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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소신있는 휴머니스트’ 퇴임한 이인복 前대법관

"법원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여 인간미가 흐르는 따뜻한 법원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온기가 재판 받는 당사자들과 국민들에게 전해져 따뜻하고 정감 있는 사법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1일 이인복(60·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이 32년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던진 화두는 '인간미'와 '정'이었다. 그가 마지막 인사를 시작하자 퇴임식이 열린 대법정 앞 중앙홀은 한순간에 숙연해졌다. 퇴임식에 참석한 재경 법원장과 고위 법관, 일반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긴 한숨을 쉬기도 했다. 평소 친형처럼 온화하고 소년처럼 해맑으면서도, 재판과 관련해서는 추상과 같은 판사다움을 다시는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듯.

이 대법관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소탈함'과 '배려'의 아이콘으로 꼽는다. 그의 주심 부호인 '가'방의 재판연구관들은 "'가'방의 연구관으로 일한 것은 복을 넘어 천운이었다"고 말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소신이 당당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함을 지닌 휴머니스트, 이인복 대법관을 퇴임을 앞둔 지난달 19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인복(60·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그는 스스로를 '늦게 자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늦게 컸어요. 고등학교 때만 해도 키 순서대로 하면 10번을 못 넘겼는데, 대학교 1학년때부터 꾸준히 오랫동안 컸습니다. 학창시절도 지극히 평범했어요. 어렵게 자랐다는 말… 그런 말을 많이 듣는데, 그 당시에 어렵지 않게 자란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사립대는 못 가도 국립대 갈 정도의 형편은 됐죠. 반장 한 번 해 본 적도 없이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키가 늦게 큰 것처럼 늦자랐나봐요(웃음)."

반장 한번 해 본적 없는 평범한 학창시절 보내
법원서도 '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재판 업무만
대법관 후보 오른 것 만으로 영광이라 생각했어

6년 전 그가 대법관으로 발탁됐을 때엔 '의외의 인사'라는 평이 많았다. 인품과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법원내 주요 보직으로 꼽히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오로지 일선에서 재판만 해왔기 때문이다. "행정처 근무 경험과 대법관은 관련이 없습니다. 똑똑하고 일을 잘할 사람을 먼저 뽑아 행정처에 배치한 것이지, 거기 있었다고 해서 뽑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행정처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오히려 미안했어요. 법원 내에서 '악역'을 맡은 셈이니까요." 그도 자신이 대법관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4명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제가 임명되자 당시 후보였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자신의 몫까지, 재판 잘하라'고요. 항상 그 때 그 마음을 떠올리며 일해왔습니다."

이 대법관은 동료나 후배, 법원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기로 유명하다. 2010년 춘천지법원장 시절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가 실시한 대법관 선정을 위한 법원가족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판사와 직원 1336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는데 5점 만점에 4.63점을 받아 전국 법원장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소탈한 성품과 따뜻한 배려심으로 재판을 운영해 당사자와 변호사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같은 해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한 법관평가에서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대법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배석판사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부장판사 1위로 꼽혔다. 벙커(배석들을 힘들게 만드는 일 중독증 있는 부장판사를 의미하는 은어)들이 즐비하던 시절이라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천사표' 부장판가사 된 비결을 묻자 "일을 안 시키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철이 덜 들었어요.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쫓기게 되고 그러다보면 후배들을 다그치게 됩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후배들을 돕는다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이 대법관은 자신의 판결을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을 '진보'든 '보수'든 어떻게 분류해도 상관없지만 그 기준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현재의 기준은 잘못돼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 가운데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당사자가 누구이고 어느 쪽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는지만 기준으로 삼아 문제입니다."

배석판사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부장판사 1위에
'배려의 아이콘' 이지만 판결만큼은 당당한 소신
재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존엄사 사건'

그는 자신의 수많은 판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내린 '존엄사(2008나116869)' 판결을 꼽았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환자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존엄사를 허용할 수 있는 기준을 자세히 제시했다.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어야 하며, 환자의 일시적 판단이 아니라 진지한 의사표현이 인정될 것, 일상적 치료 중단이 아니라 사망 과정으로서 의사에 의해 이뤄질 것 등이다. 무분별한 치료 중단으로 이어질 것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하면서도 인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숭고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대법원도 이 판결을 받아들여 2009년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결을 내놓았다. 이 대법관은 "존엄사에 대한 사회의 높은 관심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다"며 "인간의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료나 후배들에겐 '배려의 아이콘'이지만 판결할 때 만큼은 '소신'이 당당하다.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89399)에서 이 대법관은 근로자들의 편에 서 소수의견을 냈다. 근로자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해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다수의견을 반박하면서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 거듭 살펴보아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며 표현해 화제가 됐다. "반대의견을 쓰면서 잘 다듬으려고 노력했어요. 저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제시할 수 있는 모든 논거를 다 짚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대법원 판결 중엔 하급심 법관들에게 경종을 울린 판결도 있다. 박주원 전 안산시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주원 전 안산시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이후 박 전 시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이 대법관은 유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검사의 공소 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 법원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성범죄 사건에서도 무죄라는 판단이 서면 대중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형사 피고인의 권리와 피해자의 권리 중 피해자의 권리를 강화해주는 경향이 있어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서 무죄 판결을 하면 많은 비난을 받기 때문에 부담이 크죠. 하지만 하급심 판사들을 위해 대법관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하지만 과해서는 안 되죠. 대법원에서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법관'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법조비리로 '사법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표현이 연일 등장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부디 언론에 계신 분들은 사법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한 건 잘했다고 격려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 두개의 잘못을 가지고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거나 하는 처방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판사와 직원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사법신뢰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사법부에서도 자꾸 추상적인 신뢰 제고 방안을 찾고 있어요. 법원은 재판만 잘 하면 됩니다. 사법 신뢰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국제적으로 중재, 관할권 협상을 할 때도 우리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판사의 제1덕목은 용기라지만 실력이 가장 중요
대법관 이후 변호사 개업반대 주장에 공감 못해
윤리에 맡길 일을 각서 쓰라고 강요 하지말아야

이 대법관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와 관련해서는 "획일화된 다양화 주장은 공정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아닙니다. 투표로 뽑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기계적인 지역, 출신학교, 성별 안배 때문에 놓치는 인재가 많을 것입니다. 다양화 주장이 오히려 진정한 다양화를 가로막고 있어요. 저 역시 그렇게 비판받는 '서오남(서울대 출신의 오십대 남성 판사를 뜻하는 말)'이지만 '진보 대법관'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웃음)."

그는 앞으로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일하며 후배 양성과 사법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후임인 김재형 대법관에게 대한변협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 포기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사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윤리에 맡겨야 할 일을 각서 쓰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게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외부에서는 판사의 덕목이 용기라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열정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합의 과정에서도 실력으로 다른 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 이론과 철저한 논리로 설득은 못해놓고 반대만 하거나 독특한 의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실력이 있어야 용기 있는 판결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력보다는 소신 위주로 판결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독선과 결합되면 해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실력을 키우시길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 퇴임 소감을 묻자 그는 "이제와서 알 것 같다고 말하긴 어렵고 할 만큼 했다"며 웃기만 했다. "32년 동안 판사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실력과 양심의 범위 안에서 할 만큼 했어요. 실력이 모자라거나 부족할 순 있었겠지만 양심에 어긋난 것은 없었습니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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