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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심리불속행 기각률 70% 넘어… 상고심 제도 개선 절실

올 들어 71.2%기록… 이유도 모른채 기각 당한 사건 당사자 '황당'

미국변호사

올 상반기 상고심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70%대를 넘어섰다. 이유도 모른 채 상고를 기각당한 사건 당사자와 변호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법원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상고심 개편의 핵심 방안으로 추진됐던 상고법원 도입 법안이 제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면서 상고심 개편 동력이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1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항소심의 사후심적 운영을 통해 재판을 가급적 1심에서 끝내고 상소를 줄이는 '사실심 강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최고 정책법원으로서의 대법원 제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상고심 제도 개선 논의가 재개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일 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올 1~6월까지 대법원이 처리한 민사·가사·행정·특허 상고심 사건 9438건 가운데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된 사건이 6717건으로 71.2%에 달했다. 특히 가사사건은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84%에 달하고, 행정사건 역시 76.1%에 이른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민사사건도 69.6%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고 있다. 특허사건도 68.7%의 높은 심리불속행 기각률을 보이고 있다.

심리불속행이란 민사나 가사·행정·특허분야 상고사건에서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가장 큰 원인은 상고사건 폭주…
작년 사상 최고 4만1850건 기록

문제는 이 같은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떨어질 줄 모른다는 점이다. 2011년 66.8%를 기록했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2012년 52.8%까지 떨어졌지만, 2013년 54.2%, 2014년 56.6%로 증가 추세로 돌아선 이후 지난해 62.2%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올 상반기에는 70%대까지 돌파했다.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높은 이유는 남상소 등에 따른 상고사건 폭주가 주된 원인이다. 1993년 1만3740건에 불과했던 상고사건은 2005년 2만2587건에 이어 2009건 3만2361건으로 3만건대를 돌파했다. 이후 매년 증가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4만1850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이미 2만건에 가까운 상고사건이 접수됐다. 이 때문에 대법관 1명이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휴일도 없이 일한다 해도 하루 9건 가까이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항소심 판결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비율이 떨어질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28.6%였던 상고율은 2006년 30.1%를 기록한 뒤 매년 증가추세를 보여 2011년부터는 36%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사건 폭주로 대법원의 정책법원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최고 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최종적 법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사회적 갈등 해소와 통합 방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원의 정책법원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는 사건 수는 매년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대법원, 정책법원 기능마비…
전원합의체 회부사건 년 20건 안팎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상고심 파기율이 최근 10년간 6%대에 못 미치는 등 대부분의 사건이 기각되고는 있지만 무려 4만건이 넘는 상고사건 가운데 전원합의체에 회부할만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 20여건 밖에 없을지는 의문"이라며 "대법관들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압도적인 다수의 사건을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사건을 가려내 심사숙고하고 토론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적인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행 상고심 제도의 개편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지난 국회 때 법조기관이나 단체별로 각기 다른 방향의 상고심 제도 개선안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현행 상고심 제도가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한다는 큰 뿌리에는 모두 동의를 한 상황"이라며 "이번 국회에서 하루빨리 관련 논의를 시작해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상고심 제도 개선은 전체 심급 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바라봐야 하는 만큼 사실심 충실화나 조정·중재 등 대체적 분쟁해결 방안(ADR)의 활성화 등과 함께 병행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재홍·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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