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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전문 부띠크 로펌 40대 기수… ‘법무법인 현’ 김동철 대표변호사

"개인의 역량보다 단체의 조화, 연줄보다 능력이 중요"

"사법시험에 합격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정도면 충분히 강인한 사람입니다. 후배들이 기존 법률시장 구도에 겁먹지 말고 도전했으면 합니다. 도전과 경쟁을 두려워하면 결국 조직의 부속품으로밖에 남지 않습니다." 
'전문 부띠크 로펌업계의 40대 기수' 김동철(44·사법연수원 35기) 법무법인 현 대표변호사는 법조인들의 '도전 정신' , '개척자 정신'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밑바닥 개업변호사로 시작해 치열한 법률시장 경쟁을 뚝심 하나로 버텨 이겨냈다. 갖은 난관을 뚫고 소속변호사 40여명에 12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강소로펌의 수장이 된 그는 "대형로펌은 거대한 성(城)"이라며 "그 성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들과 싸워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경쟁력을 쌓는 길”이라며 시종일관 청년변호사들에게 '새로운 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끊임없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며 현을 금융· IP(지적재산권)분야의 떠오르는 강자로 만든 김 대표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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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인 김동철(44·사법연수원 35기) 법무법인 현 대표변호사는 어린시절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도 큰 미래를 꿈꿨다. "학창시절 가난 때문에 무작정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5년간 열심히 했죠.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첫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들 반응이 '너 컨닝한 것 아니냐', '부정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다음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그말이 진실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에 이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과외나 학원을 다니기에는 가정형편이 여의치않아 남들보다 항상 조금 느렸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깊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고 지식을 탄탄히 쌓았습니다. 그때의 공부 습관은 훗날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공부에만 매달렸던 김 대표는 대학시절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사회에 대한 회의감을 깊이 느꼈다. "저와 같은 1974년 범띠생들이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입니다. 이듬해부터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입 체제가 완전히 바뀌는 터라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춰 학교를 선택하던 때였죠. 그렇게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20대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입학 후 새로 만난 대학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데 국회의원, 법관, 대기업 임원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 친구들이 좋은 차에 여자친구를 태워 나가는 모습들을 지켜봤습니다. 순간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우울감이 밀려왔습니다. 수업도 많이 빠졌죠. 가난한 집안과 매달 하숙비조차도 부담스러웠던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시험을 보고 카투사에 들어갔는데 다른 군 동기들을 보며 자대배치에도 아버지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사실을 (정황상) 느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공정한 사회라고 느꼈던 제 믿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뒤늦은 사춘기에 깊이 빠졌었습니다."


남보다 조금 느렸지만 

깊게 공부하는 습관 배여

 

경영학과에 들어간 탓에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법학에 눈을 떴다. 그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자한 데는 집안 형편도 한 몫했다. "스물네살에 제대를 하고 회계사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동기들 대다수가 회계사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회계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랑 맞지 않았던 것이죠. 평소 깨알같이 많은 글이 적힌 두꺼운 책을 보는 것이 취미였던지라 법학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언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에도 나름 자신이 있었죠. 그리고 사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적성에 맞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직장을 고민하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했죠. 그렇게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낯선 서울에서 고달픈 형편에도 그가 사법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은인과도 같은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와 어려운 형편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5년여 동안 준비했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죠. 어머니 친구분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매달 80여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를 한 기간을 빼곤 매달 도움을 주셨죠. 그렇게 보내주신 돈이 3000여만원이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설과 추석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있지만 감사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친구 집에서 2년 동안 얹혀 살기도 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했을 때도 은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성가대 집사님이 저를 좋게 보셔서 전세자금으로 선뜻 1억원을 그것도 무이자로 빌려주셨습니다. 이자가 6% 정도 됐던 때라 매달 50여만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었죠. 그렇게 변호사가 돼 3년간 그 돈을 모두 갚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도움이 있었기에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고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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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 만난 지인들의 도움은 그에게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언제나 자신에게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 또한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왔기 때문에 더 절실히 깨달았죠. 후배변호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고 인간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들은 기업의 사장보다는 또래 실무자와 인간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시간을 보내며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들이 업무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사무적인 태도보다는 인간적인 태도를 보이며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성장하면 어린 실무자가 결정권을 가진 임원이 됐을 때 서로 상생할 것입니다."


청년변호사는 또래 실무자들과

인관관계 형성 필요

 

그는 로펌 대표로서 1등을 추구하는 개인의 역량보다 단체의 조화를 꿈꾸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똑똑한 사람들의 단점은 자신이 제일 똑똑한 줄 안다는 점입니다. 예를들어 전문가들은 50명이 모인 한 반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잘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신이 반장이 돼 10개 반 중에 1등 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어릴 때부터 1등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협업을 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현의 대표로서 조직원들이 화합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기득권이 없는, 후배 변호사들을 배려하는, 그리고 떠날 때를 아는 로펌'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 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끈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쓴 책을 보니 '자기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이 되고 싶지, 호날두나 루니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법무법인 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익이 있으면 후배변호사들에게 최대한 많이 배분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대표가 가져간다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제가 이끄는 금융팀은 급여수준이 대형로펌을 포함해 상위 5위 안에 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몫을 양보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제 몫을 (후배들에게) 준다고 해서 제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후배들이 애사심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죠. 예를들어 스몰 사이즈 피자 4분의 3을 먹는 것보다 라지 사이즈 피자 5분의1을 먹는 것이 더 많이 먹는 것입니다. 피자를 키우는 일은 저 혼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불가능합니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이 가진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후배들은 법률시장 구조에 

겁 먹지 말고 도전해야

 

'연줄이 아닌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그의 로펌 운영 철학이다.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가 조직은 철저한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완벽한 능력주의로 운영됩니다. 족벌체제를 금기시하죠. 능력이 부족한 전문가를 혈연·지연관계로 입사시킨다면 비슷한 경력의 다른 동료들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 단결력이 흔들리죠. 현은 철저하게 능력주의 시스템을 지향합니다. 대표인 저 마저도 후배의 노력에 숟가락을 얹어서는 안 됩니다. 후배들이 봤을 때 제가 부끄러운 행동을 하거나 존경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 저도 쫓겨나야 합니다. 미국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실리콘 밸리인 것처럼 저희도 인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능력이 우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현의 분위기는 회사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대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운이 좋아 대표를 오랫동안 맡게 된다 하더라도 50대 초반이 되면 로펌의 핵심적인 권한은 후배들에 넘기고, 지분을 갖고 통제하는 법률적인 권한은 60대가 되면 가장 믿는 후배에게 넘길 것입니다. 예컨대 (삼성라이온즈에 있었던) 류중일 감독이 이승엽 선수와 경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류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인정받는 감독이 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로펌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후배가 나오면 그가 대표를 맡으면 됩니다. 저는 제 또래에서 가장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가 꿈꾸는 현의 미래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0년, 20년 후에도 모든 변호사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한 현이 되길 바랍니다. 화목하면서도 대표나 파트너변호사의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로펌이 되었으면 합니다. 후배들도 대표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그런 회사죠. 저는 늘 후배들에게 '회사를 위해 가장 헌신하는 후배에게 회사를 주고 갈 것이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대회의실에 <귀하의 평생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드립니다>가 적힌 흑백사진 하나 걸어달라'고 합니다. 현은 김동철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현의 성장과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대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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