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계 IT 최고 전문가' 강민구 부산지법원장

"법조인들도 스마트폰·IT기기 사용에 익숙해져야"


"정보통신기술(IT)이 발전해 로봇 판사가 곧 인간 판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법조인이 'IT 감수성'을 지닌다면 오히려 심도 있고 세련된 논리전이 가능해집니다. 이른바 명품재판이 되는 것이지요."
법조계 최고의 'IT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강민구(58·사법연수원 14기) 부산지법원장이 조용히 커피를 내리며 이같이 말했다. IT를 잘 활용하면 국민에게 제공하는 사법서비스의 질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관에 임용되기 전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코딩(coding, 컴퓨터 작업의 흐름에 따라 명령문을 사용해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 등을 일찌감치 익힌 덕분에 그는 1990년대부터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포털과 DB구축, 전자소송제도 구축에 관여해왔다. 지난 4월에는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국민을 위한 사법행정 업무의 전자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IT분야의 최고 전문가 강 원장을 지난달 부산 연제구 부산지법원장실에서 만났다.
 
법관임용 전부터 컴퓨터 관심 많아 코딩 등 익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포털·전자소송 구축 기여
사법정보화 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도 

강민구(58·사법연수원 14기) 부산지법원장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섯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의 상여가 나가던 날 묫자리 위에서 흙다지기를 하며 철없이 즐거웠던 기억만 선명하다. 대대로 농사만 지어 온 집안이고 법조와 연(緣)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날 상여꾼 중 한 명이 "이 집안에서 판사가 나온다"는 수상한(?) 소리를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그는 법관이 되고 싶었다. 재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오로지 주변의 덕(德)분이라고 한다. 보부상이나 갑작스럽게 방문한 친척들에게도 아낌없이 베풀기를 좋아했던 할머니와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홀로 2녀 4남을 키워낸 어머니가 그의 인생 길잡이가 됐다. 한 동네 사람이나 친구들,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 덕분에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낄 틈이 없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조는 가족에게서 배운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착한 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까지 미친다는 뜻입니다. 저는 늘 제가 가진 재능과 배려, 금전, 시간 등을 다른 사람과 함께 최대한 나누려고 애써왔습니다. 덕을 쌓는다는 생각보다는 빚을 갚는다는 생각입니다. 공직생활을 했으니 저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많은 빚을 졌어요."
 
 
강 원장이 빚을 갚는 통로는 IT 전문가답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유명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지인은 물론 판사나 법원 직원, 시민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매주 소식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는 법원 소식뿐만 아니라 요리법이나 건강·여행은 물론 IT 신기술 등 만물정보가 담겨있다. 그 꾸준함과 정보의 방대함에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일반적인 법조인과는 다른 다소 파격적인 행보에 '엉뚱하다', '돈키호테같다'는 얘기도 듣는다. 법조계 선배들은 '법원장의 권위가 깨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어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는 '積善之家 必有餘慶'

재능·시간·금전 등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노력
SNS 통해 법원소식·취미 등 다양한 메시지 전달

"우리 법원 직원은 주말 저녁에도 제게 도움을 청해옵니다. 법원 구성원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권위 아닐까요. 권위는 엄숙하게 무게를 잡는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스스로 주인의식을 느낄 때 리더로서 권위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의 자긍심이 어떤 외형적 성과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를 이루려면 소통해야 하지요. 억지로는 안 됩니다. 사랑과 정성이 있어야 해요.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좋은 것을 남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 언제나 SNS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법원장으로서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자료 정리에 철저하다. 핸드폰 주소록에서부터 재판기록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목차별로 정리한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발달하면서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됐다. 정보를 무작정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다듬고 줄을 세워 100% 이상 활용한다. 특강을 위해 부산지법을 방문한 유명한 소설가도, 기업인도 모두 강 원장이 스마트 기기를 십분 활용하는 모습에 감탄을 한다. 강 원장은 기자에게도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문서를 작성하는 법, 1분만에 보도자료 만들기 등을 시연해 보였다. 자신의 일정표는 스마트폰으로 직원들과 공유하며 누구나 입력과 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간단한 보고 사항은 원장실에 직접 올 필요 없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내도록 조치했다.
"예전에는 원장실에 보고를 가려면 원장께서 다른 부서 사람들과 약속은 없는지 등을 일일이 비서실에 전화해 확인해야 했지요. 직원들이 보고서 들고 원장실 앞에서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 메신저로 대신하자고 했습니다. 비효율적인 절차는 개선하고 꼭 필요한 업무에 에너지를 투입해야 합니다."

