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주경야독 고학생 신화’… 퇴임한 박병대 대법관

"판사가 '기록의 창'을 통해 본 세상은 한정적… 겸손해야"


118503.jpg




"판사는 기록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실제 세상은 창틀 바깥으로 훨씬 더 넓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재구성된 과거는 대부분 실제 존재했던 과거와는 크든 작든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관이 발견하는 사실은 실상을 그대로 복제해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법관의 숙명이지만, 그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사실의 실체가 과연 어떠했는지는 당사자만큼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세상이 변하면 법리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당연히 생깁니다. 그러므로 법관은 겸손해야 합니다."  32년 법관 생활을 마치고 1일 퇴임한 박병대(60·사법연수원 12기) 대법관은 퇴임사를 통해 후배 법관들에게 '겸손'을 강조했다. '야간고 고학생 신화'로도 알려져있는 박 대법관은 "그 정도의 난관을 뚫고 몸을 일으킨 사람은 우리 사회에 부지기수로 많다"며 자신을 낮췄다. "법관생활을 하는 동안 저의 학창시절 어려움을 특이한 자부심으로 내세운 적이 없고, 반대로 이를 숨기려 한 적도 없습니다. 그 경험이 저의 인생관, 세계관 그리고 재판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세상을 좀 더 폭넓게 보고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을 좀 더 애틋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업무 능력은 물론 뛰어난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며 재판제도 개선에 앞장선 '영원한 법원맨(Man)' 박 대법관을 퇴임 사흘전인 지난 29일 대법원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박병대(60·사법연수원 12기) 대법관은 학창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충북 단양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접었다. 그러다 박 대법관의 자질을 아깝게 여긴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서울의 한 방송사 직원의 집에 머물면서 낮에는 방송사 사환 일을, 밤에는 환일고 야간부 학생으로 주경야독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그렇게 그는 환일고가 배출한 첫 서울대 법대 합격생이 됐다. "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야간고 출신 첫 대법관이라고 나옵니다. 야간고 출신이라는 점이 대학 입학 시점이나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전할 그 당시에는 말거리가 되겠지만, 그 후 40여년이 지나 대법관을 마치고 퇴임하게 된 사람에게 여전히 그런 수식어가 첫머리에 붙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듭니다. 이 시점에서 저에 대한 평가는 법관으로서, 또 대법관으로서 어떠했는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전교생이 500명 안팎이던 산골 초등학교 출신이 법관이 됐다는 것 자체로 큰 성취라면 큰 성취여서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격려가 된다면 저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박 대법관은 자신이 주심을 맡은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 사건' 무죄 선고 판결문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존 대법원 판결문과는 달리 상고이유를 판단하기에 앞서 1,2심 재판부가 파악한 사실관계를 요약해 소개하면서 말머리를 여는 기존의 틀을 깬 파격적인 판결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판결문은 전후사정이 생략된 채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만 전하는 기존 판결문과 달리 사건의 기본내용부터 파악할 수 있어 당사자는 물론 누구가 쉽게 상고심 판결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 친절'하고 '더 상세한' 판결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도는 '문장은 짧게, 내용은 쉽게, 형식은 자유롭게, 구성은 맞춤형으로, 그리고 단어는 최대한 시대감각에 맞춘다'는 박 대법관 나름의 판결문 쓰기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의 방산비리 사건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도 보통사람이 아닌 해군 참모총장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그 사건 판결문은 역사적 기록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판결문 자체로 무기구매 체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세월이 가도 의미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법원이 왜 무죄라고 판단했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면 내용 구성을 통해 법원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시해서 역사 기록물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연구관들과 의논해 다른 방식으로 쓰는 방향으로 틀을 잡았습니다. 모든 사건을 그렇게 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시대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원심의 결론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결론의 당부만을 밝히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법관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사건을 처리했지만 살인 사건 판결 3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하급심에서도 잔혹한 살인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지만 모두 자백해서 양형만 문제가 된 사건들이었는데, 피고인이 강력하게 범행을 부인하며 유·무죄가 갈리는 사건은 대법원에 와서 처음 맡았다고 한다. "3건 중 2건은 1심에서 무기징역 또는 징역 15년,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입니다. 나머지 1건은 1심이 무죄, 2심이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건을 심리미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입니다. 세번째 사건은 퇴임 이틀 전인 5월 30일 선고했습니다. 모두 보험금을 노린 범행으로 무죄와 무기징역 등 양극단을 오가는 사건이어서 무척 고심했습니다. 유죄와 무죄, 어느 쪽으로든 오판을 하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셋 다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한 것인데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죄인인데 무죄 방면하는 것도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제 생각이 미치는 모든 각도와 깊이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법관 인생에서 극단적으로 남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대법원에 와서 3건 한 셈입니다. 앞의 두 사건은 파기환송 이후 유죄로 확정됐습니다. 마지막 사건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결과를 관심있게 지켜볼 것입니다."  

