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ICC는 지난 2월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에 대한 예비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필리핀은 지난달 17일 정부 명의의 서한을 통해 "ICC 탈퇴 결정은 인권을 정치 이슈화하거나 무기화하는 자들에 맞서기 위한 원칙에 따른 저항"이라며 "우리는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해 국제연합 외교회의가 1998년 로마에서 채택한 규정)이 없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잔혹 범죄에 맞서는 책무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자신들의 ICC 탈퇴 선언에 따라 ICC가 더이상 마약 용의자 사살에 대해 조사하고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 규정에 따르면 탈퇴의 효력은 1년 뒤에 발생한다.

 

ICC는 로마 규정 발효에 따라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한 국제형사법적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2003년 출범한 인류 최초의 상설 국제재판소다. 로마 규정 제127조는 '당사국은 국제연합(UN) 사무총장에 대한 서면통보에 의하여 이 규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 탈퇴는 통보서에 보다 늦은 날짜가 명시되지 않는 한, 통보서 접수일로부터 1년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 국가는 탈퇴를 이유로 이미 발생한 모든 재정적 의무를 포함하여 그 국가가 이 규정의 당사자이었던 동안 이 규정에 따라 발생한 의무로부터 면제되지 아니한다. 국가의 탈퇴는 탈퇴국이 협력할 의무가 있었던 탈퇴 발효일 전에 개시된 범죄수사 및 절차와 관련된 재판소와의 여하한 협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며, 또한 탈퇴 발효일 전에 재판소가 이미 심의중에 있던 사안의 계속적인 심의를 어떠한 방식으로도 저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파르한 하크 UN 부대변인은 "ICC에 관한 로마 규정에 따라 ICC 탈퇴는 탈퇴 의사를 밝힌 후 1년 뒤 효력이 발생한다"며 내년 3월 17일을 필리핀의 ICC 공식 탈퇴일로 못 박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테르테에 대한 재판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하면서, ICC가 무력화될 수도 있는 만큼 ICC가 이번 사태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뜻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정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로마 규정에 따라 필리핀의 ICC 탈퇴 효력은 1년 뒤 발생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그때까지 발생한 사건 자체에 대한 ICC의 관할권은 인정되지만, ICC는 궐석재판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앞으로 ICC의 정식수사가 개시되고 또 체포영장이 발부되더라도 두테르테의 신병이 실제 확보되지 않으면 재판 진행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제법상 국가원수는 그 공적지위로 인해 외국에서 개인의 형사책임을 면제받지만(주권면제), 로마 규정 제27조는 이러한 면제를 부정하고 있다"며 "2009년 수단의 현직 대통령 알 바쉬르에 대해 ICC가 반 인도범죄와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후 ICC와의 협력의무가 있는 로마 규정 당사국 방문을 제한받은 것처럼 두테르테에게도 유사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실질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상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그동안 ICC가 심리한 형사사건이 아프리카에서 발생된 것이 많았고 이에 일부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차별'이라며 탈퇴를 표명했던 적도 있다"며 "현재 ICC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해도 한두건씩 국제 형사 이슈에 대한 기소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ICC 존립 회의론이 고개를 들 여지가 있기 때문에 ICC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제사회가 응집해 뜻을 모으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ICC는 수사 개시 시 예심재판부의 허가가 필요해, 1년 내 수사개시 승인을 받으면 검사는 사건을 수사할 수 있지만 재판관할권이 성립하느냐의 문제는 이와는 또 다른 문제라 결국 ICC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권오곤(65·사법연수원 9기) ICC 당사국총회 의장은 필리핀의 탈퇴 의사 표명에 유감을 표명했다. 권 의장은 "(전문가들의) ICC 무력화 우려에 대해 동의한다"며 "특히 아시아 출신 의장으로서 아시아 회원국을 늘려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중 이런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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