강 원장은 다른 법조인들도 스마트폰과 IT기기를 사용하는 데 보다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인공지능의 발달이 법조계에 어떤 미래를 가져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한 공포감을 극복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법률전문가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려면 반드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인공지능 발달로 법조 인력 구성에 변화 불가피
IT가 가져 올 변화 적극 수용하는 미음가짐 중요
'IT감수성' 주제로 창원지법에서부터 강의 계속

"물론 인공지능의 발달로 법조 인력 구성에 변화가 불가피하겠지요. 제가 초임 판사일 때만 해도 소장하고 있는 판례초고가 많은 사람이 더 유능하고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디지털화된 많고 많은 판례들 중에서 해당 사건에 가장 유사하고도 원용 가능한 판례를 빨리 찾아내는 사람이 대접을 받습니다. 앞으로는 이마저도 컴퓨터가 대신할 겁니다."

그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빅데이터에 기반한 법률 인공지능 시대에 법조직역 전체가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앞으로는 컴퓨터가 판례 데이터를 이용해 계약서에 비정상정인 조항이 포함돼 있는지 검토해 부정확하거나 분쟁의 소지가 있는 조항을 필터링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존 법조인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을 마냥 두려워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강 원장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오히려 법조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가 가져올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과학기술에 발전에도 뒤쳐지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끊임없이 기록과 싸워야 하는 판사는 컴퓨터가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도와준다면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한 사실관계 파악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지요. 변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재판에 임할 수 있을 겁니다."

강 원장은 이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IT 감수성'을 꼽았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직시하고 IT가 가져올 변화를 적극 수용한다는 뜻이다. 강 원장은 IT 감수성을 주제로 전임지인 창원지법에서부터 '점프 투 스마트 코트(Jump to smart court)'라는 강의를 시리즈로 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글로벌 IT 트렌드를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법원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참가할 수 있어 강의가 열리는 매주 월요일마다 법원이 주민들로 북적였다. 처음에는 못마땅한 시선도 많았다. 행사를 여느라 예산을 낭비한다거나 재판에 소홀한 것은 아니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강 원장의 행보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산에서는 최초인지라 처음에는 걱정어린 시선을 많이 느꼈습니다.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관내 체육대회 행사만 조금 줄여도 조달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효과는 큽니다. 강의를 한 번 기획하면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지요. 모든 강연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www.youtube.com)에서 '부산지방법원'을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반짝하고마는 전시성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고단하지만 이같은 고강도 집중학습이 변화의 단초가 되고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건 처리에도 열심이다. 강 원장이 근무한 재판부는 사건 종국률도 높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는 비율도 다른 재판부보다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는 "소통도 IT 감수성도 결국 재판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후임 재판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업무를 제때 마치려고 늘 노력했다"고 했다.

"다른 일로 바빠서 재판을 소홀히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재판부에 있을 때는 모든 일을 이틀전에 마쳤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요. 모든 사건의 기록을 백서로 만들고 공유하는 것도 결국에는 신뢰받는 재판을 위한 것입니다. 국민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법관으로서의 직업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달변가에 추진력도 남달라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많은 만큼 '치적에 신경쓴다'는 좋지 않은 소리도 가끔 듣는다. 하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도 이유없이 한 것이 없고 성과없이 지나간 것도 없다"고 말했다.

"창원지법에 있을 때부터 예술법정을 도입했습니다. 법정에 음악을 틀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걸었지요. 전자법정이 물적장비라면 예술법정은 심적 인프라입니다. 사건 당사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 하루종일 법정에 앉아 있어야 하는 법관과 직원 등 '내부고객'에게도 서비스 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마음이 차분해지면 막말판사나 막무가내 당사자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일을 다한다', '주책맞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재판을 효율적으로 잘하는 방법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후임으로 오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일처리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법관의 재판 운영과 판결 과정 등에 대한 가장 엄격한 평가자는 상급심이나 법원장, 언론, 여론이 아닙니다. 바로 그 업무를 이어 받는 사람이지요. 후임 재판부는 인계기록을 보면서 전임 재판부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법원장으로서의 소임을 잘 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후임 법원장이겠지요. 이 무서운 이치를 새기지 않는다면 결국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