 

 

박 대법관은 헌법적 가치를 일반 소송사건에 적극적으로 투영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왔다. 종래라면 법률 규정에 따라 해석하던 것을 헌법과 연결시켜 판시하는 시도를 자주했다. "형사사건 판결에서는 특히 자주 헌법원리를 원용했습니다. 인신의 자유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러쉬라는 임시향정신성의약품의 사용 등에 대한 처벌규정의 해석 사건(2015도13103), 축사 등 건축허가와 관련한 환경권 문제와 사법심사의 기준을 다룬 사건(2016두55490) 등이 대표적으로 생각납니다."

 

형사절차에서 수사의 적법성에 관한 판결도 많이 남겼다. "카카오톡 감청영장 사건(2016도8137), 음주운전자 강제채혈의 적법요건(2011도15258), 피의자 신문조서의 실질적 진정성립 인정 방법(2011도8325), 컴퓨터 파일 출력물의 증거능력 인정요건(2012도16001), 모발감정의 증거가치(2011도11817), 상해진단서의 증거가치 판단(2016도15018) 등에 관한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대법관이 되면서 가장 중점에 둔 가치는 '인권'과 '법치'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여러 면에서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다듬어지지 못한 미성숙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특히 형사절차에서 무리수가 상당히 많이 보입니다. 또 행정의 자의적 행태가 두드러집니다. 공권력 행사가 자의적으로 되거나 문제가 있는 곳이 사법이 기능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법이 그 영역에서 역할을 해야 하고 저는 이것이 인권과 법치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니 형사사건과 행정사건에서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거나 정리한 판결을 많이 한 것도 그런 생각의 소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뛰어난 재판 능력뿐만 아니라 특유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사법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은 물론 대법관이 된 이후에도 2014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박 대법관은 사건관리방식 개념을 도입한 민사신모델을 구성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심리구도의 기본틀을 만들었다. 또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고, 전자소송의 추진 방향을 정한 최초 모델도 구상했다. 조정센터, 전문심리위원 제도, 소송대리인 소송구조 제도도 도입했다. "사법행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재판의 품격과 퀄리티(Quality)를 높이기 위한 제도 및 운영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법관 역량의 심판기능 집중'이라는 모토를 걸고 여러 정책 아이템들을 추진했습니다. 법관은 오로지 사건을 심리하고 판단하는 핵심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수적인 업무 부담을 최대한 제거해 시간과 능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속기의 도입, 사법보좌관의 권한 범위 확대, 재판장의 인지검열 제도 폐지, 판결서의 간인 대체 제도 개발, 독촉 절차에서 공시송달 사건에 대한 이행권고결정제도 적용 확대 등이 그런 범주에 속합니다. 결국 재판이 잘 되게 하고 사법부가 제 위상을 찾게 하는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118504.jpg

 

박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성균관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힘쓸 계획이다. "성균관대로 적을 옮기고, 9월 가을학기부터는 독일에 가서 한 학기쯤 지내면서 관심 있는 몇 개 주제에 관해 얘기도 듣고 세상 경험도 더 해 볼 생각입니다."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사법서비스를 법정에서 성의있게 하라"고 당부했다. "10여년 전 사법서비스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분들이 그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준엄하게 선언하는 곳이 법원이고 또 사법의 기능일진대 서비스라는 말이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이었습니다. 일리가 없는 지적은 아니지만, 원만하게 생각하면 재판은 판사가 성의를 가지고 임하는 것입니다. 재판을 하는 법관의 마음가짐이 성의를 다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반발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상황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법 앞의 평등'이 제대로 실현된다는 데 대해 일반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것입니다. 법의 운용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들, 특히 사법부 구성원들이 각별히 마음에 담아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날은 밝습니다."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