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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현 변호사 ① 김근하 살해사건 무죄선고(上)

김태현 변호사(전 대법원판사) -제3154호-

이 사건은 1967년 10월17일 밤 과외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던 11세의 초등학교 5학년생인 김근하 소년이 부산시 동대신동 화랑초등학교 앞에서 과도로 가슴이 찔린 채 상자에 담겨 해변에 버려진 엽기적인 살인사건에서 시작된다.
충격적인 사건에 놀란 경찰은 2주일 후인 11월2일 김 소년의 가정교사 김모씨(20·K상고 2년)를 범인으로 검거, 자백까지 받았으나 알리바이가 성립되어 48시간만에 석방하였다. 석방된 김씨는 "고문에 못이겨 거짓자백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K상고생 1천여명은 수사의 잘못과 언론의 오보를 규탄한다며 데모를 하였고, 수사본부는 사과했다.
그 후 검찰은 수백명의 용의자 추적 끝에 226일만인 68년 5월29일 K씨와 김근하의 외삼촌인 최모씨, 김모씨, 정모씨 등 4명을 검거하고, "K씨가 범행 당시 절도 및 폭력사범의 기결수로 대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중 교도관 여모씨를 매수해 2일 동안 감방에서 빠져나와 범행을 저지른 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 사실을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행형사상 유례가 없는 일에 대해 검찰과 교도소측은 팽팽하게 맞섰으나 68년 11월22일 1심 법원인 부산지법은 4명의 피고인에게 살인강도·시체유기죄 등으로 각 사형을 선고하고, 교도관 여씨에게는 불법출소시킨 사실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공판정에서 피고인들은 재판부에게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고 가족들은 억울하다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피고인들이 항소해 대구고법 형사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나는 2심 재판장 자격으로 위 사건을 심리하게 됐다.
이 사건의 특징은 결정적 물증이 없는 점, 피고인 K씨의 자백이 시발점이 되어 다른 피고인들도 자백하게 된 점, 살인 경위에 관한 자백 부분이 계속 변하고 있는 점이다.
또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기록이 이례적으로 방대했다. 자백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변하는 자백을 그대로 기재하니까 방대하게 된 것 같다.
약 10㎝ 높이의 기록뭉치가 47개나 되어 이것을 다섯줄로 내 책상에 쌓아 올리니 한 줄 높이가 약 90㎝가 된다. 책상의 의자에 앉아 보니 기록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제2심 판결의 결과는 피고인 전원이 무죄로 되었다. 기록이 방대하니 판결서는 이를 줄여 썼어도 약 3만자가 되었다.
무죄이유가 길지만 줄여서 소개한다.
첫째, 피고인들 4인의 자백이 진정하다면 살인의 경위, 과도의 출처 등에 관하여 숨길 이유가 없다. '큰' 것을 자백하는 자가 부수적인 '작은' 것을 숨길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도의 출처 등 작은 것에 관해 진술을 수없이 변경하고 있으니 이렇게 되면 살인사실 자체의 자백이 嚴問에 의한 허위자백일 개연성이 높아진다.
둘째, 기결수 K씨가 교도관을 외상으로 매수해 2일간 교도소를 나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로 돌아왔다는 검찰측의 주장은, 교도관이 되돌아 올 보장도 없는 죄수를 외상으로 출소시킨다는 사실을 누가 믿는다는 말인가.
셋째, 기결수가 출소했다면 囚衣를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고 나갔음이 분명한데 수의의 행방 및 민간인 옷의 출처와 행방에 관하여 설명이 없고, 수의 또는 미간인 옷이 압수돼 있지도 아니하다.
넷째, 검찰측 주장은 K씨가 형기전 출소한 날짜가 67년 10월17일 10시이고 그날 밤 다른 3명과 합동으로 김 소년을 죽이고 19일 교도소에 돌아왔으며 동년 11월5일 만기출소했다는 것인데, 대구교도소의 접견표에 의하면 동년 10월17일 박영태라는 사람이 K씨를 면회한 사실이 인정돼 K씨가 범행날짜에 교도소에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다섯째, K씨는 10월17일 불법출소하여 A씨, B씨, C씨, D씨를 만난 사실과 만난 일시 및 장소를 진술하였는데, 제2심 재판장이 "11월5일 만기출소한 날 만난 사람과 그 일시·장소를 말하라"고 신문하자 앞의 경우와 똑같이 A씨, B씨, C씨, D씨를 만났고 그 시각 장소도 똑같이 대답했다. 그러나 A씨, B씨, C씨, D씨는 아무도 K씨를 두 번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여섯째, K씨와 같은 감방에 있었던 감방장 백모씨는 "매일 취침시 점호를 했는데 K씨는 언제나 감방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일곱째, K씨는 68년 5월29일 사건발생 226일만에 다른 3명과 같이 검거됐는데 K씨는 그 무렵 수사기관에 "김 소년 사건을 알려면 나를 찾아오라"는 통지를 했다. 수사기관은 "범인은 수사기관에 가까이 오는 것"이라는 엽기적인 징크스를 믿었음인지 K씨를 찾아내 범죄사실의 자백을 받았다. 즉 67년 10월17일 다른 3명과 합동으로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수사기관은 이 자백을 대전제로 수사를 진행하다가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 K씨의 만기출소일이 동년 11월5일(범행일 19일 경과후)로 밝혀지자 그때서야 K씨에게 형기전 불법출소한 사실을 추궁하여 이를 시인시켰다. K씨는 처음부터 자기가 범인이라고 허위자백하는 자이므로 살해사실을 자백할 때 불법출소 사실을 자백했어야 한다. 이런 사정하에서는 누구나 K씨의 불법출소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