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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낭만적인 파격주의자’ 우창록 율촌 대표변호사

"내가 가진 돈과 에너지, 시간의 20% 이상은 사회공헌 활동에 쓰자." 우창록(63·사법연수원 6기)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가 1997년 로펌을 설립하며 다짐한 말이다. 당시 지인들은 '젊은 사람이 낭만에 젖어 현실을 모른다'고 수군댔다. 이들은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로펌에 공익활동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 대표는 20년을 앞둔 지금 율촌을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로펌으로 키워냈을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익추구와 공익활동이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 대표는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매 순간마다 '파격'을 시도해왔다. 2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율촌 사무실에서 우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 역정과 철학을 들어봤다.


 
경북 경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우창록(63·사법연수원 6기)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때 인생이 바뀌었다. 영특해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했지만, 너무 가난해 '빨리 공장에 취직해 가계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졸업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려온 선생님의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공부를 잘하면 돈 안 들이고도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 대표는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설레도록 기뻤다. 단숨에 집으로 뛰어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며 부모님을 설득하고 조르기도 했다. 공부는 더 열심히 했다. 마침내 그는 목표대로 장학금을 받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경주 문화고등학교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너무 가난해 빨리 공장에 다니고 싶었던 초등생
"공부 잘하면 돈 안들이고도 학교 다닐 수 있다"
서울서 내려온 선생님의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꿔

197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우 대표는 파격적인 행보를 했다. 당시 사법연수생들은 연수원 수료 후 판·검사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주위에서 다들 '너 미쳤느냐'고 말했어요. 그 때는 사시가 판·검사 충원 시험이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죠."

그는 해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는 1979년 곧바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입사했다. 김앤장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던 우 대표는 또 다시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사무실을 차려야겠다며 1992년 김앤장을 떠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사무실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사람에게는 '앞으로 6개월은 생활비를 못갖고 올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잘못되면 서울역에서 리어카를 끌어도 둘이 끌면 되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창록 법률사무소로 혼자 시작했지만 마음에 맞는 후배와 동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 대표는 '뜻을 모으고 실력을 합쳐 법률가의 마을을 세우자'를 모토로 1997년 지금의 법무법인 율촌을 창립했다. 당시에는 변호사 6명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변호사와 각 분야 전문가를 포함해 600여명의 식구를 거느린 굴지의 대형로펌으로 성장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늘린 다른 로펌과 달리 율촌은 자체 성장만으로 커 왔다는 점에서 괄목한 결과였다.

칸막이 없는 아메바식 경영으로 '협업문화' 조성
사회공헌 활동은 사회를 바꿔가는 '선한 영향력'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길 가야"

 
우 대표의 파격적인 시도는 계속 됐다. 지난해 3월 율촌은 국내로펌 최초로 소속 변호사와 직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율촌이 입주해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섬유센터빌딩 3층에 마련된 '까페 여율(YEOYUL, 餘律)'이다. 탁 트인 천정과 감각적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 곳에는 86개의 좌석과 함께 회의실도 2개나 마련돼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프로젝터도 갖추고 있다. 전문 바리스타가 만들어내는 커피는 물론 베이글, 프레즐 등 간단한 스낵류도 먹을 수 있다. 율촌은 이 곳을 소속 변호사의 언론 인터뷰나 고객 미팅 장소로도 활용한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것은 1995년 우 대표가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뉴질랜드의 한 로펌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로펌에서 가장 좋은 층에, 가장 전망 좋은 방에 까페가 있었어요.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공간이냐고 했더니 '일하다가 머리 아프면 여기 와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하더군요. 당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때 로펌을 만들게 되면 꼭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로펌에 작은 까페를 하나 만들었는데 외면을 받았죠. 비싼 임대료를 내고 쓰는 강남 한 복판의 사무실을 업무공간으로 쓰지 않고, 까페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치기 어린 낭만이라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결국 지난해 큰 공간을 확보해 다시 카페를 열었는데 많은 변호사들과 직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시 합격 이후 판·검사 아닌
변호사로 파격 행보

우 대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씨드스쿨(Seed School)'도 만들었다. 씨드스쿨은 취약계층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다. 서울과 경기지역 중학교 10곳에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멘토로 1대1로 연결해준다. "씨드스쿨 대상 학교의 한 교장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학생이 바뀌니 멘토가 바뀌고 부모가 바뀌고 선생님들이 바뀌어서 학교 전체가 변화했다고요. 저는 한 사람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을 그저 낭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를 바꾸는 '선한 영향력'이 결국 로펌의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이같은 생각으로 지난해 서울대와 손잡고 신흥국 엘리트 육성 지원에도 나섰다. 율촌이 세운 공익사단법인인 온율과 서울대 국제대학원이 공동 설립한 '율촌-GSIS 센터'가 주인공이다. 로펌과 대학이 함께 한국으로 유학온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지원하는 점이 이채롭다. 이러한 시도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의 일환이다. "종전의 CSR은 기업의 사회공헌을 이익창출과 무관한 활동으로 보는데 반해 CSV는 사회공헌을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로 봅니다. 율촌이 신흥국 학생들과 협력해 그들을 지역 전문가로 키우면 결국 로펌과 신흥국이 동반성장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앤장 입사 13년 만에 독립…
1997년 율촌 설립

율촌에는 사건을 수임해온 변호사에게 큰 몫을 보장하는 '수임지분제도'가 없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 사건 해결을 위해 최적의 전문가들이 헤쳐 모이는 '아메바'식 협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 회사가 다른 로펌과 차별화되는 건 협업이 잘된다는 점입니다. 칸막이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 전문분야들이 이합집산하면서 자유자재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아메바식 경영이라고들 하지요." 그는 율촌의 또다른 장점으로 '변호사들이 일을 할 때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꼽았다.

우 대표는 법조계의 대표적인 골프 마니아다. "저의 골프는 '미제 골프'에요(웃음). 미국 유학시절 학교에서 골프 수업을 들었어요. 8시간 배운 것이 전부였는데, 당시 미국에서 일하고 있던 대학 선배가 골프 한번 쳐보고 한국에 돌아가야하지 않겠나며 골프장에 데리고 가줬어요. 골프채도, 옷도 없어서 전부 주위 사람들에게 빌려서 나갔죠. 그때부터 골프에 빠져들었습니다. 술도, 노래도 할 줄 모르는 저도 하나쯤은 잘 하는 것이 있으면 했거든요. 골프는 '정직'과 '성실'을 요구하는 운동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하고, 판단을 잘 해야하고, 때로는 모험도 해야하거든요. 이것이 골프의 매력입니다."

직원들 복지위해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카페' 마련

그의 골프사랑은 남다르다. 지난해 한국골프산업연합회로부터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는 뿌리치지 못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인식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를 보면 한국의 여성 골퍼들이 상위권을 제패하고 있는데도 막상 돈을 버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외국이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골프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벤트 산업이면서 부수적으로 제조업까지 따라붙는 중요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 대표는 후배 법조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찾아 적극적인 선택을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사 IMG를 설립한 마크 맥코맥을 예로 들었다. "마크 맥코맥은 골프 선수를 하다가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된 뒤 세계적 골퍼인 아놀드 파머에게 '숙소 예약 등 번거로운 일들을 내가 대신 처리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IMG의 출발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변호사가 스포츠 선수 뒤치다꺼리나 해주느냐고 생각했겠지만 이같은 발상의 전환, '파격'이 있어야 합니다."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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