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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현 변호사 ② 김근하 살해사건 무죄선고(下)

김태현 변호사(전 대법원 판사) -제3155호-

K씨에게 교도소를 잠시 출소해 김근하를 살해했다고 허위자백을 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같은 전과자의 진술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시험 삼아 범죄사실을 허위로 자백하여 보니 그런 사실은 전과자의 진술이라도 잘 믿더라." 완전히 당국을 농락했다는 대답이었다.
그의 농락은 계속된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나는 공산당원이다. 나는 크라운빠의 김 마담에게 공산당 입당원서를 냈으며 김 마담 위에는 대구에 사는 황 노인이 있다. 어디어디로 가면 어느 집에 푸른 기가 서 있는데 그곳을 지나 몇 미터 더 가면 붉은 기가 꽂힌 집이 나오는데 그 집이 우리들의 아지트다"라고 진술, 수사기관을 현혹케 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공산당 조직은 '점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원은 바로 자기 윗선만 안다. 그 '위의 위'는 알 수 없다. 자기 위에 김 마담이 있고 그 위에 황 노인이 있다는 진술은 점조직 원칙에 저촉되는 얘기다. 또 공산당원 가입방법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口述'에 의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에 K씨의 자백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K씨를 불법출소시켰다는 교도관 여씨는 그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자백을 했는데 그 시기가 K씨가 공산당 관련 진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씨는 "수사기관이 이 사건은 공산당 관련 사건인데 K씨의 불법출소사실을 자백하면 집행유예로 관대히 처리해 주겠으나, 부인하면 공산당 연루자로 다룰 것이라고 협박해 무서워서 자백했다. 그리고 교도관 P씨가 수사기관의 뜻이라고 하면서 협박 내용과 같은 사실을 전해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수사기관의 의사를 전달했다는 교도관 P씨는 제1심에서 "그런 말을 전한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나는 판결문에서 "P씨는 그런 사실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다고 증언하여야지, 그런 자극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는 것은 이 사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도피적인 자세"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위와 같을진대, 보통사람들도 K씨의 불법출소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법무장관은 수사기관의 보고에 의하였는지 제1심 판결에 의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국회에서 불법출소사실을 시인함으로써 교도행정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교도관들의 사기는 극도로 위축됐다.
제2심에서 K씨의 불법출소 사실이 부인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교도행정의 신뢰도와 교도관들의 사기는 겨우 회복됐다. 또 K씨의 진술에 의해 붙잡힌 최씨, 김씨, 정씨 등 다른 3명도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당시 군에 입대해 있던 정씨는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판결받았다가 재심으로 무죄가 되었다)
한편 이 사건 김근하 소년은 가슴 우측(오른팔 쪽)에서 좌측(왼팔 쪽)으로 과도가 꽂힌 상태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김 소년의 목에는 손톱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이럴진대 범인이 키 작은 김 소년의 뒤에서 왼팔로 목을 감아 약간 위로 올리면서(이때 김 소년이 답답하여 범인의 팔에 손톱으로 저항하다가 자신의 목에 손톱자국이 난 것 같다) 오른손에 쥔 과도로 소년의 우측 가슴에서 좌측 가슴 쪽으로 깊숙히 찔렀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왼손잡이인 정씨를 검거해 오른손으로 목을 감고 왼손에 쥔 칼로 소년의 왼쪽 가슴에서 오른쪽 가슴쪽으로 찌른 것으로 검증조서를 작성해 놓았다.
수사기관의 위와 같은 착오의 원인은 소년의 시체를 검안한 의사가 범인이 소년의 앞에서 대면하고 찔렀다면 왼손잡이의 소행이라고 진술한데서 연유한다. 의사의 진술에 따르면 소년의 뒤에서 찔렀다면 범인은 오른손잡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수사기관은 왼손잡이를 잡아다가 소년의 뒤에서 찌르게 검증을 했으니 결론이 엉망으로 된 것이다. 소년의 목에 손톱자국이 있는 이상 뒤에서 오른손잡이가 찌른 것으로 보아야 '시체검안서'와 일치한다.
위와 같은 여러 이유로 나는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1심 판결의 사형선고가 제2심 판결에서 무죄로 변경되자 각 신문과 방송은 요란하게 보도를 내보냈다.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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